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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밤의 새벽별 Sep 12. 2021

귀뚜라미에 관한 시인과 옛사람의 청각정서

낭만과 과학, 옛 이야기, 그리고 시


깊은 밤 모두의 귀뚜라미  

 


귀뚤귀뚤 8월의 중심이 기울면

등에 업고 올라온 가을을 땅에 내려주고

까만 밤의 조명 아래 날개 현을 켜고서

생(生)이 그들에게 선사한 연주를

새벽녘에 닿을 때까지 귀뚤귀뚤     


슬기롭고 선선한 이 연주는

그들에겐 생(生)과 사랑

계절에겐 미묘한 순행의 춤사위

어느가슴에겐 그리움과 낭만

저마다의 사연을 울리는 울음   

  

꼭꼭 닫은 방에 홀로 있는 나를

보이지 않는 창밖 숲의 품에,

시인의 꿈속에,

소담스런 이야기들에,

자꾸만 데려가

끝없이 이어진 실타래 속에 함께 엮어놓는다

무심한 듯 다정한

무한한 시간 속 찰나의 귀뚤귀뚤





어느 밤, 창밖의 귀뚜라미들이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더니, 내 마음에 시를 남겨주고 떠났다. 

다른 이들 마음엔 어찌 다녀갔을까. 

귀뚜라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시를 몇 가지 정리해본다.


 


<옛날 우리나라의 귀뚜라미 이야기>     

 

 24절기 중 하나인 처서(處暑)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말이 있다.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그리고 이런 재미난 이야기도 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모기는 창을 쥐고 다니고 귀뚜라미는 톱을 뒷다리에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둘이 처서가 될 즈음 서로 만난다. 귀뚜라미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모기의 몰골을 보고 그 연유를 묻는다. 그러자 모기가 “덜떨어진 인간들이 나를 잡겠다고 낯짝이고 허벅지고 팔뚝이고 간에 정신없이 후려치는 것 볼 때마다 하도 웃어대다 보니 입이 이렇게 되었네.”라고 했다. 귀뚜라미가 수긍하는 중에 이번에는 모기가 묻기를, “그나저나 나는 사람 피 좀 빨아먹자고 창을 쓰건만 자네는 어찌하여 톱을 차고 다니는가?” 그러자 귀뚜라미는 이렇게 말한다. “긴 긴 가을밤, 독수공방 임 그리는 처자 낭군들, 애끊으러 가지고 다니는 것일세.”



<조선시대의 낭만과 세련된 청각 정서>     

 

  옛날, 사내들은 가을 되어 한양에 과거 보러 가거나 일 관계로 잠시 고향 떠나 먼 곳에 갈 일 생기면 집 근처 귀뚜라미를 풀 섶에 담아 행장에 넣고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이나 목적지에 이르게 되면 밤마다 숙소 창가에 그것을 올려놓고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향수를 달랬다. 굳이 자기 집 귀뚜라미와 타지 먼 길 동행하는 이유가 바로 한반도 땅의 귀뚜라미 소리는 지역별로 각자 달랐음이요그것을 헤아릴 정도로 우리 조상들은 뛰어난 청력을 소유했다는 것이 된다.     

  조선시대의 한양 성내 주점들은 가을만 되면 긴밀하게 할 일이 따로 있었으니, 각 지역 귀뚜라미들을 주문 배달받아 방마다 따로 울게 해서 동향 출신 손님들을 방별로 유치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해마다 한양 저잣거리의 가을밤은 연일 팔도 귀뚜라미들 소리로 깊어갔음이라상상만 해도 아득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은 옛날에 군것질거리로 볶은 메뚜기나 볶은 개미, 삶은 번데기를 먹더라도 귀뚜라미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가을밤의 친구 귀뚜라미를 어찌 잡아먹겠는가?     


출처 : http://www.mrepubli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630




<귀뚜라미 온도계와 돌베어 법칙>


 변온동물인 귀뚜라미는 주변 온도에 민감하다. 귀뚜라미는 땅속에서 알로 월동한 뒤 8~10월께 성충으로부화해 정원이나 초원 등지에서 생활한다. 땅속 온도가 높으면 생육이 빨라져 부화 시기가 앞당겨지기도 한다.      

  귀뚜라미 수컷은 암컷을 유인하거나 경쟁자를 물리칠 때 큰 소리로 운다. 양쪽 날개끼리 비벼 소리를 낸다. 특히 날개를 펼쳐 치켜세워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도록 한다. 이때 귀뚜라미의 근육이 수축하게 되는데 이런 신체활동은 온도가 높을수록 반응이 빨라진다. 즉 기온이 높으면 울음소리의 간격이 빨라지고기온이 떨어지면 간격이 점점 길어지는 것이다무더위 속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은 바로 울음소리의 간격이 그만큼 짧기 때문이다. 다만 엄밀히 따지면 덥다고 귀뚜라미 소리가 크다고 할 수는 없다. 귀뚜라미는 24도를 전후했을 때 짝짓기를 가장 왕성하게 한다. 결국 초가을 귀뚜라미 소리가 가장 크다는 얘기다. 귀뚜라미의 이런 습성을 이용하면 대략적인 주변의 온도도 추정할 수 있다.     

  미국의 아모스 돌베어란 학자는 1897년 '아메리칸 내처럴리스트'란 학술지에 '온도계 구실을 하는 귀뚜라미'란 논문을 발표했다. 귀뚜라미가 14초 동안 우는 횟수에 40을 더하면 화씨온도가 나온다는 것인데 이를 '돌베어 법칙'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14초 동안 귀뚜라미가 35회 울었다면 화씨온도는 75도가 되고, 이를 섭씨온도로 환산하면 24도 정도가 된다. 이런 연유로 옛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귀뚜라미 소리를 바탕으로 주변 온도를 알아냈고, '귀뚜라미는 가난한 사람의 온도계'라는 미국 속담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돌베어 법칙'에도 한가지 맹점이 있다. 어떤 종류의 귀뚜라미냐에 따라서 기준이 되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귀뚜라미가 약 3천종에 이른다고 하니, 더 정확한 온도를 재려면 귀뚜라미 종부터 확실히 알아야 하는 셈이다.     


출처 : https://www.yna.co.kr/view/AKR20160822152100064






데이비드 소로가 만난 귀뚜라미


1852년 6월 17일 목 오전 4시 

 …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니, 새벽에도 땅이 계속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1853년 5월 15일 일 

… 귀뚜라미의 노래는 깊고 의미심장하다. 귀뚜라미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생각에 잠기고, 철학자가 되고, 슬기로워진다. 

                           - 책 「소로의 일기」 中    

 

“나는 귀뚜라미의 울음에서 지구의 맥박을 듣는다.”

                         - 책 「소로가 만난 월든의 동물들」 中







시인과 귀뚜라미      

    

                             - 정일남    


귀뚜라미와 시인이 어느 두메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가을밤 귀뚜라미와 시인은 서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달이 밝고 뜰에 낙엽 떨어지는 분위기면 좋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귀뚜라미는 손질한 악기를 등에 메고 시인의 오두막을 방문했습니다

달이 밝고 뜰에 꽃잎도 지는 밤

귀뚜라미는 기다리고 기다려도 시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밤새워 기다려도 낙엽만 쌓일 뿐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귀뚜라미는 전화벨만 울리며 떠돌았습니다  






                  

귀뚜라미에게 받은 짧은 편지     


                                      - 정호승     


울지마

엄마 돌아가신지

언제인데

너처럼 많이 우는 애는

처음 봤다

해마다 가을날

밤이 깊으면

갈대잎 사이로 허옇게

보름달 뜨면

내가 대신 이렇게

울고 있잖아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뚤귀뚤’ 울겠습니다.”

                                                        

                                                       - 한용운 시, 「나의 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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