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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an 26. 2019

*29. 아이슬란드의 밀당

170930

 공항으로 가는길, 오늘까지 우리와 함께 달려준 짐니를 위해 주유를 한다. 아이슬란드는 대부분 주유소가 셀프 주유 시스템이다. 미리 계산하고 주유기를 선택하는 시스템에 처음엔 당황했는데, 갈 때 되니 이 것도 참 간단하다. 가득 휘발유를 충전한다.  

나처럼 처음에 헤맬 사람들을 위해 <아이슬란드 주유 튜토리얼>을 준비했다.

 케플라비크 공항으로 가는 길, 아침까지만 해도 흐린 날씨였는데 몇 시간 만에 정말 기막힌 날씨로 변했다.

떠나기 아쉽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남긴 완벽한 여행 일정만으로도 충분히 오랫동안 기억이 될 텐데, 마지막 가는 날, 쏟아지는 햇빛이라니. 아이슬란드의 완벽한 밀당으로 아내는 달리는 차 안에서 아쉬움을 연발한다.


 가기 싫어


 만약 우리가 이 곳에 다시 온다면 챙겨 와야하는 것이 무엇일까? 또는 생각만큼 필요 없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행을 돌아보며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듣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듣기 위해 카오디오와 스마트폰을 연결할 수 있는 Aux케이블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불편함을 이유로 차 CD플레이어에 들어있던 Nina Simone을 만날 수 있었다. 수없이 반복해 들은 까닭에 우리 부부는 그녀의 어려운 재즈 가락을 제법 흥얼거릴 줄 알게 되었다. <참고: 12화 악천후가 선물한 Nina Simone>


 뭐니 뭐니 해도 필요한 것은 레인코트와 레인부츠다. 이렇게 아이슬란드 날씨가 변덕이 심할 줄 몰랐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항상 속수무책이었다. 아내의 화장은 흐르는 빗물에 지워지기 일쑤. 하루만 잘 버텨보려고 싱벨리르 국립공원 매점에서 1,500ISK(14,000원)이나 주고 산 일회용 판초 우의 2벌을 다음 날도, 다음 다음 날도 계속되는 비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결국 여행 끝날 때까지 사용했다. 하지만 일회용이기 때문에 비를 피하기보단 옷을 덜 젖게 하는 임시 방책이었다. 그래서 일정 내내 숙소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바닥에 옷을 말리는 것이었다.


 괜히 가지고 다녔다고 생각하는 것은 떠올리기 어렵지 않다. 바로 Cash, 환전한 아이슬란드 코로나(ISK) 지폐들. 카드 결제가 편리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혹시 몰라 비상용으로 Iceland banki에서 돈을 환전했었다. 하지만 저기 시골, 거리의 노점까지도 카드 결제 시스템이 잘 갖춰져있다라는 것을 알았다면, 떨리는 마음으로 은행에 들어가 환전을 요구하는 수고도 없을 것이고, 수수료를 무는 아픔도 없었을 것이다. 틈만 나면 환전한 현금 모두를 어떻게든 다 털어버리려고 노력했으니, 여행 내내 우리에게 큰 애물단지였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예상 밖에 잘 가져온 것은 무엇일까? 집에서 캐리어에 담을 때만 해도 이 물건들의 도움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바로 락앤락 통, 보온병, 여행라면, 장바구니와 보냉 가방이다. 락앤락 통은 아이슬란드를 예전에 다녀온 지인이 우리에게 꼭 가져가라고 했던 필수템이였다. 가벼운 통 두 개를 짐에 추가하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아 챙겨왔는데 이렇게 잘 사용할 줄 몰랐다. 호텔 룸안에서 간단히 식사할 때나 다음 날 먹을 샐러드나, 파스타를 도시락으로 준비할 때 참 요긴하게 사용했다. 보온병은 어머니가 꼭 넉넉히 가져가라고 당부하셔서 2개나 챙겨갔다. 사용할 수나 있을까 당시엔 의심했지만 여행 중 찾아오는 허기를 해결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 보온 통에 뜨거운 물이 있을 때 함께 위력을 발휘했던 여행 라면도 쏠쏠했다. 라면을 그냥 먹어도 맛있을텐데 즐거운 여행 길에 먹는 라면은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아이슬란드의 추운 날씨는 따끈한 국물과 정말 잘 어울렸다. 온천욕을 끝내고 먹었던 라면과 추운 밤 텐트 속에서 먹었던 라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짐도 가볍게 꾸릴 수 있고, 주린 배를 간편하게 채울 수 있는 여행 라면

 장바구니와 보냉 가방은 차 안의 부족한 수납공간을 해결해 주었을 뿐 아니라 여행 기간 내내 일용할 양식의 재료들을 신선하게 유지해야 하는 미션까지 완료했다. 소시지, 토마토, 루꼴라, 그리고 항상 시원해야만 하는 맥주까지.  

차 안에서의 식사는 시간도 아끼고 돈까지 아낀다. 하지만 맛까지 아끼진 않았다.

 돌이켜 보니 잘 가져온 짐들 모두 먹는 것들과 관련이 있다. 날씨보다 더 살을 에는 아이슬란드 물가 탓이다. 눈시울이 붉혀진다. 나중에 다시 올 땐 이런 짐들은 과감히 제외하고 그 대신 지갑을 두둑이, 아니 한도 없는 신용 카드 한 장 들고 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아이슬란드 섬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우리의 여행 일정을 정리해본다. 사전에 숙소 예약과 여행지들을 검색하며 구글 맵에 미리 기록해 두었다. 그렇게 계획부터 구글 맵을 활용했고, 현지에서는 네비게이션으로 사용했다. 우리가 여행했던 자세한 정보들을 한데 모아 구글 맵 링크를 공유한다.


 구글 맵 보기  https://goo.gl/maps/b9PvrD6o7wQ2

13일 링로드 투어 전체 일정표와 그림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아이슬란드. 아내가 또 이야기한다.

가기 싫어


그렇다. 13일 동안 이 나라 한 바퀴를 돌고 나서의 우리의 결론은 “가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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