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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작가 Nov 11. 2022

김장이 원수가 되지 않으려면

김장철입니다

"간이 딱 맞네."

"어우! 왜 이렇게 짜."

"아~ 맵다. 매운데 맛은 있네."

"젓갈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아니야?"

"큰일 났네, 짜서."

...


말, 말, 말.


모두 김치를 맛보고서 하는 말들이다. 김치를 담근 사람은 뭐라 할 말이 없다. 김치를 담그느라 이미 지치기도 했고, 중간중간 간을 봐가면서 김치를 담그느라 짠 게 맞는지, 싱거운 지 정확한 입맛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김치를 방금 맛 본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존해 설탕을 조금 더 넣던지 소금을 조금 더 넣던지, 아니면 고춧가루를 조금 더 뿌리던지 할 뿐이다.


머리에 송글 송글 맺힌 땀방울이 무색하게 가족들은 너도 나도 김치를 맛보며 평가를 내린다. 김치가 가지길 기다렸단 듯이. 소에는 식탁에 올려져 있어도 눈길도 주지않던 그 김치를 말이다.


배추 한 포기 다듬어보지 않은 손에 새빨간 김치 한 조각이 들려있다. 오물거리며, 혹은 우물거리며 김치에 대한 감상평을 남긴다.


김치를 담근 사람은 김치가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 힘이 나기도 하고, 맛이 없다는 한 마디에 맥이 빠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가족이 한 해 동안 먹을 김치이기 때문이다.


김치를 주도해서 담그는 사람은 집 안에서 주로 엄마이다. 내가 만든 음식조차 타인의 평가를 신경 써서 만들다 보니 다른 면에 있어서도 엄마들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다. 엄마가 된 나도 그렇.


김장을 하니 안 하니부터, 몇 포기를 담네 마네 등등 이맘때가 되면 '김장'은 엄마들의 '해치워야 하는 숙제'같다.


어제는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추 한 포기를 통째로 들고 왔다. 원장님의 텃밭에서 뽑아왔다고 하는 싱싱한 배추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와~ 역시 방금 밭에서 뽑아온 배추라 싱싱하군.', '하~ 이걸 어쩌지?' 어쩌긴 뭘 어쩌겠는가.


백김치를 좋아하는 둘째 아이는 배추로 얼른 김치를 만들자고 나를 졸라 댔다. 아이와 함께 배추를 다듬고 절이는 일은 참 오래 걸렸다.


배추를 한 장씩 떼어보다가 반으로 잘라보기도 하고, 배추 잎에서 벌레가 나오니 한참 동안 벌레를 구경하다가 또 배추 잎을 떼다가 놀다가.. 


저녁 식사를 하고 본격적인 김치 만들기에 돌입했다. 7시간 정도 절인 배추를 세 번 씻어 채반에 받쳐 놓은 다음 배추 잎 속에 들어갈 야채들을 채 썰고, 양념을 믹서기에 갈았다.


여기까지 하고 아이들을 재우면서 나도 잠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새벽 3시. '빨리 배추를 완성해야'한다는 생각에 후다닥 거실로 나가 물기가 다 빠져서 마르려고 하는 배추와 양념이 베인 야채 소들을 켜켜이 쌓아 김치 통 안에 가지런히 넣고 갈아 놓은 양념장을 조르르 부었다.


제법 백김치 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랩으로 통 위를 한 번 감싼 후 뚜껑을 덮으면 완성. 이제 반나절 동안 숙성을 해서 냉장고에 넣고 먹으면 된다. 낮 1시부터 시작한 한 포기의 배추김치를 담그는 일은 절이는 시간을 포함해 새벽 4시가 되어 마무리되었다.


제법 김치 모양이 나는 김치통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조금 뿌듯한 마음과 배추 한 포기를 정리했다는 생각에 후련해졌다. 그리고 하나 더 드는 생각, '아이가 맛있게 먹어줄까?' 내 생에 처음 만들어보는 백김치를 아이가 과연 맛있게 먹을지 말지가 내게는 관건인 것이다.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엄마가 되었나 보다.


백김치 한 포기를 담아보면서 느낀 점 한 가지가 있다. 누군가 김치를 담아서 내게 준다면 그 어떤 평가의 말보다 '맛있다'는 한 마디만 해야겠다는 것이다.


배추 한 포기를 담으면서도 허리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는데(이것은 정말이지 핑계가 아닙니다..) 수십 포기의 김치를 담그는 엄마들의 그 수고스러움에 함께 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자.


그리고, 김치를 담그는 엄마들도 가족들의 1년 김치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으시고 가족들도 그 마음을 알아주어 서로의 수고를 조금씩 덜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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