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1
굴포스에서 흠뻑 젖었던 몸을 차 안의 히터로 말리다 보니 운전하는 동안 어느새 청바지의 물기까지 다 날아갔다. 차가운 찝찝함이 사라지자 이제는 노곤해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온천수 배관의 도움으로 식물을 경작하는 그린하우스들이 보인다. 이런 작은 마을 사이에 비밀스럽게 숨어있는 명소, 바로 시크릿 라군이다.
그저께 갔었던 블루 라군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블루 라군이 관광객들을 위해 세련되게 잘 꾸민 워터파크 같은 곳이라면, 시크릿 라군은 마을 이장님이 마련해준 풀장 같다. 주변 자연경관과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그야말로 노천탕이다. 상대적으로 블루 라군보다 사람도 한적하고, 물속 온도도 더 뜨겁다.
오늘 일정의 기승전결이 기가 막히다. 피곤할 수밖에 없도록 혹사시키는 여행 이후에 탕천 입욕이라니! 들어가자마자 뜨거운 온천 속 광물질이 몸과 마음을 녹여버린다. 더우면 잠깐 물 밖으로 이동했다가 추워질 때쯤 물속에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지겨울 틈이 없다. 매서운 바람이 노천탕의 매력을 더한다. 부력을 돕는 스틱 몇 개를 집어와 자유롭게 헤엄치며 온천을 즐긴다.
구름이 몰려온다. 맑았던 하늘을 가리자 이내 흐려지기 시작한다. 다만 아직 덮지 못한 틈 사이로 마주 보이는 석양 볕은 눈이 부셨다. 시크릿 라군을 금세 금빛으로 물들인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오늘은 여러모로 선심을 써주는 듯 보였다. 그러면 그렇지. 곧 수면 위로 수많은 동심원들의 작고 미세한 파동들이 보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온천은 밤 10시까지 가능하다고 하지만, 오늘 우리가 묵을 숙소는 이 곳에서 조금 더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날씨가 더 궂기 전에 얼른 나가기로 한다.
어스름 속 금빛 석양을 뒤로하며, 골든 써클 속 오늘 하루를 반추한다. 금은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든다. 클림트가 물감이 없어서 금 색만 쓴 것이 아닐 것이다. 매료시키는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금 이상의 색깔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골든 써클과 금빛 석양, 오늘 하루 동안 우리 부부를 아이슬란드에 취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