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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an 05. 2019

*23. 아는 만큼 보인다

170928

 Goðafoss_고다 포스는 우리말로 이름을 풀이하면 '신(神)의 폭포'다. 너무 아름다워서 하늘에서 신들이 가끔 내려와 유희를 즐겼을 정도의 경치라 해서 이름을 지었다고 해도 어울린다. 실은 1000년 경 당시 알싱기(아이슬란드 의회) 의장이 아이슬란드를 기독교 국가로 공인하며 이전까지 믿던 신들의 동상을 이 곳에 내다 버린 일로 이름을 '신의 폭포'라 지은 것이다. 신들이 물속에 잠겨있는 폭포라는 뜻이다.

 이런 스푸키 한 폭포 이야기를 내셔널지오그래픽 2012년 5월호에서 기사로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고, 당시 부록으로 받은 고다포스의 인상적인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참고: 0화 결혼식 > 에게나 이 폭포가 감격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마치 녹물 같은 고다 포스 앞에 가만히 서있어야 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 아내는 춥고 비도 오는데 남편 따라 세차고 커다란 흙탕물 웅덩이를 보러 온 것일 뿐이다. 아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장면을 보고 감탄하는 게 이상한 사람인 거지. 그래서 고다포스도 데티포스처럼 여러 곳에서 폭포를 감상할 수 있지만 함께 가보자는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아내는 저멀리 혼자 사진 찍기에 몰두하는 나를 촬영하고 감정이 더 격해졌다

 자연 온천 동굴, Grjotagja_그리오타이아우에서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아주 중요한 러브신의 촬영지로 유명하다며 열광하는 내 동생과는 달리 나와 아내는 그 드라마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서 동굴에 들어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꼭 한 번 와보고 싶은 순례지지만 우리에겐 그저 김서린 안경을 닦기 바쁜 어둡고 습한 동굴일 뿐이었다. 똑같은 동굴이라도 아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동굴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그리오타이아우보다 이 추운 날씨 속 수영복 차림으로 이 어두운 동굴 안으로 온천욕 하러 유유히 들어가는 가족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왕좌의게임>을 봤다면 그 장면을 컨셉으로  사진찍기 바빴을 수도

 고다포스와 그리오타이아우가 있는 이 지역은 myvatn_미바튼이라는 호수가 있는 곳이다. 흐린 날씨 속에도 호수 군데군데 내뿜는 빨갛고 노오란 식물들의 향연이 비 속에서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르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지만, 다른 곳보다 유난히 유황냄새가 심하다. 화장실 하수구 냄새에 비슷하다. 우리가 묵는 호텔이 호수 근처라 냄새와 습기 때문에 숙소가 전체적으로 꿉꿉하다. 게다가 온천수로 인해 화장실 구석구석 부식 현상이 심하다. 레이캬비크에서는 그냥 아이슬란드의 고유의 냄새구나 하고 넘겼는데, 이 것이 유황 때문인 것을 안 이후로부터는 잘 보이고 잘 맡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냄새도) 나기 시작한다.


 레이캬비크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링로드를 출발해 이제 아이슬란드의 북부 지역까지 왔다. 이제 빗 속에서의 운전과 아이슬란드 도로 시스템에 익숙해졌다. 하루 평균 4-5시간씩 운전을 해보니 짐니가 나에게 맞추는 건지, 내가 짐니에 맞춘 건지 모르지만, 꽤 만족스러운 차로 느껴진다. 물론 핸들은 왼쪽으로 살짝 뒤틀려 있지만, 리모트 잠금 기능도 아쉽지만, 작은 차종이라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아이슬란드의 비싼 기름을 무지하게 먹지만.. 가만 보자.. 편한 건지 불편한 건지 모르겠다. 알면 알수록 불편해진다.


아이슬란드 북부 사진(좌), 그리오타이아우-미바튼-고다포스 경로(우)

 그렇다. 모든 문제는 아는 만큼 보여서 발생한다. 그래서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지만 아는 것이 힘일 수도 있다는 말도 참이니, 아이러니한 세상 속에 정신과 마음 잘 붙잡고 살아야겠다. 짐니 핸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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