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한테 전화 안 해야겠다."
낮에 전화를 한 시간 간격으로 두어 번 받지 못했던 내게 시어머니가 던진 한 마디이다. 당장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어머님, 제가 어머님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어머님의 요구에 항상 즉각 반응해야하는 건 아니잖아요. 일이 있으면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지, 그 전화 몇 번 안 받았다고 이렇게 까지 사람을 몰아붙이세요?" 현실속의 나는 억울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결코 좋은 말들이 오갈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날의 상황은 이랬다.
나는 오후에, 그러니까 정확히는 아이가 하원하기 전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이 일은 정규직도 아니고 집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시간에 일을 할 수 있어서 일을 한다고 굳이 시어머니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참고로, 나는 시어머니와 매우 가까이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집에 있을 때면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전화를 무음으로 해 놓거나 소리가 잘 나지 않는 곳에 올려두곤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 연락이 오든 2~3시간 이내로는 답장을 했고, 엄마도, 남편도 이제는 내가 낮에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니 굳이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어머님의 전화를 받지 못했던 그 날의 결과는 이랬다. 어머님의 부재 중 전화를 확인하고 바고 다시 전화를 했고, 저녁 즈음 어머님 집으로 갔다. 저녁을 먹는 내내 어머님은 내가 전화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본인이 얼마나 실망스럽고 화가 났는지에 대해 애둘러서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말끝마다 '니가 전화를 안 받아서' '니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라고 하셨다. 들들 볶이는 나는 가시 방석이었다. 밥을 먹는지 모래알을 씹어 먹는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내게 화가 났다고 말을 하시지 싶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한 채 밥을 먹고 놀았다. 참다 못한 나는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한다고 말을 안하고 그냥 뭘 한다고만 자꾸 얘기해서 오해하시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얼마 전부터 새로 일을 시작했고, 그 일을 하다 보니 전화를 더 못 받았다고 다시 설명을 드렸다.
어머님은 내 설명을 들으시고는 그래~ 바쁜게 좋지, 좋은데 이제 너한테 전화 안 해야겠다는 말씀을 기어코 하셨다. 그 말 속에는 내가 일하느라 어머님의 전화가 방해된다는 의미로 내게 되돌려 전해졌고, 내 설명이 부족했는지에 대해 나의 말들을 돌아보게 했고, 그러다 결국엔 어머님의 전화를 받지 않은 내가 죄인이 되었음을 알았고, 이것은 어머님의 절교 선언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어떻게,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머님은 자신의 전화를 바로 받지 않았던 내게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정확히 지난주와 같은 이유로 말이다. '살아있는 꽃게를 주고 싶어서' 어머님은 내게 전화를 하셨고 지난주와 똑같이 나는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못했다. 꽃게가 싱싱할 때, 살아있을 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간다. 아마도 어머님에게는 싱싱한 꽃게를 내게 바로 전달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급한 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굳이 펄떡이는 꽃게를 받고 싶지도 않고, 지난주에 이미 푸짐하게 먹었으니 지난번 보다 더 많은 양의 꽃게를 사실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에, 그래봤자 얼마 후가 되겠지만. 어머님 댁에 갈 때에면 나는 아마 마음을 '먹고' 어머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머님의 말에 상처 받지 않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어머님을 뵐 것이다.
늘 그랬듯이.
요즘 아이가 한창 부르는 <꽃게 우정> 노래로 이 글을 마쳐봅니다..ㅎㅎ
한발한발 맞춰서 서두르지 않고서
앞서 가고 싶은 마음 참고서
어깨동무 팔동무 하지 못해도
함께하는 행복과 기쁨가득
다각따각 나란히 따각 따따각 나란히
지켜주는 멋진 우정 발걸음
한발한발 맞춰서 서두르지 않고서
나란히 걷는 마음 꽃게 우정
나란히 걷는 마음 꽃게 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