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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ug 07. 2018

동숭로에서





마로니에 - <동숭로에서>


그 햇빛 타는 거리에 서면 나는 영원한 자유인일세

그 꿈의 거리에 서면 나는 낭만으로 가득 찰 거야

많은 연인들이 꿈을 나누고 리듬 속에 춤추는 거리

나는 그 거리 거리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싶어

하늘 향해 외치듯이 내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싶어

우리들의 이야기들은 가슴속에 빛나고 있네


붉은 석양을 등에 지고 걸어오는 많은 사람들

가로등에 불이 켜지면 불빛 속에 춤을 출거야

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하는 만남을 위한 카페 불빛들

달무리 진 하늘 보며 환호하듯 소리를 지르고 싶어

별빛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랑과 음악이 흐르는 이 밤 이 거리에 나는 서 있네



동숭로. 혜화역 대학로의 거리를 가리킨다. 좋아하는 동네다.  마로니에가 불렀던 <동숭로에서>의 곡 가사 그대로 낭만과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가끔 예술가의 기운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홍대와 파주, 혜화를 간다. 홍대는 음악 예술인의 기운을, 파주는 미술과 출판 예술인의 기운을, 혜화는 많은 연극 예술인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혜화동, 대학로, 동숭로. 어떤 이름으로 불리던 나 역시 이곳에서의 많은 추억과 낭만이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민들레영토'라는 카페가 있었다. 독특한 카페였다. 찻값이 아닌 문화비라는 걸 내면 얼마간의 시간 동안 차를 마시면서 머무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청춘들은 책도 보고, 회의도 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소문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민들레영토의 알바는 외모를 보고 뽑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민들레영토에서 일하던 누나들은 예뻤고, 형들은 잘생겼었다. 첫사랑과 연인이 되기 전 친구 사이였을 때, 같이 혜화동에 간 날.  아는 누나가 혜화동 민들레영토에서 일을 했고 그곳에 들렀다. 그 누나도 예뻤다. 누나는 카페에 들어간 나를 알아보고, 내 옆에 있던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두 분이세요? 사이좋은 연인석 괜찮으세요?"


사이좋은 연인석이라는 말에 나는 내 옆에 있던 사람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누나의 이끌림에 사이좋은 연인석을 안내받았다. 둘이서 마주 보고 앉는 자리가 아닌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당시 내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살면서 가장 흐뭇하고 순수한 미소를 지었을 테다.


영화 [레인 맨(Rain Man)]을 좋아한다.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과 탐 크루즈(Tom Cruise)가 주연한 영화다. 자폐증 환자인 형과 그의 유산을 노리는 동생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이 명작은 후에 대학로 연극에 올라간 적이 있다. 임원희가 극 중 더스틴 호프만 역할을, 이종혁이 탐 크루즈 역할을 맡았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시절 데이트하면서 이 연극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이종혁은 탐 크루즈만큼 미남은 아니었지만, 훌륭한 배우들 바로 앞에서 훌륭한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도올 김용옥 교수가 마로니에 공원에서 길거리 강연을 하기도 했다. TV에서 보던 유명인사가 침 튀겨가며 행인에게 철학을 논했다. 그가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그 특유의 말투는 TV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마로니에가 부른 <동숭로에서>를 사랑한다. 마로니에가 부른 <동숭로에서>처럼 이 길 위에서는 자유가 느껴진다. 낭만이 느껴진다. 청춘과 사랑이 느껴진다. <동숭로에서>의 메인 보컬 신윤미와 권인하는 그 어느 시절보다 이 곡을 부를 때가 아름답다. 요즘 인터넷에서 권인하의 창법을 보고 '천둥 호랑이' 창법이라고 부르는 걸 봤다. 불호령을 내리듯 커다란 성량으로 무섭게 노래하는 권인하의 창법을 약간은 희화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숭로에서>를 부를 때의 권인하는 아름답다. 자유롭고 낭만적이다.


신윤미는 국내 음악사에 있었던 묘한 사건의 장본인이다. 한국판 *밀리 바닐리 사건이라고 할 만한 립싱크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신윤미다. 그녀가 최초 레코딩 했던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은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신윤미는 이 곡을 레코딩 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소속사는 신윤미를 대신할 새로운 멤버를 뽑았고 그녀들은 신윤미 파트를 립싱크 했다. 립싱크가 흔하던 시절이었지만, 가수 자체가 다른 인물을 립싱크 한 사건은 드문 일이었다.

*(80년대 후반 큰 인기를 끌었던 남성 듀오. 실제 노래했던 이가 아닌 두 사람이 립싱크로 활동했다.)


<칵테일 사랑>의 보컬과 코러스, 편곡에 참여했던 신윤미는 후에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승소했다. 당시 신윤미를 변호했던 변호사의 이름이 익숙하다. 이름이 박원순 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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