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꽃작가 Jan 26. 2023

너는 작은 일이라 했고 나는 큰 일이라 했다

길고 짧은 명절이 끝났다. 가족들과 며칠동안 계속 만나게 되니 그 속에서 편안함도, 불편함도 모두 마주했고 시댁 식구들과의 점심 약속을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왔다.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명절 내내 시댁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말’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슬쩍 꺼내 놓았는데 남편은 ‘그런 작은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냐’고 했다. 


그 말인 즉슨, 명절 내내 내가 힘들지 않게 어머님께서 음식도 미리 해 놓으시고, 양이 많은 설거지는 부모님이 하시고, 또 내가 힘이 들까 봐 시누가 오는 날에는 외식을 했던 자신의 부모님의 ‘배려’가 크기 때문에 ‘말’쯤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서운하다고 했다. 부모님의 마음을 몰라주는 내가 말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나름 시어머니의 말들이 거슬렸다. 다른 집 며느리들과의 비교를 3일 내내 들은 나로서는 시부모님의 ‘큰 배려’가 달갑지 만은 않았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상처를 준다는 것을 모르시는걸까. 


남편은 작은 서운함 대신 전체적인 큰 틀을 보라고 했다. 전체적으로 부모님이 이렇게 배려를 해 주었으니, 작은 일에 기분 나빠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서로의 입장 차이일까. ‘그런 배려 필요 없어. 말할 때나 좀 배려하시라 그래’라는 말이 차올랐으나 차마 그렇게는 말할 수 없었다. 


늘 ‘말’이 문제였다. 

내가 편해서 자주 보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다 하시는 건 알지만 요즘엔 종종 그 선을 넘을 때도 있었고, 이번 명절의 경우에는 연휴 마지막날 온 가족 앞에서 대놓고 다른 잘난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고, 결국 그 이야기들이 내 마음속에 쌓여 시어머니가 더욱 밉게 느껴졌다. 그걸 맞장구 치면서 듣고 있는 내 꼴이란. 


물론 비교하자고 했던 말들은 아니었다. 말을 하다 보니까 나온 이야기들이었는데,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말하는 대상이 나와 같은 입장의 며느리인데 너무나 잘난 며느리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하면 그렇지 않은 나와 자연스레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꼬집어서 말로 하지는 않더라도 각자 마음속으로 하는 비교들 말이다. 


내 마음속의 공간이 없어서 그냥 하는 말들을 담아낼 여유가 없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기면 내 마음이 편할 텐데 자꾸 곱씹게 되는 나는 속이 좁은 사람일까. 하나 밖에 없는 며느리 앞에서 다른 집 며느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싶을까 싶었다.


남편은 남편의 입장이 있고, 나 역시 내 입장이 있지만 특히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앞에서는 각자 자신의 입장을 결코 굽히지 않는다. 마치 부모님의 대변인처럼 말이다. 내가 그냥 듣고 싶었던 말은 그냥 ‘정말 그렇네. 기분 나빴을 거 같아.’ 이 한 마디였는데 말이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시어머니였는데 점점 정이 떨어지고 있다. 말 때문에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남편 말대로 더 좋은 걸 보고 그러려니 해야 할까. 어차피 시어머니는 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바꿀 수 있는 건 언제나 그렇듯 나 자신일 것이다. 이 시간이 지나가면 나는 우리 시어머니를 어떻게 기억할까? 내가 100살의 노인이라면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1. 당연한 것은 없듯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