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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Dec 29. 2018

*19. 우리의 무시무시한 계획

170925

 헨기 포스. 아이슬란드에서 두 번째로 높은 폭포답게 차로 오는 길에서도 산 정상 너머에 폭포가 언뜻 보였었다. 하지만 정작 폭포를 보기 위해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한숨 푹푹 쉬며, 도대체 이 폭포를 찾은 사람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생각할 정도로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폭포를 감상하고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폭포가 있기는 하냐고, 얼마나 가야 하냐고 물어가며 걸었다. 조금만 걸으면 도착한다고 하지만 앞에 보이는 건 서로 겹쳐진 구릉의 능선들 뿐, 폭포는 꼭꼭 숨어있다. 

아이슬란드 폭포 순위 <Icelandic Statistics> National Land Survey of Iceland

 그렇게 걷다 마지막인 줄 몰랐던 어느 언덕을 끼고돌자 이내 시야에 폭포가 들어온다. 암벽의 색깔이 빨간 것을 보니 헨기 포스가 맞다. 주변의 현무암 지층 사이의 붉은 진흙층으로 인해 붉은빛을 내뿜는다고 한다. 생경한 생김새만큼 받는 느낌이 또 다르다. 카메라에 담는다.

 어느 풍경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 없다. 카메라에 모두 담고 싶다. 카메라 스트랩들을 걸칠 어깨가 부족하다. DSLR, 필름 카메라 3정, 고프로, 스마트폰, 필요할 땐 폴라로이드 카메라까지 동원한다. 하루 일과의 마무리는 영상과 사진 데이터들을 외장하드 속 날짜와 여정으로 이름 지어진 각각의 폴더 안에 저장하는 것이다. 아, 그 이후엔 충전까지 완료해야 한다. 

 그래, 참 피곤하다.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카메라와 렌즈들을 장만하기 시작했던 20대 초반부터 비슷하다. 그때부터 여행 짐의 무게는 어떤 카메라 장비까지 가져가는지에 달려있었고, 사진으로 남기고 기록하는 것에 대해 열중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하기 일쑤라 여행 중 많은 곳을 둘러보기가 어려웠다. 여행 중 힘 빠지게 만드는 분실사고는 대부분 카메라와 관련된 에피소드며, 행여나 하루라도 사진 관리를 제대로 안 한다면 모든 일정의 시간의 흐름이 그 하루로 인해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이쯤되면 카메라가 여행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일기장까지 챙겨 왔다니 나는 여행할 마음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행은 절반도 안 지났는데, 향후 스캔할 필름 카메라 사진들까지 고려하면 외장하드 속 아이슬란드 사진 데이타는 무려 50GB 이상이다. 용량의 단위는 우리의 욕심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산과 바다를 가져갈 수 없겠지만, 이 섬을 데이터로 변환하여 가져 가려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품고 있다. 가상한 노력에 디지털 시대의 우공이산 정도로 해두자.

우공이산: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집을 가로막은 산을 옮기려고 대대로 산의 흙을 파서 나르겠다고 하여 이에 감동한 하느님이 산을 옮겨 주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말이다.
아이슬란드로 떠난 문익점 부부

 헨기 포스 근처에는 Lagarfljót 라가르플리오트 호수가 있다고 한다. 이 호수에는 sormur 소르뮈르라는 긴 뱀의 형상을 한 몬스터가 산다는 이야기가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오고 있다. 놀라운 것은 아니다. 전설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오랫동안 문명세계로부터 미지의 섬으로 여겨져 사방팔방 괴물 서식지다.

소르뮈르 목격담 youtube: einar1948
괴수들로 가득한 아이슬란드 섬  - John McKay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니 라가르플리오트 호수 대신 숙소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황량한 들판에 서있으면 바람과 부딪치는 나뭇가지 떠는소리에도 소름이 돋는다. 계속 여기에 있다가는 오늘 우리 카메라에 뭔가가 담길 것만 같다.

얼른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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