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해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은 이것이다.
"아이를 낳지 마라."
나는 이 조언에 따랐다. -리처드 포드-
글쓰기와 관련된 이런저런 명언들을 접하며, 나에게 맞는 것은 따르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하려는 편이다. 다만 리처드 포드가 최고의 조언이라며 따랐다는 '아이를 낳지 마라.'에는 따를 수도, 무시할 수도 없다.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을 때에는 이미 나에게 처와 자식이 있었으므로.
첫 책을 내고서 자주 하는 후회가 있다면 나는 왜 이렇게 늦은 나이에 책을 쓰게 되었나 하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쓰는 건 좋아했으니까. 조금만 진지하게 마음을 먹었더라면 좀 더 일찍이 책을 쓰고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삼십 대 대부분을 이렇다 할 꿈도 없이 지내다가 마흔 가까이 되어서야 책을 내고 싶다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전에는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전연 하지 못하고 살았다. 내 주제에. 나 따위가. 책이라면 응당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내는 것이지, 라며 엄두를 내지 못했다.
책을 한번 내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힘입어 뒤늦게 작가 지망생이 되었을 때 나는 결혼 8년 차로 아이가 둘 있었다. 그러니 "아이를 낳지 마라."라는 글쓰기 조언은 애초에 어기며 시작한 셈이다.
다만 리처드 포드가 따랐다는 '아이를 낳지 마라.'가 정말 글쓰기와 관련된 최고의 조언일지는 생각해 볼 만한 주장이겠다. 얼핏 생각했을 때 글을 쓰는 데에는 아이가 없는 삶이 확실히 도움이 될지 모른다. 우리말에도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있잖은가. 아이들은 부모에게 행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온갖 근심과 걱정을 안겨주기도 하니까. 가령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니 한동안은 혹은 평생 동안 아이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이란 대체로 빈곤하다. 나 혼자서는 글을 쓰면서도 어찌어찌 입에 풀칠하며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글만 써서 아이를 먹여 살리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글쓰기를 멀치감치 밀어내고, 생계를 위해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가 아이가 생기기 전, 또 결혼도 하기 전에 작가의 꿈을 가지게 되었더라면, 그때도 리처드 포드가 따랐다는 글쓰기 최고의 조언을 알았다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글쎄.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해도, 삶에 우선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아는 한 소설가는 오랜 결혼생활에도 난임을 겪으며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한낱 글쓰기보다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더 갈구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난임 병원을 다니며 겪은 이야기들을 모아 소설을 쓰기도 했다. 아이를 낳지 말라는 것이 누군가에겐 최고의 글쓰기 조언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아이를 낳는 일이 '작가'가 되는 것보다 훨씬 고달프고 이루기 힘든 꿈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이 아이들 이야기를 글로 쓰기도 한다. 각자 나름의 육아 이야기부터 가족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아이들에 관해 쓰는 것이다. 알고 지내는 한 작가는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예민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도 했다. 그런 분들에게는 오히려 아이의 존재가 글쓰기에 커다란 플러스가 된 셈이다.
나 또한 아이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글로 적어낼 때가 많다. 특히나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첫째 아이가 대여섯 살쯤,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아빠 나무가 춤을 춰."라고 말해주었을 때에는 저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서 감탄하기도 했다. 아이의 그런 표현은 글쓰기에 있어 곧잘 영감이 되어주기도 한다.
2018년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포드가 따랐다는 최고의 조언은 애초에 어겨가며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시간을 되돌린다 하여도 나의 선택이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세상에는 글쓰기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까.
물론 아직 아이가 없는 작가 지망생이라면 "아이를 낳지 마라."가 정말 최고의 글쓰기 조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가 예민한 편이고, 나 같은 경우는 몇몇 소리들에 아주 민감한 편이다. 서점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마주하거나, 쿵쿵쿵쿵 뛰어다니는 아이를 볼 때면, 아이들을 그 상태로 방치해 두는 부모가 밉기도 하고, "아빠 일루 와봐." 하는 아이의 멘트는 내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더라도 어쩐지 피곤함이 상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가끔 몇몇 아저씨 작가들이 자신의 책 출간을 두고 '출산'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러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왜 그런 비유를 쓰는걸까.
출처 -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다른출판사 / 엮은이 존 위너커, 옮긴이 한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