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1
어제부터 골든 서클(Golden circle)을 여행하며 남겼던 사진으로 여정을 정리해 본다. 골든 서클은 싱벨리르 국립공원과 게이시르와 굴포스를 잇는 아이슬란드의 서남 쪽의 여행 경로를 말한다. 오늘 우리는 레이캬비크에서 출발하여 시계 방향으로 골든 서클을 돌아 시크릿 라군을 경유하여 셀포스라는 마을에서 하루 묵을 생각이다. 글은 편의상 굴포스까지의 1부와 시크릿 라군의 2부로 나누려고 한다.
36번 도로, 이틀 연이어 오고 가는 길이라 그런지 운전하는 것이 꽤 손에 익는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장면은 굉장히 새롭게 느껴진다. 화창한 날씨 탓이다. 오늘 마주하는 강산풍월은 어제의 장면을 잊게 할 정도다. 만약 오늘 이 곳을 다시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탄성을 내지르지 못했을 생각에 스스로를 칭찬하기 바쁘다.
레이캬비크에서 차로 30분만 달려가면 싱벨리르에 도착한다. 차를 세우고 입구로 몇 걸음 옮기다 보면 유라시아 판과 북 아메리카 판의 대치가 만드는 대로에 들어선다. 둘의 틈이 매 년 얼마씩 벌어진다고 하는데, 여기에 풍화 작용을 더하여 만들어진 거대한 협곡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사잇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세차게 내리는 폭포수를 볼 수 있고, 싱벨리르 국립공원의 넓디넓은 들판은 내려다볼 수 있다. 자연의 위엄은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발을 꼼짝 못 하게 만든다. 밀레의 <만종>에 등장하는 부부가 고개를 숙이며 느꼈던 엄숙함일까. 때가 되면 토르와 오딘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이 곳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그럴 만도 하겠다.
이 곳은 지질학 적인 의미만큼 아이슬란드의 문화적으로, 세계 정치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870년쯤 바이킹의 후예들이 아이슬란드에 정착하여 최초의 정부를 세운 곳이며, 930년, 알싱기(althingi)라는 이름의 세계 최초 민주 의회가 만들어진 곳이다. 싱벨리르는 고대 스칸디나비아 인들의 언어로 "assembly field(의회)”을 의미한다. 1798년까지 입법과 사법의 중요한 사안이 생길 때마다 대표자들이 소집되어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을 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당시 포박한 범죄자를 폭포 속으로 밀어 넣어 처형하는 등골 서늘한 장면을 삽화 설명이 있다. 지나치게 친절하고 깔끔한 그림이 더 무섭다.
싱벨리르의 실프라 호수에 고인 물은 지하에서 솟은 빙하수라고 한다. 멀리서도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그런 까닭에 실프라 호수는 스킨 스쿠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기 전에 스킨 스쿠버 예약을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정작 이곳에 오니 유라시아 판과 북아메리카 판 사이에서 유영하는 기분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마침 모두 마치고 뭍으로 나온 사람들이 뜨거운 입김을 연신 내뿜는다. 우리 부부는 차가운 물속 신비한 느낌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온천에만 들어가자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싱벨리르에서 365번 도로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게이시르에 도착한다. 사실 표지판을 보기 전부터 도착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제 블루 라군 근처에서 맡았던 유황냄새 때문이다. 차를 세워두고 산책로를 따라 사람들이 운집한 곳으로 눈치껏 걸어간다.
분화구 같은 구멍마다 솟구치는 분수를 보기 위해 여행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둘러 서있다. 각 국에서 모여든 취재 열기가 뜨겁다. 모두 물이 터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예고 없이 순식간에 물이 솟아 버리기 때문에 지금 잔잔하고 조용한 게이시르라도 누구도 눈을 뗄 수 없다. 게이시르를 에둘러 서있는 수십 명이 스마트폰으로 녹화와 정지를 반복하고 있는 장면은 우습기도 하다. ‘에휴, 이게 뭐라고 저리들!’ 우스워하면서 내 손은 여차하면 고프로와 스마트폰을 작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분수 버튼 누르는 직원이 출근하지 않았는지, 도대체 사람이 더 모여야 터지는 건지, 지체되는 게이시르를 보며 의심하는 순간, 뭔가 심상치가 않다. '부글부글’ 물 끓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녹화와 정지를 반복했던 카메라의 영상 기능을 다시 작동시킨다. 솟구치는 순간,
'와, 이거구나!' 감탄하며 그만 찰나의 시간을 써버렸다. 아뿔싸 셔터가 늦었다. 우린 본 거다. 춥다. 가자.
게이시르에서 오던 방향으로 10분 정도 내달리면 굴포스에 도착한다. 멀리서도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보일 정도로 대형 폭포다. 점심시간도 되고, 춥기도 해서 차 안에서 컵라면을 먹고 나가기로 한다. 보온 물병에 싸온 뜨거운 물이 미지근해졌지만, 굴포스를 바라보며 컵라면을 먹으니 여행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밥도 말아먹었다. 속이 든든하다.
이제 굴포스를 만나러 간다. 웅장한 경치를 잘 담아볼 생각으로 카메라 삼각대를 가지고 내린다. 높은 경사의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굴포스의 아래 폭포부터 만날 수 있다. 바람이 매서운데 부서지는 폭포의 작은 물방울까지 실려 우리를 덮친다. 서둘러 위 쪽의 폭포를 보기 위해 비바람을 뚫고 올라간다. 좋은 포인트를 자리 잡고 삼각대를 설치하여 굴포스의 모습을 카메라에 빠르게 담는다.
21미터와 11미터의 높이 아래로 한 번에 쏟아지는 엄청난 유량이 만드는 우렁찬 소리도 예술이다. 저 폭포를 보면 누구나 이런 멍청한 질문을 하지 않을까? ‘여기서 다이빙하면 살 수 있을까?’
아내는 저만치에서 갑자기 사진에 혼을 담고 있는, 굴포스와 함께 쫄딱 젖어가는 나를 구경한다. 사실 렌즈에 계속 물기가 닿아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어려워 오래 걸렸다. 한참 후에 추운 날씨 속 카메라 삼각대는 장갑이 필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삼각대를 폭포에 던져버리지 않는 한 한쪽 손은 주머니에 넣지 못한다.
골든 서클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