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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Mar 17. 2021

"하무니, 코에 콩 들어갔어"

콩은 입으로 먹는거라구!!

요 근래 봄이가 쪽쪽이를 떼면서 잠자는 패턴이 또 틀어졌다. 어제 봄이는 새벽 1시에 잠이 들었다. 내 글쓰기는 태양계를 벗어난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하루에 한 번 글쓰기는 고사하고 일주일에 글 한개 올리기가 이렇게 벅차다. 그래서 다음에 쓸 글은 봄이의 쪽쪽이 떼는 글일 줄 알았다.


하지만 봄과의 하루는 역시나 예상치 못한 일로 가득했다. 오늘은 콩이었다.



친정에서 2주간 쉬다가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주말출장이 갑자기 잡히는 바람에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친정생활은 1주일 연장됐다.


아무래도 친정은 엄마 아빠가 지내는 곳이다 보니 장난감이 별로 없다. 봄인 지난 생일 선물로 받은 레고만 주구장창 해댔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봄이는 언제나 그랬듯 집안을 열심히 뒤졌다. 오늘 타겟은 부엌이었다.


한참 싱크대를 뒤지던 봄이 눈에 콩이 들어왔다. 당장 콩을 꺼내달라며 시위를 해대는 통에 함께 콩을 들고 거실로 갔다. 콩을 쏟고 옮기고 세고 집게로 들고 던지고 등등 콩만으로도 봄이는 두시간 가까이를 보냈다. 어쩜 그렇게 잘 가지고 노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한참을 그릇에 옮겼다 다시 뺐다 하며 놀았다.

아기의 개월수가 낮을 때 촉감놀이를 위해 쌀, 밀가루, 콩 등을 꺼내놓고 만지는 놀이를 한다는데 봄이는 내가 하도 귀찮아하는 통에 그런 것도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그걸 지금 자기 스스로 충족하는 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봄이는 콩만으로도 신나게 놀았다.



저녁을 먹고 나자 봄이는 또 다시 콩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콩을 달라고 요구했다. 좋은 장난감 하나 생겼다는 생각에 흔쾌히 콩을 꺼내줬다. 봄인 콩을 들고 신나서 거실로 향했다. 나도 함께 가서 옆자리를 지켰어야 했는데, 당연히 잘 놀겠거니 방심했던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나는 조금 느린 속도로 밥을 먹으며 식탁에 앉아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도 뒤늦게 식탁에 합류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참을 수다를 떨며 둘이 이야기를 하는데, 봄이가 껄렁껄렁 코를 파며 식탁으로 왔다.


"하무니, 코에 콩 %$#^$%"

엄마와 나는 처음 듣는 단어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다.

"엄마아! 코에 콩! 콩! 코! 콩!"


유심히 쳐다보니 코를 파는 봄이의 표정과 손놀림이 예전같지 않았다.

봄이는 코딱지를 파서 "엄마 선물" 하며 내 볼따구에 코딱지를 항상 묻히고 도망가는데, 어째선지 콧구멍에 들어간 손이 나올 기미가 없었다. 표정은 답답하다는 식이었다.


한참을 유심히 듣던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릴 질렀다.

"뭐!? 코에 콩이 들어갔다고?????"


그제서야 나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코딱지를 선물로 주러 온게 아니라니. 콩을 코에 집어넣었단 말야!?

아니 왜!?!?! 왜!?!?!?!?!?!


봄이는 할머니와 엄마가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본인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봄인 더욱 깊숙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어떻게든 코 속으로 들어간 콩알을 빼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핀셋이 어디있지, 핀셋이 어디있지!!"

엄마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데나 막 뒤지며 핀셋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봄이가 더 이상 손가락을 콧구멍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손을 단단히 붙들어 매고는 혹시라도 핀셋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내 머리가 굴린다고 답이 나올리가 없지. 들은게 없는데!!


예전에 어떤 글에서 긴급 상황에 119에 전화하면 조치 방법을 알려준단 얘기가 기억났다. 급하게 119를 눌렀다. 그리고는 랩을 하듯이 신속하고 빠르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24개월 여자아기가 콧구멍에 검정콩을 집어넣었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물어보길 천만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집에서 어떻게든 빼려고 했을텐데.

119아저씨는 다급하게 말했다. 절대 집에서 손을 대지 말라고, 그러다 더 깊숙이 들어가서 내시경으로 빼야 한다고! 반드시 지금 당장 근처 이비인후과로 달려가시라고!


저녁 6시 30분이었다. 근처 이비인후과는 문을 다 닫았다. 그러다 한 병원이 떠올랐다. 내가 결핵에 걸렸을 때 단번에 큰 병원에 가라며 바른 길로 인도해줬던 병원이었다. 그곳은 12시까지지!


엄마와 나는 양말이고 겉옷이고 다 생략한채로 봄이를 업고 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마스크만 대충 쓰고 달렸다. 그 와중에 봄이는 바깥에 나가는게 신나는지 소리를 질러댔다. 


자동차가 나오면 빠방이를 외치고, 새가 지나가면 짹짹이라며 소릴 질렀다. 비행기가 지나간다고 하도 소리지르는 통에 쳐다보니 정말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어! 어! 대답만 흘리며 봄이의 코 속 콩이 혹시라도 더 깊숙이 들어갈까 빠른 걸음으로 걷기만 했다. 그러자 봄이 한 마디 던졌다.


"지금 어디 가는거야아아~~~"



"24개월 아기 코 속에 들어있는 콩을 빼러 왔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의 어떻게 오셨냐는 말에 할 말이 저거밖에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오른쪽이요 왼쪽이요?"

라고 담담하게 물어봐 주셨다. 오른쪽이었다.


의사선생님을 뵈러 들어가니 선생님의 얼굴이 대략 난감이었다.

어쩌다 콩을 코 속에 넣었니, 라는 털털 웃음과 함께 뭘로 콩을 빼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하시는 모습이었다.

정봄은 그저 멀뚱멀뚱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석션과 꼬챙이, 집게, 핀셋까지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서 간신히 콩을 뺐다.

자신을 붙잡고 코속에 이상한 걸 집어넣는 걸 보더니 엉엉 울어재끼던 봄이는 나온 콩을 보고 울음을 뚝 그쳤다. 콩은 봄이 콧물에 불어 제법 커져있었다.

의사선생님께서 기념하라며 돌려주셨다. 원래 크기의 콩과 비교하니 콩이 제법 불었다. 코딱지가 커지는 기분이었을까..

"봄이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빨리 인사해"

"감다함다"


선생님은 콩은 이제 코에 넣지 말라고 상냥하게 말씀하셨다.

근데 진짜 콩은 언제 집어넣은거니?????

돌아오는 길, 평안 그 자체.. 엄마도 나도 너무 놀라서 기운이 쭉 빠졌다. 정봄은 그제야 마스크를 낄 수 있었다.

출장에서 막 돌아온 남편에게 콩 사진을 보냈다.

남편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도 사실 너무 웃겼다.

엄마도 많이 웃겼나보다.


근데 이제 콩은 안 준다. 압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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