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929
마녀의 살짝 구겨진 고깔모자 같은 모습의 산, Kirkjufell_키르큐펠이 있는 곳이다. 뾰족한 봉우리가 교회의 첨탑과 닮아서 교회를 뜻하는 ‘kirkja_키르캬’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오늘 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 꼭대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키르큐펠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에 가득 세워둔 차들이 아니었다면 지나칠 뻔했을 정도다.
"여기서 찍어 볼까?"
차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한참 망설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신혼여행의 표지를 장식할 사진을 여기서 찍을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여행에서 남기는 사진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찍고 싶었다. 그 사진 한 장 찍자고. 정장과 드레스 한 벌, 각자 구두 한 켤레, 그리고 구겨지지 않게 잘 보관하기 위한 옷걸이까지 한국에서부터 챙겨 왔다.
물론 첫날부터 만약 이 생각으로 부지런히 사진을 남겼다면 이후부터는 고민 없이 여유를 부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사진을 찍어야 그 ‘한 컷’에 많은 의미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일이면 아이슬란드를 떠나야 하는데 그 특별한 사진을 과연 남길 수 있을까 하며 초조해하고 걱정할 법도 하지만 다행히 난 어릴 적부터 개학 전날 밤 몰아쳐 완성한 방학 과제들로 칭찬받은 적이 꽤 많다. 그때부터였는지, 나는 마감의 압박이 만드는 드라마를 믿는 편이다.
오늘 아퀴레이리에서 이 곳까지 4시간 동안 운전하며 지루하기는커녕 지나치는 여러 장면들을 보면서 표지 사진을 구상하기 바빴다. 피오르드와 작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배경으로 찍으면 어떨까. 초원 위에 말이나 양 무리와 함께 찍으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판단의 찰나마다 비바람이 세차게 분다거나, 여행객 무리가 많다거나(우리는 부끄러움이 많다), 또는 이 장면은 아이슬란드가 아니더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결정들을 계속 다음 장면으로 넘겼다.
그렇게 오늘 Kirkjufell_키르큐펠까지 달려온 것이다. 내일의 날씨가 오늘보다 좋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이 흐린 날씨 속 잘 보이지 않는 키르큐펠스 앞에서라도 찍어볼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비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 바라며 아이스팩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어 늦은 점심 식사로 시간을 벌어본다.
배불러서인지, 초조해서인지 조금 빗 발이 줄어든 것 같다. 이 때다. 짐니 안에 잘 걸어둔 짐들을 풀어 사진 촬영을 준비한다. 그 좁은 차에서 셔츠와 슈트를 입고 넥타이 매듭을 확인한다. 아내는 드레스를 입고 옷핀으로 핏을 조정한다. 머리를 만지고 구두까지 갈아신었다. 차 밖에서 우리를 어떻게 봤을지 모르지만(사실 짐작은 간다.) 그 오해의 눈길을 걱정할 겨를이 없다.
준비를 마치고 삼각대와 카메라를 챙겨 차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데, 이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가랑비라면 준비한 김에 한 컷이라도 남겨보는데, 찍을 엄두도 못 내는 장대비다. 그래. 뭐, 내일까지 기회가 있겠지. 이렇게 고생한 만큼 우리 인생에 크게 기억될만한 기막힌 사진 한 장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서로 위로하며 비바람 속 모험에 어울리는 옷으로 다시 갈아입는다. 또 한 번 습기로 가득 찬 작은 차가 요동친다. 오해하라면 오해하라지. 어차피 우리는 허니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