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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un 27. 2018

*7. 날씨가 좋다

20170921

 잠깐 맑았다 이내 흐려지고 비가 내리는 아이슬란드의 심술스러운 날씨가 야속했다. 유라시아 판과 북아메리카 판이 만나는 협곡 사이에 서서 지질학적으로다가 아주 경이로운 장면을 마주해도 어째 아내 입에선 한 숨뿐이었다. 어제 우리는 흐린 날씨 속에 싱벨리르 국립공원에 갔었다.

회색 빛의 Þingvellir National Park (싱벨리르 국립공원) 저 멀리 보이는 Öxarárfoss (옥사라 폭포)


날씨
  ‘날’에 시간적 개념이 더하여 ‘날, 날짜’가 되는데, 이는 해[태양]가 하늘에 반복적으로 뜨고 지는 데서 비롯된다. 접미사 ‘-씨’는 ‘글씨, 말씨, 마음씨’ 등에서와 같이 ‘그 상태나 태도’를 뜻한다. 
백문식,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
오른쪽이 유라시아 판 왼쪽은 북아메리카 판

 우리가 시끄럽게 예찬했던 아이슬란드의 싱그러운 대자연에 누가 회칠이라도 한 것일까. 세계의 많은 언어들이 이런 현상을 가리켜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날씨가 좋지 않다.'라고 말한다. 분명 억만고부터 이런 날씨가 인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보건 의료 2015’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항우울제 소비량은 인구 1000명당 20 DDD(1일 사용량 단위, 2013년 기준)인 것에 비해 아이슬란드 인의 하루 소비량은 118 DDD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우울한 마음을 일으키는 이유가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 탓이 아닐까 생각하며 예민해진 아내의 눈치를 살핀다.


영무룩


 사실 어제, 아내는 정말 울었다. 로맨틱한 신혼여행을 만끽하며 싱벨리르 국립공원의 장엄한 협곡과 폭포들 앞에서 예쁘게 사진도 찍고 싶고, 투명한 실프라 호수에 비치는 맑은 하늘도 봐야 하고, 깨끗한 밤하늘에 펼쳐지는 오로라도 만나야 하는데, 현실은 내리는 비 때문에 비닐 넝마를 걸치고 물 웅덩이를 살펴 걸을 뿐이다. 게다가 머리와 옷은 흠뻑 젖고 공들여 한 화장은 지워지니 멋진 광경은커녕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니 그럴 만도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나는 일어나면서부터 시무룩한 아내를 어떻게 풀어줘야 하나 궁리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남편은 이렇게 웃고 있으니 더 약이 올랐나


 침실 문을 나서면 보이는 주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쨍쨍한 햇빛이 예사롭지 않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오늘은 3일 머물렀던 레이캬비크에서 다른 마을로 이동할 계획이기 때문에 도착하며 풀었던 많은 짐들을 다시 꾸려야 한다. 서둘러 나가야 한다. 캐리어에 짐을 하나 챙길 때마다 창문 밖 날씨도 한 번 살핀다. 아내 얼굴도.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굉장히 좋은 날씨다. 채 마르지 않은 도로의 물기가 강한 햇빛을 반사한다. 운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부시다. 미간에는 잔뜩 인상을 쓰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싱벨리르 공원으로 다시 향한다. 어제 울던 아내에게 내일 날씨가 좋으면 골든 서클에 다시 와보자고 달랬었다.

 날씨가 좋으니 짐니 조수석에는 요리사가 탑승하셨다. 선보인 메뉴는 샌드위치였는데, 마음에 여유가 넘쳐서 그런지 빵 사이에 양파와 토마토를 비롯한 햄, 크림치즈가 듬뿍 들어갔다. 재료를 아끼지 않으니 단연 최고의 맛이다. 정신없이 사진도 찍고 화장도 하고 계신 요리사가 손수 먹여주시기까지 하신다.


이것이 기분 좋은 날 만들어주는 샌드위치다


 항우울제 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지만, 사실 아이슬란드는 매년 UN에서 발표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인근 북유럽 국가들과 순위를 바꿔가며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은 행복국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UN, <World Happiness Report 2017>) 더불어 이러한 행복을 바탕으로 오래 살기까지 한다. 2016년 일본 후생 노동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계에서 남성들이 가장 장수하는 곳으로 홍콩 다음이라고 한다.(켄 모기, <이키가이>)


 아이슬란드 사람들, 이 곳 날씨처럼 오락가락하나 보다. 인간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리 아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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