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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Apr 04. 2018

*2. 쾌쾌한 아이슬란드 도착

20170918

  우리 부부는 키가 20cm 이상 차이가 난다. 큰 쪽은 나다. 가끔씩 본인보다 훨씬 큰 나의 큰 체구를 부러움의 눈으로 볼 때가 있다. 까치발도 들지 않고 높은 선반에서 그릇을 쉽게 빼낼 때나, 침대 밑에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곳까지 청소할 때 아내는 옆에서 감탄하곤 한다. 콜드플레이가 내한한 콘서트에서 스탠딩으로 관람했었는데, 앞의 관객들 때문에 시야를 방해받는 본인과는 달리 아주 태연하게 감상하는 나를 시샘까지 하며 정말 부러워한 기억도 스쳐 지나간다. 



  오늘은 작은 아내가 정말 부럽다. 분명히 아내의 옆자리 승객이 이륙할 때만 해도 있었는데, 자리를 옮겼는지 언제부터 보이지 않는다. 운 좋게도 아내는 자리 하나가 더 생겼다. 아담한 아내는 1인 좌석 위에서도 가뿐하게 가부좌를 틀었던지라 한 자리의 여유까지 더해지니 이젠 누울 수가 있었다. 머리를 밸 수 있게 내 무릎까지 내어주니 퍼스트 클래스 부럽지 않은 침대가 생겼다. 현대 사회에 최적화된 경제적인 인류다. 이른바 '호모이코노미언스'



  이런 부러움이 생길 만큼의 길었던 비행을 마치고 아이슬란드의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출발하여 11시간 정도 비행을 마치고 현지시간 새벽 4시 50분에 경유지인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9시간 동안 대기했고, 다시 오후 2시에 아이슬란드로 출발하여 3시 10분, 드디어 케플라비크 공항 도착했다.  


 인천 공항에서부터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는데 까지 24시간 이상을 편히 쉬지 못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신기하게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약간의 한기가 느껴지는 바람 속에서도 상쾌한 기분마저 느꼈다. 18일 새벽 1시 한국에서 출발했는데, 아이슬란드에 도착하여 시간을 확인하니 시차를 적용한 시계가 18일 오후 3시 10분을 가리켜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시계 상으로는 반나절 정도만 지난 것이다. 그리니치 천문대의 마법을 느껴보는 순간이다. 반대로 하루가 통으로 날아갈 예정인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의 걱정이 되지만, 그 걱정은 3주 후에 생각하기로 한다. 다행히 20일이라는 여행 일정이 그렇게 짧은 기간이 아니라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다.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와서 렌터카를 예약했었던 회사의 담당자를 만났다. 인사를 나누며, 옅은 비가 내리는 오늘 날씨가 이만하면 좋은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차 열쇠를 받고 짐을 옮겨 싣는다. 우리 차는 미니 4륜 지프차 '짐니'다. (Suzuki Jimny 4x4 Automatic Older model 2015) 이 작은 차가 아이슬란드 대자연 속에서 우리를 지켜줄까 의심스럽다. 



  아이슬란드는 면적(103,000 km²)에 비해 인구가 적다. 전체 크기는 우리나라(100,210 km²)와 비슷하지만 전체 33.43만 명의 인구수(33.43만)는 서울 마포구(38.13만) 보다 더 적은 숫자다. 그래서 차도 많지 않았고, 교통 시스템도 단순하다. 시동을 걸며 시작한 걱정은 몇 분 집중해서 운전하다 보니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이슬란드어로 된 표지판은 끝까지 적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꼭 한/영키 잘못 변환하고 한참을 입력한 긴 영문 오타같이 생겼다.


  차창 밖 풍경을 내다보는 여유가 생겼다. 차창 밖으로 생경한 아이슬란드의 정취를 느껴본다. 

옅은 비가 내리는 회색 하늘 밑의 넓은 들판은 들풀과 검은 돌무더기로 가득하다. 파리하고 덤덤한 무채색의 시공간에 다행히도 짙푸른 이끼가 사방 곳곳에 끼어 녹음의 색을 더한다. 이 촉촉한 생기가 아이슬란드를 운치있게 만든다.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퀴퀴하지 않고 쾌쾌하다. 옹기종기 모인 원색의 지붕으로 덮인 집들, 거리 위의 다채로운 색색의 표지판. 이 곳 사람들은 바위의 이끼처럼 자신만의 발색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퀴퀴하다: [형용사] 상하고 찌들어 비위에 거슬릴 정도로 냄새가 구리다.
쾌쾌하다: [형용사] 1. 성격이나 행동이 굳세고 씩씩하여 아주 시원스럽다. 2. 기분이 무척 즐겁다.


  삶의 색깔이 드러나는데에는 더없이 매력적인 도화지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관계에서의 상실과 아픔을 치유하고 자신만의 색채를 찾기 위해 마지막 목적지를 핀란드로 정한다. 분명 핀란드도 매력적인 곳이겠지만 하루키가 아이슬란드를 먼저 경험했다면 소설 속 순례의 피날레 장소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2016)> 에는 핀란드와 아이슬란드 여행의 기록도 있다.)


  고즈넉한 풍경을 느끼며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ík)에 도착했다. 골목의 비슷한 집들 사이에서 호스트가 메시지로 보내줬던 설명과 사진을 대조하여 예약해둔 숙소를 찾았다. 바로 앞에 주차를 하고, 무거운 캐리어들과 가방들을 현관 앞으로 옮기고 문을 여는데, 아뿔싸 여행의 난관이 여기일 줄이야. 열쇠의 위치와 문을 여는 방법에 대해 메시지로 상세하게 설명을 들었지만, 당최 열쇠는 보이지가 않는다. 얕은 처마 밑에서 차가운 비를 맞으며 낑낑 대기를 십 여분이 흘렀다. 잊고 있던 여행의 피로가 이제야 몰려온다. 마침 안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면 끝까지 열지 못한 채 우리의 아이슬란드 여행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아내는 그대로 숙면이다. 씻지도 못하고 잠드는 걸 보면 아이슬란드까지 이동했던 시간이 고단했나 보다. 

시간을 보니 오후 6:30

허니문의 첫날밤. 도착했던 모습 그대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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