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다 해야 하는 곳
결국 뻔한 방법뿐이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면서 누군가가 이것 저것 그것을 다 하거나, 이것 저것 그것을 기존 인력이 나눠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후자는 직원들의 저항이나 불만을 마주하기 딱 좋다. '이걸 왜 해야 해요?', '저는 이거 하려고 회사 들어온 거 아닌데요', '그럼 사람을 더 뽑으셔야죠', '이거 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 조정해 주시나요?', '야근하면 내일 출근은 늦게 해도 되죠?' 이런 류의 질문 혹은 의사표시와 함께 말이다.
다 맞는 말이다. 부당한 업무 지시의 소지도 있고, 그 사람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근무시간까지 늘어나면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해주는 게 맞다. 기존 인력이 정해진 근무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의 양이 늘어나고 일이 복잡해진다면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거나 외부에 맡길 수 있는 것들은 맡겨야 한다. 뒷마당 텃밭은 대여섯이면 충분할지 모르나, 대여섯 마지기 논밭은 여남은으로도 어림없는 노릇일 수 있다.
스타트업에게는 자본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매출은 없거나 있어도 회사의 연구개발과 운영비를 충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조금 여유가 생겨 사람을 더 채용하고 싶어도, 기업의 사업과 고객층이 회사의 중장기 안정성을 담보해줄 만큼 탄탄하지 못하면 인건비(고정비)를 늘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채용과 퇴사의 속성도 어려움을 더한다. 적임자를 뽑는 것도 어렵지만,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회사와 개인이 맞지 않아 이별을 하게 되는 순간은 더 어렵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것은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하고 있는 그 누군가의 몫이 될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 혹은 인류애와 솔선수범 정신, 성인군자의 덕목을 두루 갖춘 아름다운 누군가. 나는 인류애와 성인군자의 덕목 같은 것은 없지만, 회사의 잔고가 불어나는 속도보다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을 매일 확인하고 있는 탓에 이일, 저일, 그일을 하고 있다.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챙겨야 할 회사 살림이기 때문에 적임자가 나타나거나 회사에 조금의 여유가 더 생기기 전까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스타트업은 이런 곳이다. 할 일은 많지만, 사람은 적어 생각하지 못했던 일까지 하게 되는 곳이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중간 그 어디쯤 되는 여기서는 많은 것을 스스로 잘 해내야 한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음의 평화도 필요하다.
상단 이미지 : by Jacek Dyla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