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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an 20. 2019

*27. 잊을 수 없는 마지막 밤

170929

 F570번 도로를 나오자마자 오늘의 목적지인 Arnarstapi_아르나르스타피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마을이다 보니 숙소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여행의 마지막 밤을 조용히 보내기에 좋을 아늑한 느낌의 호텔이다. 내일이면 드디어 이 큰 섬을 한 바퀴를 돌아 레이캬비크에 도착한다. 2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우리가 아이슬란드를 꿈꿔온 것보다 그 이상으로 기대를 충족시켜준 멋진 여행이었다. 단 오로라만 빼고.

Arnarstapi hotel

 내일부터 아이슬란드의 밤은 더 이상 기약이 없다. 이 어둔 밤이 더욱 애틋해지는 이유이다. 그래서 식사와 함께 와인 두 잔을 주문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무엇이든지 특별해지기 마련이고, 때론 그것이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메뉴판에 쓰여있는 가격을 무시하게끔 말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마지막 저녁 만찬을 충분히 즐기고 바로 옆에 있는 숙소로 돌아온다.


마지막 만찬 메뉴는 카레 라이스와 닭가슴살 스테이크, 그리고 와인

 아내는 오늘 하루 동안 비바람 속에 노곤했을 몸을 풀기 위해 샤워를 시작하고, 그동안 난 테이블에 앉아 사진을 정리한다. 여러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한데 모아 폴더링을 하고 외장하드에 담는다. 나름 몰두하여 정신없이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현관문을 열면 복도 없이 바로 밖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다른 나라의 언어라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느낌상 무언가 상기된 대화들이다. 아내에게 말하고 혼자 밖으로 나가본다.


 몇 사람들이 하늘을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다. 설마, 오로라에 대한 이야기인가..? 사람들이 주시하는 방향 구석구석을 아무리 살펴도 빛나는 별 몇 개와 달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방으로 들어와 노트북을 열어 아이슬란드 기상청 홈페이지로 들어가 오로라 지수를 살펴본다. 오늘 밤 아르나르스타피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관측 지수가 0~9에서 4 정도 된다고 한다.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는 아주 평범한 날인 것이다. 그동안 관측 지수가 아주 높았던 날들도 갑자기 비가 온다거나 날씨가 흐려져 볼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오늘도 오로라는 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뭔가 분위기와 낌새가 심상치 않다. 아쉬움과 간절함에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씻고 있는 아내에게 소리친다.

"여보 오늘 밤하늘 뭔가 수상해!" 호언장담 일지 허언이 될지 모르겠지만 오늘이 그토록 특별한 '마지막' 밤 아닌가.

여보 오늘 밤하늘 뭔가 수상해.

 한참 뒤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그래. 아이슬란드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이 곳에 온 이유 하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아직 있는 것이다. 문 밖으로 환호성이 들릴 때 확신이 들었다. 여행을 완성할 수 있겠구나.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은영이와 다급하게 밖으로 나간다.  

northern lights

 거짓말처럼 오로라가 눈 앞에 펼쳐진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극 지방 근처에서는 자연스러운 기상 현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정말 잊지 못할 꿈같은 장면이다. 환상적이라는 단어가 이 때 쓰라고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바로 머리 위에서 신비로운 형광 원단의 얇은 실크 스카프가 바람의 방향 따라 나풀거린다. 돌연 다른 모양으로 바뀔 때마다 각 국의 언어로 환호성이 들린다. 어둠 속에 오로라 빛을 찍기 위해 셔터스피드를 최대한 느리게 설정한 이유도 있겠지만, 뷰파인더가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감상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카메라에 담는 속도가 점점 늦어진다.


 어린 아이같이 뛰며 좋아하는 은영이의 모습은 꼭 담아야겠다.

 '마지막'은 정말 특별하다.

나라를 되찾은 표정이 이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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