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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Sep 06. 2017

지명유래 - 오이도

비엔나텍스트어드벤처 17

서울 지하철 4호선의 끝에는 오이도역이 있다. - 네이버 지하철 노선도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아래쪽에 있는 금정, 범계 주변을 맴돌았다. 서울에서 집에 돌아갈 때면 자주 오이도행 열차를 탔지만 한 번도 오이도역까지 가본 적은 없다. 지하철 4호선 하행선의 종착역이니 분명 존재하는 동네일 테지만 나에게는 노선도에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곳처럼 느껴진다. 분명 거리상의 문제는 아니다. 저 멀리 아직 가보지 못한 뉴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빌딩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지만, 오이도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이름이 주는 느낌도 묘하다. 섬 도(島)라니, 그럼 4호선의 끝은 바다라는 이야기인가.

내친김에 이런 상상을 해본다. 종착역임을 알리는 방송을 들으며 열차에서 내리면 밖에서부터 짠 내를 실은 바람이 불어온다. 모래가 밟히는 개찰구를 통과해 밖으로 나가면 위로는 비둘기 대신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쭉 뻗은 소나무 숲도 보인다. 역사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운행을 마치고, 다시 저 멀리 당고개까지 달릴 준비를 하는 열차가 서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이라도 40분 정도만 가면, 진짜 오이도역의 모습을 보고 글로 옮길 수 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지역인데 그 이름이 주는 느낌은 한없이 멀게만 들린다. 저 태양계 밖으로 밀려난 명왕성처럼도 들리고, 지하철을 계획한 누군가 4호선의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행정편의상 표기한 이름처럼 보인다.

지하철 4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생각을 했던 건 나뿐일까. 아마 사당보다 아래부터 안산 초입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나 같은 상상을 해보지는 않았을까. 나처럼 밤늦은 시간 집에 돌아올 때마다 사당행이 플랫폼에 도착하면 한편으로 비켜서고 다음에 오는 오이도행을 기다리던 사람들이라면 궁금해한 적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오이도를 물으면 사람들은, 잘 숙지한 암구호처럼 “조개구이”라는 말로 화답한다. 도대체 오이도는 어디일까.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오이도역은 오이도(烏耳島)라는 지명을 따서 지었다. 하지만 당신이 오이도역에 내려도 그곳이 오이도라는 얘기는 아니다. 진짜 오이도는 지하철역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차를 타고 10여 분정도 이동해야 한다. 예전에는 진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군수용 소금 채취를 위해 염전을 만들면서 제방으로 육지와 연결돼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 하나, 오이도는 안산시가 아니라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이다.

서울지명사전(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에서 오이도역을 찾아보면 ‘옛 수인선의 군자역 자리이나 서울의 5, 7호선 군자역과 구별하기 위해 인접해 있는 오이도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돼 있다. 그런데 위키백과에서 다른 설명도 발견했다. 옛 군자역은 1994년 수인선의 운행 중단과 함께 폐역 됐고, 다시 4호선 운행을 위해 공사하면서 서울 군자역과 혼선이 우려돼 정왕역으로 결정했다는 것.

두 사실이 살짝 엇갈리고 있기는 하지만 군자 혹은 정왕이라는 이름을 가질 뻔했던 그곳은 결국 오이도역이 됐다.


이렇게 노선도에 적힌 오이도역 표기를 유심히 본 당신이라면 한 번쯤 의아해했을 수도 있다. 

까마귀 오(烏), 귀 이(耳), 섬 도(島) 라니,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까마귀 귀 섬’이라는 뜻이다. 누가 그렇게 까마귀의 귀를 유심히 보고, 또 어디서 오이도를 내려다보았기에 까마귀의 귀라는 소리를 했을까. 더 찾아보니, 옛 이름은 오질애도(吾叱哀島), 오질이도(吾叱耳島) 였다가 조선 정조 때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면 까마귀는 중간에 바뀐 이름이고, 섬 모양이 까마귀 귀와도 별 관계가 없다는 설도 있으니 까마귀는 잊어버리자. 더 오래된 이름인 ‘오질애’나 ‘오질이’에서 뜻을 추측해야 하는데, 이 한자 구성도 독특하다. 먼저 오질애를 보면 나 오(吾), 꾸짖을 질(叱), 슬플 애(哀)로 돼 있다. 그리고 '오질이'에서 앞의 한자는 그대로 둔 채 귀 이(耳) 자가 나타난다. 그러면 ‘나를 꾸짖어서 슬프다’ 아니면 ‘나를 꾸짖는 귀’가 된다. 이런 이상한 뜻 일리가 없다. 그래서 더 찾아봤다.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국토지리정보원, 2008.12)에 이런 설명이 있었다.

오이리는 『호구총수』에 오이도리(烏耳島里)로 기록되어 있는데, 옥귀섬에 대한 한자 표기이다. 『조선지형도』에는 오이도와 함께 옥귀도(玉貴島)가 표기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안산군」 봉수에는 오질애(吾叱哀)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의 안산군 산천 항목에는 오질이도(吾叱耳島)로 기록되어 있는데, 질은 ‘ㅅ’ 받침을 대신하는 것으로 오질의 ‘옷’은 옥귀섬의 ‘옥’을 쓴 것이다. 규장각 소장 『해동지도』 「안산군」에는 오이도로, 주기에는 오질이도로 표기하였다.

경인일보의 기획기사 ‘다시보는 경기산하 안산편 3 (2004.4.26)’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조선 고종 때 발간된 『안산군읍지』대천조에 ‘옥귀도는 바다 가운데에 있어 주민들이 그물을 엮어 고기를 잡는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원래 “옷귀섬”인 것을 이두식 표기로 옷 의(衣), 귀 이(耳) 섬 도(島)라고 썼는데 잘못 읽어 지금의 오이도가 됐다는 설명을 달았다.

오이도에는 빨강 등대가 있다 - 위키백과


자 이제 오이도의 원래 이름이 ‘옷귀’ 혹은 ‘옥귀’라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럼 두 단어의 발음이 비슷한 걸로 봐서 둘 중 하나가 맞기는 한 듯한데, 이건 어디서 나온 말일까. 계속해서 찾다 보니 우리가 지금 계속 맴돌고 있는 시흥시 정왕동에 옥구도 자연공원이 있었다. 오이도 괴롭히는 일은 잠시 멈추고, 옥구도의 지명유래를 보자.

옥구도(玉鉤島)는 주변에 돌이 많다고 하여 석도(石島)ㆍ석출도(石出島)ㆍ석을주도(石乙注島)ㆍ석옥귀도(石玉龜島)ㆍ옥귀도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인근에서는 남쪽의 오이도와 함께 옥귀도(일명, 옥귀섬)라고 불렀는데 후대에 내려오면서 옥귀도의 '귀(龜)'자가 '귀' 또는 '구'가 되므로 '구' 자를 취하면서 옥구도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돌이 마치 줄을 선 형상을 하고 있어서 산 이름을 둘주리산, 마을 이름을 돌주리라고 하였으며, 산 정상부가 서울을 등지고 있다고 하여 '역적섬'이란 별칭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오이도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한데, 의문이 드는 부분들이 있다. 오이도와 옥구도를 함께 옥귀도로 불렀다는 부분이 의심스럽다. 인접한 다른 섬을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면 일상에서 많은 혼선이 있었을 게 뻔하고, 주민들 사이에는 구분해서 칭하는 이름이 있지 않았을까. 또 주변에 돌이 많았으면 ‘석~도’나 ‘돌~섬’의 이름으로 남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오이도를 가리키는 여러 문헌에서 한자표기를 할 때 ‘석 (石)’을 쓰지 않고 굳이 ‘옥’, ‘옷’으로 표기를 하려고 시도했던 점을 보면 옥구도는 어떨지 몰라도 오이도는 별 관계가 없는 듯싶다.

경기관광공사 홈페이지의 옥구도 자연공원 페이지에서 찾은 설명인데, 문헌 출처가 없어 당장 정확한 기록을 확인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대신 경기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경기문화포털에서 새로운 내용을 확인했다.

<경기도 백문백답>이라는 카테고리에 <오이도는 언제 육지가 되었나?>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왜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나 싶을 정도로 여러 문헌에서 확인한 오이도 지명의 변천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오이도(烏耳島)는 시흥시 서남부에 위치한 섬 아닌 섬이다. 신석기시대 이래 선사유적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되어 사적 제441호로 지정된 지역이다. 오이도로 생각되는 섬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세종실 록』이다. 세종 30년(1448) 8월 27 일에 안산군에 속한 섬으로서‘오 질이도(吾叱耳島)’가 나오고「지리 지」안산군조에는 봉화가 있는 곳으로‘오질애(吾叱哀)’가 등장한다. 『동국여지승람』안산군조에도‘오질이도 봉수’가 나오고 있어 오질이- 오질애가 현재의 오이도를 가리키는 이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오이 도’가 까마귀의 귀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일설은 고유어‘오질 이’를 간략히 적기 위해 차자한‘오이(烏耳)’를 한자식으로 다시 풀어낸 것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자료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여지도서』 안산군조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지도에는‘오이도’, 내용에는‘오질이도’가 각각 나온다. 그런데 앞에서 보았듯이‘오질이도’와‘오이도’ 는 같은 섬이기 때문에,『 여지도서』가 편찬되던 시점에는‘오질이도’와 ‘오이도’가 같이 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대동지지』(1864)에 는‘의이도(衣耳島)’로,『 경기지』(1843)에는‘옥구도(玉龜島)’로,『 경기 읍지』(1871)와『기전읍지』(1894)에는‘오이도(烏耳島)’로 나와 있다. 특 히『기전읍지』안산군 산천조에는“오질이도는 지금의 오이도로서 군 의 서쪽 40리에 있다.”라고 서술하여, ‘오질이도’와‘오이도’가 같은 섬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한편, 1910년대에 일제가 제작한 지 도에는‘오이도’와 함께‘옥귀도(玉貴島)’란 이름도 같이 쓰였고,『 조선 지지자료』에도 오이도의 별명이‘옥귀도(玉龜島)’라는 설명이 있는데, 오이도 인근에 있는 옥구도의 이름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 글을 대폭 압축하면 오질이도가 지금의 오이도가 되었다는 사실과 옥귀도라는 별명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다. 의문은 남는다.『경기읍지』나 『기전읍지』를 보면 오질이도에서 오이도로 변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왜 옥귀도가 자꾸만 등장할까. 그것도 ‘귀’라는 소리를 가진 貴, 龜 이런 한자들을 써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대동지지』에서는 독특하게 ‘의이도(衣耳島)’ 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이두식 표기라고 보면 ‘옷귀도’다. 다시 돌아가는 이야기 같지만, 오질이, 오질애에서의 ‘질 (叱)’역시 ‘ㅅ’받침을 표기하는 것이라면 어쨌거나 오이도는 옷귀도 또는 옥귀도 였을 가능성이 크다. 오질이를 읽으면 옷기도, 오질애는 옷개도가 되니, 발음상으로도 그렇다.

시흥문화원에서는 소개된 오이도 설화를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내용은 꽤 납득이 안 되는 설화지만 대략 이렇다.

어느 임금이 배를 타고 가다가 표류하게 됐는데, 한 어부가 어부가 옥(玉)으로 만든 그릇에 물을 떠다 바쳤더니 임금이 놀라 귀가 번뜩 뜨여서 이 섬이 ‘옥귀도’로 불렸다는 것. 인터넷에서는 임금이 깜짝 놀라 귀히 여겨서 ‘옥귀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찌 됐건 둘 다 옥귀라는 이름의 탄생설화를, 고급스럽게 만들어내기 위해 스토리텔링 작업을 한 것이 이렇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의 자료들을 토대로 추리를 해보면 오이도는 옥귀, 옥구, 옷귀 중에 하나가 원래 이름일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 많은 지명이 그렇듯 주민들이 우리말로 부르던 이름을 한자 표기로 옮기면서 또는 시간이 흐르며 변형돼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듯하다. 원래 이름을 알 수 없으니 지명 유래를 확인할 수 없는 점은 아쉽다.

혹 당신이라도 지하철 4호선 오이도행을 타게 됐을 때 한 번씩 생각해달라. 아마 확실할 텐데 오이도는 까마귀 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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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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