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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Aug 08. 2018

*12. 악천후가 선물한 Nina Simone

170923


피우욱-(바람빠지는 소리)

 새벽, 갑자기 등에 땅의 한기가 맞닿는 느낌에 눈이 떠졌다. 당최 이게 무슨 일인지 침낭 아래의 에어 메트의 바람이 갑자기 빠지고 곧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추워진다. 보일러와 침대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다행히 우리가 대여한 텐트가 투룸이라 여분의 에어 메트가 있어서 한밤중 다시 텐트 속 이부자리를 정돈한다. 에어 메트를 깔고 젖은 침낭도 새 침낭으로 바꾼다. 놀라운 것은 이런 소란을 피워도 은영이는 깨지 않는다.

그래, 잠은 보약이지

 다시 잠을 이어 자기 위해서 침낭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새 온기가 사라져서 너무 춥다. 아뿔싸, 몸의 민첩한 반응, 화장실도 가고 싶다. 어제 캠핑의 불편함을 너무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가. 옷을 다시 챙겨 입고 텐트 건너 서비스 하우스의 화장실을 다녀온다. 화장실을 다녀온 짧은 거리 동안에도 차가운 비를 맞았다. 겨울날 캠핑의 필수품이 '요강'이라는 것을 새롭게 배운다.


 그러고 보니 자기 전에도 이 시끄러운 폭포 소리가 들렸었나. 셀라란즈 포스의 낙수 소리가 온 동네에 가득하다. 거기에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요란하다. 거센 바람은 텐트를 강하게 흔들고, 텐트는 내 몸을 좌우로 흔든다. 서로 깨우는 난리 통에 잠을 다시 잘 수 있을까 걱정이다. 이렇게 사나운 비바람이 새벽 봉창(封窓)을 두들겨도 은영이는 정말 깨지 않는다. 캠핑 체질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것을 배운다.

"간 밤에 무슨 일 있었어?"

 아침이 왔다.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신호다. 날이 밝으니 텐트가 흔들리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밖에 나가보니 우리 텐트는 양반이었다. 옆의 텐트들은 고정된 핀과 케이블들이 탈출했는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구겨진다. 심지어 날아가는 텐트도 있다. 모두들 대자연 속의 낭만을 그리며 야영을 선택했을 텐데, 뭉개진 텐트 속에서 다급하게 움직이는 사람의 실루엣과 날아가는 텐트를 잡으러 가는 사람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며 애잔해진다. 아마 저들도 내 꼴을 보면 눈물을 흘릴 수도.

 이런 날은 정말 차 문을 여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차량 렌트를 수소문하며 온라인의 후기들을 검색할 때 폭풍우에 차 문을 열다 문 짝이 꺾였다는 무용담을 종종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난리 법석 속에서 침착함을 유지한다는게 보통 일이 아니다. 내 정신과 영혼을 제외하고는 차 안에다 모든 짐을 다 실었다. 보온 물 통에 따뜻한 물만 급수하고 1번 도로 동쪽으로 30분 거리 이내에 있는 스코가포스로 향한다.

셀라란즈포스-스코가포스

 비가 많이 오다 보니 군데군데 멋진 경관을 감상할 여유 조차 없다. 나만 쏜살같이 차 밖으로 나가 카메라에 서둘러 담고 젖은 머리와 옷을 털며 들어온다. 비바람이 더욱 심해진다. 스코가포스에 도착해서는 차 밖에서 대강 구경하고 지나간다. 금방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은 이르지만 오늘의 일정을 정리하고 숙소를 향해 이동한다.

 가는 길에 자동차 카오디오 메뉴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다 CD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의 차량 사용자가 미처 회수하지 못한 것이거나 오늘 같은 상황을 염두한 배려 깊은 선물일 것이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이런 것을 횡재라고 하나. 흘러나오는 음울하고 구슬픈 재즈 음악들은 이 비 오는 날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가수의 목소리는 성별을 정확히 알아내기 힘들 정도로 중성적이다. 오묘하고 몽환적이다. 이 노래를 들으려고 날씨가 흐린 것일 수도 있겠다. 수십 번을 반복해 듣는다.

frieze.com/article/be-free-nina-simone-story

 차 안의 흐르는 노래로 음악 검색을 해보니 "Nina Simone"이라는 가수의 노래라고 한다. 일대를 그린 영화도 있을 정도로 1950년대부터 활동한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라 한다. CD 안에는 곡이 10곡 정도가 담겨있었지만 아쉽게도 어떤 곡인지 음악 검색기가 정확히 찾아낸 것은 아래 여섯 곡이다.

- I put a spell on you (유투브 바로가기)
- Tomorrow Is My Turn  (유투브 바로가기)
- Ne me quitte pas (유투브 바로가기)
- Marriage is for old folks (유투브 바로가기)
- Gimme Some (유투브 바로가기)
- Feeling Good (유투브 바로가기)

 궂은 날씨 때문에  계획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차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덕분에 CD를 발견할 수 있었고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어쩌면 반복 듣기로 차 안을 가득 채운 Nina Simone의 음악들은 이번 우리 여행을 채우는 대표적인 '브금'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들은 먼 훗날 우리 기억 속 언저리에 아이슬란드 여행을 통해 느꼈던 감정과 정취의 지점들을 불러낼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오늘, 아이슬란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악천후가 남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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