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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un 30. 2018

*10. 셀포스에는 셀포스가 없었다

20170922

 아이슬란드 여행은 포스 투어라 할 정도로 여기저기 foss, 폭포가 많다. 산 위에 우거진 수목이 존재하지 않기도 하고 산이 물을 흡수하는 것보다 많은 양의 비가 내리기 때문일 것이다. 산 위의 많은 물들이 떨어질 기회만 보이면 아래로 낙하하는 탓에 아이슬란드 만천하에는 foss 투성이다. 

 아이슬란드를 다녀온 사람들의 폭포 리스트 중에는 공통적으로 셀포스(Selfoss)라는 폭포가 있었다. 지도를 보니 시크릿 라군에서 차로 40분 정도 거리에 셀포스가 있다고 해서 근처로 미리 숙소를 예약해두었다. 다음날 여유 있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말이다. 이상한 것은 괜찮은 숙소 하나 찾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이 폭포를 많이 찾는 것 같은데 잠은 다른 동네에 가서 자는 건지 의아해했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알게 된 Mr. Bjarney house에 도착했다. 방에다 짐을 풀고 스마트폰, 노트북, 카메라들을 충천한다.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켜고 일정을 확인해 보았다.

게스트하우스의 주인공, Bjarney 할아버지와 함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가장 불리하다. 
아뿔싸, 이 곳 셀포스에는 셀포스가 없었다.  
폭포는 북쪽에 있고 우리가 있는 곳은 남쪽에 있는 마을


 단순히 마을 이름이 셀포스라서 셀포스가 있는 줄 알았었다. 마치 평양냉면이라는 간판을 보고 '이 동네가 평양이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을 이름만 셀포스라는 사실을 지난밤 알았다. 은영이도 실소를 감추지 못한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한 셀포스.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진다. 폭포가 있었어도 비 때문에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다행이다.

지난 밤 저 오른쪽 싱글 베드에서 둘이 잔 거 실화인가요.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넘었다. 셀포스도 없겠다 이렇게 된 이상 비도 오고, 아침 식사를 여유 있게 해보기로 한다. 처음 향한 곳은 셀포스 시내에 있는 KFC 다. 아이슬란드는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대하며 세찬 비를 뚫고 도착하여 문을 여는데, 매장 문이 닫혀있다. 알고 보니 11시부터가 영업시간이라고 한다. 문을 여는 시간이 굉장히 다르다는 것만 알고 돌아간다.


 식당을 찾기도 애매해서 근처에 있는 크로난 마트로 가서 당분간 먹을 빵과 채소, 소시지 등의 식재료를 샀다. 차 안에서 크루아상 2개와 새우 샐러드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차 안이 내다보여 창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은 비가 무섭게 퍼붓는 데다 안과 밖의 온도 차이로 차창에는 금세 김이 가득 서린다. 

 그러면서 지난밤 저녁에도 숙소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는 아이슬란드에 와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과 컵밥, 기껏 만들어 먹는 샌드위치가 우리의 지금까지의 식사였다. 이런 생각으로 크루아상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내를 보니 괜히 미안해진다. 안 되겠다. 오늘 계획을 모두 취소한다. 오늘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날이다.

"샌드위치는 그만 " 슬픈 사진은 폴라로이드로

 아내 모르게 재빠르게 구글 맵으로 레스토랑 하나를 찾아보았다. 바닷 쪽으로 가면 Fjorubordid라는 해산물 레스토랑이 있다고 한다. 슬쩍 보니 리뷰와 평점이 준수하다. KFC에서 얻은 교훈으로 시간을 꼼꼼히 확인해보니 지금 영업시간 중이다. 점심은 맛있는 식당에서 먹자고 제안하니 아내가 활짝 웃는다. 

 

fjorubordid restaurant 입구

 작은 시골 마을이다. 내비게이션은 방파제 옆 허름한 건물들 사이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레스토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간판도 없어 막상 도착하고 나서 찾기가 힘들었지만, 현관문의 바닷가재 그림이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로고다. 

 창가 자리를 안내해준 친절한 웨이트리스가 메뉴를 소개해준다. 이 곳은 마늘 소스로 볶은 langoustine(바닷가재) 요리가 맛있다고 한다. 메뉴판에 가격을 안 볼 수가 없다. 이럴 땐 "그럼 그걸로 주세요"라고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메뉴를 보니 혼자 가볍게 먹는 기본 수프가 3만 원이다. 이 허름한 시골 식당에서 우리나라와의 1인당 GDP의 격차를 실감할 줄 몰랐다.  아이슬란드의 자연경관만큼 음식 가격도 정말 환상적이다. 

(2016년 기준 1인당 GDP : 아이슬란드 59,976.94 USD/ 대한민국 27,538.81 USD ) 

저 바닷가재, 한 마리당 6천원 꼴이다!
너네가 GDP가 그렇게 높아? 그렇다면 우리도 환상적인 엥겔지수를 보여주지!

 정말 맛있다. 리뷰와 평점이 더 좋아지게 생겼다. 오길 잘했다. 은영이가 두 팔 소매를 걷어 부치고, 맨 손으로 바닷가재들을 사정없이 해체하기 시작한다. 야무지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내가 배부르다. 하지만 나도 많이 줬으면 좋겠다. 


 셀포스에는 셀포스가 없었지만, 대신 엄청나게 맛있는 바닷 가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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