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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an 02. 2019

*22. 셀포스에도 없는 바리케이드

170927

 데티포스에서 상류 방향으로 15분 정도 바위 길을 걸으면 셀포스를 만날 수 있다. 드디어 Selfoss_셀포스다. 그렇다. 바로 셀포스가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묵었던 셀포스 마을에는 셀포스가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폭포다. <참고: 10화. 셀포스에는 셀포스가 없었다>


 집 뒤에 산비탈에서 흐르는 얇은 물줄기들까지 포함해서 아이슬란드에서 정말 각양각색의 Foss_포스들을 보고 있다. 인생에서 만날 폭포들을 미리 당겨 죄다 만나고 있다. 하지만 폭포들의 등급을 나눠보자면 지금 보는 셀포스는 아이슬란드 전체 중에 가히 마지막 레벨에 있을 법한 폭포다. 파노라마로 찍어도 전체를 담지 못할 정도로 옆으로 줄지어있는 굉장히 널따란 폭포다.

 아이슬란드에서 폭포들을 둘러보며 가장 놀랍고 그만큼 매력적인 것은 바로 폭포를 원하는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폭포 속에 들어가서 감상할 수도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진입을 제지하는 경고판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다. 자신의 담력만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원시적인 상상력과 자유로움이 발생시킬 안전사고가 괜히 걱정되지만, 오히려 자연 앞에 어떤 도움이나 방해 없이 홀로 서있을 때 자연의 위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사파리 관람차의 쇠창살 차창 때문에 맹수의 포효를 귀엽게 보지 않는가. 자연을 그대로 맞닥뜨린 인간은 무력해지고 숙연해지며, 조심스러워진다.

 이 곳처럼 우리도 누군가와 닿는 곳마다 설치한 수많은 바리케이드를 걷어낸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고집과 버릇, 기타 모든 판단의 준거들을 내려놓고 상대의 존재 그대로를 엄숙히 받아들이는 상태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 발자국 앞에서 폭포를 들여다보듯 상대의 마음에 (상대는 나의 마음에) 훨씬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원하는 언어 습관과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 여가를 보내는 방법과 식사 메뉴 선택 시 고려해야 하는 기준을 일일이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상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행동해 준다는 전제가 있다면야 걷어내는 것이 분명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너’라는 글자가 비슷하기는 해도 전혀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인 이상,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매사에 주의하고 또 조심하더라도 부지불식 간에 마음속 경계를 침범하는 일이 발생한다. (내가 혼이 나는 이유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내 마음속 바리케이드를 상대에게 일러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이유로 세워둔 것이다.

 이 곳도 여행객들이 많아진다면 어쩔 수 없이 말뚝을 박고 가이드라인을 설치할 때가 올 것이다. 새로운 룰은 폭포의 경관을 해치고 사람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막아서겠지만, 오래도록 이 폭포와 인간의 관계를 보존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서로에게 큰 의미가 있을수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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