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재 Dec 31. 2018

*21. 악마의 폭포, 데티포스

170927

 2016년 겨울,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왜 갔을까?’ 하는 영화 시사회 행사가 있었다. 2017년 개봉을 앞둔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시사회였다. 에이리언 시리즈를 좋아하지도 않고 , 그 흔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대작 영화 한 편 제대로 본 적도 없었지만, 시사회라는 이벤트가 처음이라 아내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갔던 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영화를 보고 혼란에 빠졌었다. 연속된 시리즈의 프리퀄 편이다 보니 영화의 스토리 전개보다는 온갖 암시와 떡밥만 가득해 무슨 내용인지 통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더구나 시사회에서 상영한 영화는 신작이 아니라 4년 전 영화 <에이리언: 프로메테우스>였다. 


 팬들에게는 앞으로 나올 신작을 위해 이전 영화의 기억을 불러오는 감동스러운 행사였겠지만, ‘에. 알. 못’ 두 명에게는 앞으로 나올 신작을 꼭 봐야겠다는 마음은 개뿔, ‘혼란과 오해를 돌이키려면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 산더미겠구나’라는 부담만 키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1년 후 엄청난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이 괴수 영화가 신혼여행의 복선이었다는 것이다. <에이리언:프로메테우스>에서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의구심이 해소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 배경으로 나오는 폭포가 바로 오늘 우리가 만나는 데티포스다.


 많은 사람들의 여행 리뷰를 보면 아마 데티포스가 아이슬란드에서 반드시 봐야 하는 폭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리뷰에는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의 수많은 질문들도 함께 달려있는데 바로 이 질문이다. 


“동쪽 뷰가 좋나요? 서쪽 뷰가 좋나요?”

 협곡의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양 쪽을 이어주는 길이 충분치 않아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이동하는데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여행자들은 데티포스의 동쪽과 서쪽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우리의 경우, 영화에서는 동쪽 뷰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야 하고, 서쪽 뷰는 한 번도 본 적 없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야 한다. 두 곳 다 가서 보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줄여 다른 곳 한 군데를 더 이동하는 것보다 이왕 왔으면 제대로 느끼고 가자는 아주 그럴듯한 게으름이다.

서쪽 뷰

 폭 100m, 높이 40m의 데티포스, 가히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수량과 힘을 자랑하는 폭포답다. 바트나 요쿨의 빙하에서 녹은 물이 모여 만든 폭포라 하던데 대체 빙하는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상상조차 힘들다.

동쪽 뷰

 양 쪽에서 본 데티포스 중 더 기억에 남는 곳을 고르라면 참 선택하기 어렵다. 동일한 폭포가 아니라 다른 폭포를 보고 온 것 같기 때문이다. 서쪽 뷰로 가는 862번 도로에서 나와서 864번 도로를 타고 데티포스 동쪽으로 가는데 시간이 무려 1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할 때 부족한 연료 때문에 1번 도로로 다시 나와 주유소를 찾아 왕복 1시간을 달려야 했다. 2시간 후에 도착하니 아까와는 다른 곳이라 느껴질 수밖에.



 누군가 데티포스를 악마의 폭포라고 이야기하던데, 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물론 거대한 폭포가 내뿜는 기운이 사람을 무섭게 압도하는 까닭이겠지만, 진짜 악마 같은 잔인함은 수 만 번 들썩이고 차 천장에 머리를 받으며 이동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비포장 도로에 있다. 데티포스를 보려면 악마에게 엉덩이를 바치고 와야 한다. 



엉덩이를 잃고 깨달았다. 많은 여행객들이 데티포스의 한쪽만 선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엉덩이를 데티포스에 던진 부부


이전 21화 *20. 색(色)의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