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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Mar 09. 2021

새벽의 동이 튼다

뻘글을 쓰기 가장 좋은 시간

오랜만이다. 감성적인 글을 쓰기에는 역시 동틀 무렵 새벽이 최고다.


그동안 멀리 했던 남의 글을 썼다. 정말 오랜만이다. 그동안에는 다양한 이유로 거절해 왔던 일이다. 소모성이 짙은 글들을 쓰며 원고료를 받아보긴 했지만, 진정성이 있는 글을 쓴건 정말 너무 오랜만이라 사실 손이 떨린다.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항상 그런 것이다. 손이 떨리는 일.

별 것 아닌 걸 쓸 때는 욕을 하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 글이 나와는 별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을 들여 쓴 글, 특히 나를 위한 뻘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글은 괜히 나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기분이 든다. 글이 지적당하는 것은 당연한데 내 신체의 일부를 빌어 평가를 하는 것 같아 괜히 벌거벗은 느낌이 든다.


유시민 작가가 쓴 글쓰기 특강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 글은 내 자신이 아니라는 말. 글은 글일 뿐 내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글이 나 자신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그 글을 욕하면 자신이 욕먹은 느낌이 든다. 기분이 심히 상할 수 밖에.


하지만 글과 나를 별개시 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렇게 공을 들여 쓴 글은 이렇게 똥글로 막 써재낀 글보다 더 부자연스럽고 너무 모자란 느낌이 들어 더 측은하다. 왜 너를 그렇게 쓸 수 밖에 없었을까 나를 탓한다. 하지만 게으른 나는 마감일 당일에야 글을 시작하고 마무리를 짓기 때문에 그 이상의 글을 쓸 수도 없다. 사실 나는 안다. 그 글이 최선이라는 걸.


A4용지 20매 분량의 한 학기 레포트를 하루만에 쓴 적이 있다. 교수님은 한학기동안 중간 기말을 안 보고 그 레포트 하나로 성적을 결판짓는다고 하셨다. 출석도 체크하지 않았다. 성적은 오로지 A4용지 20장에 달려있었다. 게으른 내가 별 수 있나. 한 학기 내내 주제만 생각하다 제출 당일을 하루 코앞에 남겨두기에 이르렀다.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 지금 당장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 내용을 그냥 디립다 써 재꼈다. 10시간동안 책상에 앉아 키보드만 두드렸다.


A+이었다. 역시 나는 미래의 나에게 모든 일을 맡기는 편이 결과가 좋다. 불쌍한 미래의 나


제발 이번에도 둘 중 하나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담당자 눈이 삐꾸가 돼서 글이 이뻐보이게 하든지, 좀 전의 내 손가락이 삐꾸가 돼서 똥글을 금글처럼 썼든지.


그냥 너무 오랜만에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에 덜덜 떠는 내 자신이 불쌍해서 남기는 위로의 글이다. 나는 나를 위로하려면 1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불쌍하게 여겨주세요. 자랑할게 저거밖에 없는 불쌍한 빈털털찔찔이...찔찔... 자라 자 내일 애기 어떻게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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