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9
저 결혼해요.
주위 사람들에게 결혼 소식을 전하면 축하의 메시지와 반사적으로 다섯 가지 질문 고개로 넘어간다. 순서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어도 질문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1. "축하해, 결혼식은 언제야?"
2. "결혼 결심을 하게 만든 신부는 어떻게 만난 거야? "
3. "신혼집은 어디로 정했어?"
4.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여행지가 아이슬란드라는 것을 밝히면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이라는 감탄과 함께 등장하는 마지막 다섯 번째 대미의 질문.
거기, 안 추워?
그렇다. 국가명이 얼음의 땅인데, 누가 그 잔혹한 나라 이름을 듣고 "아이슬란드로 가니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아무튼 이래 저래 좋겠네."라고 노래를 불러줄까. 대부분 아이슬란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음, 좋을 것 같은데 힘들 것 같아."라며 높은 산을 등정하려는 탐사대에게 보내는 것과 비슷한 아리송한 경의만 보여줄 뿐이다.
우리도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걱정했던 부분 역시 아이슬란드의 날씨였다. 추위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려면 꽤 두텁고 무거운 옷이 필요하고 더군다나 그런 옷들이 대개 예쁘지 않다. 온도 차이로 여행 짐의 양과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이슬란드 기상청 사이트부터 온갖 언어의 여행 후기들까지 살펴보며 정보를 동냥했다. (취합한 데이터와 약간의 배짱을 더해 '아이슬란드는 춥지 않다'라는 결론을 얻었고 '유니클로 경량 패딩'이 우리가 가져간 가장 두꺼운 옷이 되었다.) 그러던 중에 아이슬란드의 날씨에 대한 재밌는 속담을 몇 개 찾았다.
"There are seven different kind of weather in one autumn night"
(가을 하룻밤 동안에만 일곱 가지 다른 날씨가 존재한다.)
"if you don´t like the weather in Iceland, wait 15 minutes"
(아이슬란드의 날씨가 마음에 안 들면 15분만 기다려라.)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해 체념이 느껴진다. 뉘앙스에 따라선 불만 가득한 볼멘소리로도 들린다. 어제 같은 비바람의 날씨가 아이슬란드에선 좋은 날씨에 속한다고 렌터카를 넘겨주던 직원이 던진 농담이 생각난다. 하지만 변화가 많은 만큼 맑은 날씨도 갑자기 찾아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운전 중 지평선 위의 선명한 아치를 그리는 웅장한 무지개를 만나고 나서부터다.
높은 산이나 건물의 방해가 없으니 참 시원하고 정확하게 그려진 반 원이다. 그저 대기 중 물방울에 빛이 산란하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워낙 웅장한 크기와 정교한 형태에 압도된다. 아무리 앞으로 달려도 좀처럼 닿을 것 같지 않는 거대한 무지개 앞에서 겸허해지기까지 한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9:13) 구약 성경의 창세기에서는 40일의 대홍수 이후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신의 약속의 상징으로 무지개가 등장한다. 40일 동안 비가 내린 후의 무지개는 이보다 40배는 크지 않았을까. 방주 위에서 넋을 놓고 무지개를 바라보는 노아를 떠올려본다.
무지개가 점점 넓어진다. 다가오는 건지, 내가 오래 달린 건지, 날씨가 더욱 화창 해지는 건지 무엇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지개 빛과 겹치는 풍경들이 신비한 광경을 만들어낸다. 우리도 닿으면 뭔가 시간 이동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 오프닝 화면이 눈 앞에 보이도 하고 <지구 용사 선가드>의 주제곡이 귓가에 맴돌기도 한다. 동화 같은 장면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아이슬란드다.
구름이 걷히고 점차 날씨가 맑아지더니 그늘에 가려졌던 신록의 아이슬란드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이슬란드 속담처럼 정말 만화경같은 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