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919
우리는 도통 싸움을 하지 않는 커플이다. 인류애가 남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관계의 무결에 집착하거나 갈등에 대한 강박이 있는 사람들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인생에서 ‘절대로’라는 말은 없는 것이라고 배웠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 겪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머지않아 내일이라도 당장 호되게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 번씩은 꼭 찾아온다는 결혼 준비 기간을 포함해서 아직까지는 단연코 없었다. 운 좋게도.
사실 싸움이라는 것은 서로 원고와 피고의 역할을 필사적으로 떠넘기고, 서로의 잘잘못에 대한 공방이 가능해야만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언제나 한 사람의 과실이 명백하기 때문에 애당초 싸움의 시작이 불가한 측면이 있다. 그 "한 사람"은 참 기묘하게도 대부분 나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싸우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면 훗날 우리 집에는 부부 클리닉이 시급한 불쌍한 아내와 억울한 남편만 남을 것이다. 앞의 문장을 읽어본 아내도 내 잘못만큼이나 자신의 잘못도 많이 있었다고 고개를 젓는다. 다행이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께 우리가 고매하고 지혜로운 신혼부부라는 오해를 살 수 있겠다. 괜한 노파심에 글을 쓴 의도를 조금 밝히자면, 부부 관계에 대한 고찰과 백년해로에 대한 실전 팁을 다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룰 수도 없다. 써보려고 해도 몇 문장 지어볼 수 조차 없을 것이다.
그저 잘 싸우지 않는 이유가 우리 둘의 극명하게 나뉘는 성향의 차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흥미로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다. 좋은 감정이 움틀 때부터 이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상대에게 비슷한 점을 발견해서 느끼는 유대보다 다른 점이 하도 많아서 생긴 호기심이 더욱 컸다. 우리 부부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의 차이를 아주 쉽게 이야기하는 프랑스 인 한 명을 발견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사람들이 일을 처리할 때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엔지니어링 engineering’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브리콜라주 bricolage’ 방식이다. 두 개념을 쉽게 분리하기 위해 벽에 못질하는 상황을 예로 들면, 엔지니어링 방식은 설명서에 적힌 대로 반드시 망치를 찾아서 못을 내리치는 것으로 결과를 위한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결과가 통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매뉴얼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내가 엔지니어링 방식에 가깝다. 행동에는 항상 순서가 있고 이해를 위한 단계가 존재한다. 때문에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까지 반드시 예열이 필요하다.
이와 반대로 나는 브리콜라주 방식을 추구한다. 찾기 어려운 망치보다 훨씬 더 손에 가까이 있는 백과사전으로 못질을 한다. 못이 벽에 박히는 것에 의미를 두는 방식이다. 그러다 못이 제대로 박히지도 않고 괜히 백과사전만 너덜너덜해질 수 있다. 설명서를 먼저 읽어 볼 걸 하며 후회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에 같은 상황이 와도 분명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할 것이다. 이것이 엄마와 아내에게 혼나는 이유이다. 그래도 이 방법은 일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혁신적인 사고가 가능하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서로 다른 것 중의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 둘의 직업과 직무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내의 직업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고, 나는 교육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한다. 아내는 문제를 구조화하고 방법을 최적화하여 정답에 도달하는 일을 하고 있고, 반면에 나는 정답이라는 것은 없으며,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둘은 원인과 결과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관점의 차이는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와 사고의 체계까지 영향을 주었고, 이를 통해 형성된 가치관과 생활 패턴들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욱이 아내는 내가 아침잠이 없는 것을 절대 이해 못하며, 나는 아내의 낮잠 무용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 물과 기름처럼 한데 섞이기 참 어려운 존재들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 온 여자는 같은 은하계에라도 있었지 우리 둘은 아예 다른 차원의 시공간 출신이다.
이렇게 너무 다르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차이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대화와 행동의 시작에서부터 이런 마음을 먹곤 한다.
‘내 생각과 다르겠지?’
이런 생각이 상대의 그대로를 바라보려는 노력일까? 그냥 이러다 보니 싸움이 생기지 않았을 뿐이다. 이해와 배려가 아니다. 그렇다고 체념과 포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서로 다른 존재에 대한 ‘수긍과 인정’ 정도 아닐까 한다.
이제부터 아이슬란드 한 바퀴를 돌아볼 생각이다. 말 그대로 링로드 여행이다. 우리가 사는 곳으로부터 이역만리 떨어진 미지의 섬에서의 2주 간의 거대한 여행 계획은 아주 단순하다. 앞서 말한 수긍과 인정이다.
보조석에는 아내가, 운전석에는 내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수긍과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액셀을 밟고 있는 이 자동차의 주행 방향을 인정하기만 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