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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an 19. 2019

*26. 570번 F로드를 타다

170929

 누군가와 운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바로 떠오르는 특별한 경험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대학 시절의 이야기다. 면허를 취득한 바로 다음 날이었는데 인천에서 용산으로 고속도로와 강변북로로 차를 몰았다. 퍼붓는 장맛비 때문에 와이퍼를 조절하는 것도 정신없는데, 그 와중에 차선 변경하랴, 내비게이션 보랴 진땀을 뺐었다. 익숙지 않은 내비게이션 안내 때문에 마포대교를 3번 왕복했지만, 다행히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았다. (물론 아주 이른 시간에 출발했기 때문이었지만) 주차를 하고 잠금 버튼을 누를 때의 그 성취감에 젖어 스스로 굉장히 대견스러워했던 것이 기억난다. 운전 자격을 얻은 첫날부터 빗 속 초행길 운전을 했던 나도 참 용감하지만 내가 쓸 걸 미리 예견하시고 내 이름으로 미리 임시로 보험을 들어놓으시고 차를 빌려주신 아버지가 더 용감하시지 않았나 생각한다.

 두 번째는 2014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의 중, 고등학교로 교육 출장을 다니며 기록한 자동차 주행 거리 이야기다. 해마다 평균 60,000 km 정도를 운전했다. 운전을 많이 하는 영업 직군의 주변 지인들과 견주어봐도 나보다 많이 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지구의 둘레가 40,000km라고 하니 일 년마다 한 바퀴씩 돌고 반 바퀴 더 가 우루과이 쯤 가있는 것이다.(참고:antipodesmap.com) 당시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많은 학교에서 우리 회사 교육 철학에 공감해주셨다는 생각에 이런 장거리 주행 기록을 일종의 훈장처럼 생각하고 있다. 정말 자랑스럽다.

 이런 이야기들에 못지않은 무용담 하나를 더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슬란드 F로드에서 운전을 한 이야기다. 정확하게는 비바람이 부는, 스네이펠스 요쿨 국립공원 안에 있는 F570번 도로를 탄 이야기다. F로드는 아이슬란드의 하이랜드의 오프로드 구간을 말한다. Oxi로 가는 길이라던지 데티포스 길은 이 길에 비하면 가소로울 정도다. 조수석에 탄 탑승자 분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우리가 차로 밟고 있는 산 길이 도대체 도로인지 아닌지를 누군가가 지나갔을 바퀴 자국으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바로 옆은 산비탈이다. 행여나 차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저 돌멩이들처럼 협곡 사이 빙판으로 굴러갈 판이다. 속도를 낼 수 없어 천천히 이동해야 할 수밖에 없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자취를 감추고 있고, 산 위로 올라갈수록 안개가 짙어진다. 산 밑에서는 구름이라고들 생각하겠지. 딱 전설의 고향에 나올 법한 으스스한 분위기다.

오늘의 목적지 아르나르스타피로 가는 길 중 최단 거리 F570번 도로


 사실 우리는 F도로인 줄 모르고 탔다. 내비게이션에서 일러준 숙소로 가는 최단 거리였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우리가 렌트한 짐니는 4륜 구동 자동차이기 때문에 F로드를 탈 수 있는 자동차다. 일반 승용차는 진입할 수 없다. 그만큼 하이랜드는 운전하기 어려운 구간이며, 어느 정도 계획과 준비를 하고 타야 한다. 우연히 이 도로로 산을 넘고 있는 우린 긴장의 연속이다. 마주 오는 차도 없고, 어두워져 표지판도 찾기 힘들다. 거기다 전화 신호까지 약해져 내비게이션도 느려지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사고라도 난다면 어떻게 알려야 하나, 우릴 발견해줄 때까지 이 혹한의 추위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내는 이 길을 황천길이라 명명했다. 

 무섭긴 해도 산은 산인가 보다. 드디어 내리막이 등장한다. 안개도 조금 걷히고 달빛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높이 올라온 만큼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꽤 넓다. 내려가는 길 저 끝에 마을이 보인다. 여유로운 마음이 불쑥 생겼는지 연무 속 고요한 산의 전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긴장이 이내 안도와 감탄으로 바뀐다. 오는 차도 없어 도로에 차를 세우고 내려 보이는 모든 것들을 카메라로 담기 시작한다. 차가운 바람이 매섭긴 해도 오늘의 이 풍경을 꼭 다 담아가리라. F도로에서의 운전,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생겼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난 추위에 떨며, 너는 따뜻하게 히터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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