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멎고 나면 거절을 당해도 '진짜로'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 또 거절조차도 작가의 이름을 편집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특히 거절당한 이야기가 썩 능숙하게 쓰인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이작 아시모프-
책을 내야지, 작가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서 처음으로 쓰고 모은 원고는 음악 에세이였다. 200곳이 넘는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책이 되지 못했다. 그때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고, 나는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바닥을 향해 자꾸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200번이 넘는 투고를 하면서, 아예 메일을 열어보지 않는 듯한 출판사도 있었고, 복사붙여넣기가 분명해 보이는 답신을 주는 출판사도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많은 투고 과정에서 모두가 거절을 해온 것만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진작에 포기해 버렸겠지. 글이 좋다고, 원고가 좋다고 말해준 출판사 덕분에 서너 번 정도는 책을 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어느 출판사 대표와는 미팅을 하기도 했고, 또 다른 출판사와는 계약서 초안이 오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못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려 들 때쯤이면, 출판사 놈들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희망 한 조각씩을 던져주었다. 나는 그 희망을 받아먹으며 숱한 거절에도 다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수 있었다.
200번이 넘는 투고를 하면서 책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내가 200번만큼이나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좋다. 그때는 정말 아물지 않을 듯한 상처였으니까. 가끔 안 해도 될 말로 상처를 주었던 몇몇 출판사가 있을 때는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 마저도 보기 싫어질 정도였다.
결국 음악 에세이는 잠시 묻어두고, 대신 200번이 넘는 투고 과정과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내 이야기를 자전적 소설로 쓰게 되었다. 소설 원고는 60여 곳의 출판사 투고 끝에 책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책과 세 번째 책 역시 출판사 투고로 출간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때마다 출판사의 거절은 뒤따라왔다. 200번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자주 상처받았고, 가끔씩 웃을 수 있었다.
세 번째 책 이후에는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주어 책을 내게 되었다. 200번 넘게 상처를 받아야 했던 음악 에세이도 다섯 번째가 되어서는 책이 될 수 있었다. 투고가 아닌 출판사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주면서 앞서 받았던 그 많은 상처들이 조금씩 아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아물 것이라 생각했던 이 상처들은 글을 쓰는 동안에 수시로 다시 벌어지곤 했다. 출판사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해서, 어딘가에서 원고를 청탁했다고 해서, 누군가 내 글을 아끼는 팬이라고 해서 내가 쓰는 모든 글이 그때마다 환영받을 수는 없었다.
그제야 글을 쓰는 사람에게 '거절'은 일상이고 생활이며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작가 지망생 시절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거절'을 당해도 한없이 가라앉기보다는, 그 거절을 피드백 삼아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는 점이다. 책을 내고서 알게 된 몇몇 출판사 편집자들을 상대로는, "예전에 제가 그곳에 원고를 보냈다가 까였는데 말이죠." 하고서 웃으며 농을 칠 수도 있게 되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듯이, 거절은 작가 지망생을 진짜 작가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물론 견디기 어렵고, 금방이라도 손을 놓고 싶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쓴다면, 벌어지는 상처를 한 번에 아물게 해 줄 강력한 연고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후에는 웬만한 상처쯤은 모두 이겨낼 수 있다. 비록 나는 200번이 넘는 상처를 받고서야 그 연고를 바를 수 있었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조금이라도 빨리 그 약을 찾아 바를 수 있기를. 그렇다고 상처받기가 두려워서 자비출판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고.
출처 -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다른출판사 / 엮은이 존 위너커, 옮긴이 한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