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Feb 08. 2018

물어서 아픈 게 대체 뭐예요?

이문세 <옛사랑>에 대해. 

이문세가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옛사랑>을 부른다. 아, 좋다. 참 좋다. <옛사랑>에서 가장 훌륭한 가사 구절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보통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구절을 꼽는다. 그래 인정. TV 자막으로 가사가 함께 나오는데 문득 다른 구절에서 궁금증이 생겼다. 이영훈 가사의 특이함이라고 불러도 될까?


이문세와 고은희가 함께 부른 <이별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대 내게 말로는 못 하고 탁자 위에 눌러 쓰신' 부분의 실제 가사가 ‘눌러 쓰신’이냐, ‘물로 쓰신’이냐로 음악 좋아하던 사람들끼리 아옹다옹 한 적이 있다. 


이문세가 라디오에서 ‘그 가사는 눌러 쓰신 이 맞다’고 해서 일단락되었지만, 실제 가사가 ‘물로 쓰신’이었다면 더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시각적이고 더 찌질 하잖아. 이별 앞에 손 부들부들 떨다가 컵에서 흘러내린 물로 '그대여 안녕' 써 내려가는 모습. 어우 찌질해.


<옛사랑>의 가사를 보면서 궁금증이 생긴 구절은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였다. 생각할 꺼리를 주는 가사다. 여기서 '물어도'가 누군가 화자에게 옛사랑에 대한 Ask를 한다는 건지, 누군가 화자에게 Bite를 한다는 건지. 문맥상 100%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 Ask의 뜻으로 쓰였다고 치면 화자에게 누군가 옛사랑에 대해 물어봐도 "나 괜찮아! 멘탈 강해!"라는 뉘앙스라면, 후자 Bite의 뜻은 "나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만큼 독한 사람이야. 옛사랑 따위 일도 아니야!" 하는 뉘앙스다.


때로는 Ask의 뜻으로 들렸다가 또 때로는 Bite의 뜻으로 들린다. 앞선 가사와 굳이 문맥을 따져보면 후자 쪽이 더 가깝긴 하겠지만, 곡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생각한다면 전자가 더 어울린다. 누가 물어서 아픈 게 멘탈이냐, 피지컬이냐 정도로 고민되는 가사다. (궁극적인 속뜻은 둘 다 멘탈이긴 하다)


어떠한 단어를 전달했을 때 100% 뜻이 전달되는 단어보다 생각할 꺼리를 주는 가사를 좋아한다. 음악의 생명력이란 실연자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닌 청자의 삶과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법. 생각 끝에 내가 내린 <옛사랑> 가사의 답은 이건 그냥 이영훈 아저씨가 중의적으로 말장난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청자들에게 가사 툭 던져놓고 “내 가사 쉽게 이해하려 들지 마. 한 번 고통 속에 살아봐라. 이놈들아!” 하고 아주 고약하고 섬세한 장난을 친 거다. 이영훈 가사가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가사의 뜻을 이영훈 아저씨가 이문세와 나누었는지는 모르겠다. 나 몰래 대중들에게 속뜻이 알려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는 바가 없다. 나중에 정동길에 간다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길에 간다면 이영훈 아저씨를 보고 와야지. 그리고 인사해야지.


잘 지내시나요? 

그런데 있잖아요. 

물어서 아픈 게 대체 뭐예요?


*서울 중구 정동길에는 음악가 이영훈의 추모 노래비가 있다.


이문세와 故이영훈


이전 09화 동숭로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