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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un 20. 2018

*5. 첫 번째 위기

20170919

 한 달 전쯤, 여행을 준비하며 아내가 가장 기대했던 곳이 블루 라군이었다. 추운 날씨 속에 수면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에메랄드 온천에 몸을 담그는 상상만으로도 꽤 설레지만 아내는 실리카 호텔 때문에 가고 싶어 했다. 블루라군 리조트 안에는 실리카 호텔이 있는데 룸의 발코니를 통해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온천이 딸려있다. 숙소에서 등만 근지러워도 온천욕을 하러 들어갈 수 있는 기막힌 곳이다. 

실리카 호텔 룸 내부 사진 (https://www.bluelagoon.com)
실리카 호텔 룸 외부 전경 (https://www.bluelagoon.com)

 결과적으로 1박 숙박 예약을 하지 못했다. 비싼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허니문인 데다가 하루 정도면 식은 밥을 먹어도 온천에서 뱃속을 다 데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예약이 모두 차있어 우리가 아이슬란드에 있는 기간 동안에는 묵을 수 있는 객실 자체가 없었다. 와서 알았지만 아이슬란드에는 방이 많은 호텔을 찾기 힘들다. 대부분은 1,2층 건물이다. 사진처럼 실리카 호텔도 객실 수가 몇 개 되지 않는다. 아내는 식음을 전폐하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여유롭게 생각한 탓에 하루 묵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온천은 아직 예약이 가능한 시간대가 존재했다. 한 달 전 우리는 블루 라군 온천 이용을 이른 아침으로 예약했고, 오늘이 그 날이다.  

 

블루라군 입구 초입(좌), 주차장과 온천 여행객들의 짐을 보관할 수 있는 보관소(우)

 블루라군 근처에 도착하면 눈을 감아도 블루라군인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유황 냄새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냄새는 고약해도 청명한 하늘과 어우러지는 하늘빛 온천, 현무암 지대 곳곳 김이 모락모락 나는 풍경, 거기에 바위에 핀 푹신푹신한 이끼가 더해 신비롭고 생경한 풍경을 펼쳐놓는다. 이 곳에서 어떤 스트레스가 생길 수 있을까. 오전 시간 내내 블루 라군 온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온천욕 중 우리 여행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은영이의 스마트폰이 침수되었다. 방수 기능이 있어서 자신 있게 들고 왔는데 크랙 속으로 온천물이 침투한 것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전원 명령을 실행하여 끄고 켜기를 반복한다. 그동안 이런 앱도 깔았구나를 알정도로 별 걸 다 작동시킨다. 아주 바쁘다. 그러더니 결국 모든 작동을 멈췄다. 내 아이폰은 한국에서도 제 구실을 못하는 구형 모델인데, 더 추운 아이슬란드에서는 더 일찍 잠이 드는지라, 여행을 시작하며 새로 산 유심 16GB를 아내 폰에만 넣었었다. 여행 계획 전체적으로 차질이 생겼다. 

스마트폰이 물을 먹고 나니까 인공 지능이야~


 여행의 총무를 맡은 분의 스마트폰이 없으니 예약과 결제, 정보 탐색 등 여러모로 큰 일이다. 더구나 개인 인증이 불가능하다 보니 다른 컴퓨터에서 메일을 확인하려고 로그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 위급한 것은 카카오톡 메시지다.  아내는 이런 경험이 있다. 긴 시간 동안 접속 자체를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보낸 카톡 데이터가 시간 순으로 삭제된다고 한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 바로 스마트폰을 수리한다고 해도 앞으로 남은 긴 시간 동안 접속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카톡이 지워질 것이다. 팀 원들의 업무 진행 상황은 나중에 발품 팔고 깨져가며 파악한다 해도 결혼식 후에 지인들이 보내는 많은 축하 메시지들은 읽지 못하고 답장할 방법이 없다. 그 속에 혹시라도 중요한 메시지들이 있기라도 한다면, 풀기 어려운 오해와 그로 인한 지독한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널리 널리 알리는 것이다. 청첩장에도 들어간 웨딩 사진을 찍느라 며칠간 함께 고생했던 아내의 시동생에게 한 번 더 SOS를 쳤다. 신혼집으로 가서 인증이 필요 없는 아내 컴퓨터로 접속하여 아내에 요청대로 카톡 상태를 바꿔놓았다. 응급 처치는 동생의 도움으로 마무리했다.


핸드폰 고장 났어요. 급한 일은 남편 카톡으로 연락 주세요 
아내의 이름은 앙망할 '앙'에 더할 '증'

 첫 번째 위기 끝에 얻은 것은 아내의 인간관계에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남편" 호칭이다. 감격스럽다. 아직 아내의 스마트폰은 꺼져있고 예상치 못한 불편함으로 몇 주간의 우당탕탕 여행이 예상되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둘 만이 누리는 작은 기쁨에 감사할 줄만 안다면, 좋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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