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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GWORK STUDIO 최형욱 Jan 30. 2023

(1) 빈둥의 과제

어린이들이 노는 일이 어째서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을까?

질문. 어린이들이 노는 일이 어째서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을까? 


빈둥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저희 팀원들이 모두 함께 몸으로 체감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놀이는 과거에 숨쉬기처럼 자연스러웠던 일이 왜 오늘날 마치 계곡물을 역류하는 것처럼  구현하기 힘든 일이 되었을까?입니다. 


 빈둥플레이 all right reserved


첫 번째 장소 사용 허가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유지를 빌려서 임의로 놀다가 치워본 경험은 이미 두 차례의 시범운영사업을 통해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아르코 공공예술사업에서는 놀이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두고 사회적 공유지에 놀이 장소를 세우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여러 차례 미팅결과 결론부터 말하면 빈둥의 놀이실험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땅 사용권리를 승인해 줄 공공기관은 없었습니다. 


'어린이들이 마음대로 놀다가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라는 질문을 내세우며 어느 부서도 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논리는 거대 관료제 조직 시스템 안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절대명제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추궁하고 벌칙으로 누군가를 문책하고 혹은 자르고 다시는 같은 일 발생하지 않도록 문제를 무마하고 기관장의 안위를 옹립하는 방식으로 모든 책임회피 문화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는 사실을 여러 문화예술 사업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몸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 처리 과정을 지켜본 조직원들은 본의 아니게 다음과 같은 조직 생리를 DNA에 무의식적으로 새기게 됩니다. 


'시키지 않은 새로운 일을 꾸며서 득 될 일이 하나 없다.'

'힘든 일은 손절하고 적당히 버티다 순환보직을 기다리자.'


예를 들면 한 교장 선생님은 정년을 몇 년 앞두고 마지막 임지로 한 지역 초등학교에 부임하셨습니다. 학부모회에서 그동안 여러 가지 교육자치 활동을 해왔고 자치적으로 이런저런 사업 제안도 하고 마을과 협업해서 교육 공동체 일을 도모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놀이도 하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남은 임기 무사히 잘 채우고 정년 퇴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학부모 회장님을 불러서 조용히 타이릅니다. '회장님 더 이상 새로운 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운동장은 만일의 사고와 민원에 대비해서 보호자의 동행 없이 방과 후에 놀면 안 되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실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조금 다듬어서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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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요즘 학교 놀이터에 부모 없이 노는 어린이가 애초에 없긴 합니다.

많은 어린이들 돌봄 교실로 혹은 노란 학원차를 타고 다음 코스에서 코스로  혹은 부모의 차를 타고 바로 하원합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프로그램 안에 소속되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초대 플레이워커인 야마노 히데야키 씨는 이러한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두고 다대화(多大化) 사회가 되어 간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어린이가 어른들의 감시와 관리 아래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지점입니다. 지금 기성세대들의 어린 시절을 잠시 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산과 계곡과 바다와 골목을 누리며 스스로 개발한 콘텐츠들은 누군가 비용을 받고 가르쳐 주었던 것일까요? 우리가 어린 시절 배웠던 용기와 호기심 어린 탐구 정신은 어떤 프로그램에서 배웠던 것일까요? 방치와 자유의 중간쯤에서 스스로 친구들과 함께 체득했던 아닌가요?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요?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국가와 사회는 4차 산업혁명 AI 논하며 창의적 혁신과 역량중심의 문제해결능력을 교육과정의 목표로 내세웁니다. 중등 대학교육과정 10년 내내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정을 맞고 조직에 들어가서도 무언가 열정적으로 기획을 하다 감사라도 걸리면 모든 것이 날아가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가 된다는 것은 '조선을 탈출'하거나 혹은 '자기 정신 승리'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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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어린이들의 시간은 총칼 없는 전쟁터입니다. 

어린이들의 시간은 시장에서 돈이 됩니다. 출산율은 갈수록 줄어가는데 고모 삼촌 이모에 조부 조모까지 모두가 외동 하나를 지지합니다. 그러니 어린이 관련 콘텐츠 상품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한 경제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 키즈 콘텐츠 시장은 10년 전에 비해 거의 몇 배 증가한 5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평가합니다. 


제가 강남의 한 공립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예술수업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쉬는 시간에 무심코 질문하였습니다. 너희들 학원 끝나고 보통 몇 시에 집에 가냐? 3분의 2가 밤 10시 이후에 집에 돌아오고 일부 몇몇은 11시에 들어와 학원 숙제하고 나면 보통 새벽 1시에 잠든다고 말하였습니다. 현재 12살의 하루입니다. 


대부분 주변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들이 다니는 학교였습니다. 버릇없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고 착하고 성실하고 어여쁜 어린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견디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들,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일수록 세상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각박한지 잘 알 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에서 자신의 어린이가 뒤쳐지거나 자존감이 하락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것만 시킨다고 해도 그 최소한의 기준이 매우 버거워진 상황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2000년대 이후 이 강박의 기준이 점점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20년 전에도 대학입시와 비평준화지역 고등입시는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치열함이 점점 초등에서 유치원까지 아래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은 높아지고 갖추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불안이 부모들의 마음을 엄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시대에 상류 용이 되지 않으면 최소한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인서울 대학을 가지 못하면 괜찮은 직장을 얻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부모의 마음을 삼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소수의 상처 입은 승리자와 대다수의 패배자가 모멸감과 수치를 주홍글씨처럼 몸에 인두로 새기고 살아갑니다. 이 두려움이 어린이들의 시간을 선행과 앞서야 한다는 강박의 시장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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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편으로 어린이들의 자유와 일탈에 있어서 부모들이 집안에서 자녀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부분은 바로 '스마트 폰'입니다. 단순히 중독과 게임은 나쁘다는 식의 사설만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건설적 여가 시간 활용에 대체재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도 마을도 친구도 공간도 모두 어른들의 선택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어린이들이 자기 효능감을 마음껏 누리며 값싸고 빠르게 재미에 접근하는 방법은 스마트폰 만한 것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의 시간은 첨단 미디어 기업들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이미 직업적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이들 시청이 돈이 된다는 것을. 일단 한 번 입문하면 충성도가 높고 또 시청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청소년들의 아직 덜 발달된 전전두엽의 충동에 취약한 구조는 미디어 생산자의 수익으로 연결되기 매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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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공동체 만들기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젊은 부모들일수록 단체 조직 활동에 대한 부정적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느슨하고 자율적은 만남과 모임을 선호하는 성향이 뚜렷합니다.


과거의 패러다임은 열악한 사회 기반에 대응에 자조적으로 세력을 모아서 힘을 마련하고 이 조직의 힘을 바탕으로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통용되던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 별로 여전히 존재하는 새마을회입니다. 

새마을회 활동이나 각종 사회클럽과 협회활동은 자급 자조의 긍정적인 역할이 있었지만 현재에는 사실 마을 안에서 끼리끼리 이거나 여러 공공재 기득권을 일부 극소수 집단이 독점하는 등 문제도 많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신규 유입된 후주민 들은 이런 조직에 들어가서 부역을 하거나 봉사할 이유도 동력도 없습니다. 


공통된 관심사 기반이 무너진 사회에서 무언가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시도입니다. 


빈둥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 놀권리에 대한 공통된 관심사로 모였지만 이 관심을 펼치는 방향은 모두가 제 각각 일 수 있습니다. 

내 아이만 창의적으로 잘 크기 원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내 아이가 잘 크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생각일 수 도 있습니다. 이 일을 실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느슨한 연대의 방식부터 세력을 만들고 규합해야 한다는 방식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조율하고 조직하는 일은 전업으로 한다 해도 매우 힘들일 일 수 있습니다. 


빈둥은 월급을 받는 법인회사 상시 조직이 아니라 예술가, 예술교육활동가들의 느슨한 연대 조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을 전부 조직화해내기에 아직 한계점과 부족한 지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202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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