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재 Oct 03. 2018

*18. 1번 도로를 벗어나면

170925

 오로라는 보려면 크게 2가지 기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구름(cloud cover)이 없어야 하고 둘째는 낮시간의 태양의 활동(solar activity)이 활발해야 한다. 게다가 바람도 없어야 하고 주변의 환경이 깜깜해야 하기기 때문에 밤이 길수록 오로라를 만날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12월 경우에는 정오쯤 해가 떠서 3시에 해가 진다고 하니 여행의 목적이 오로라를 보는 것이라면 여행의 적기는 이 시기(11월부터 2월 사이) 일 것이다. 


 물론 이 때는 오로지 오로라만을 위한 여행이어야 한다. 해가 떠있는 시간이 워낙 짧으니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어렵다. 게다가 세찬 눈보라와 폭설, 결빙된 도로까지 더해진다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여행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기의 선택이 참으로 극단적이다.


 아이슬란드 링로드 여행과 오로라 관측, 두 가지 모두 할 수 없을까. 우리가 여행하는 지금의 시기는 밤낮의 길이가 비슷하고 온도는 그리 춥지 않으며, 오로라도 이따금씩 등장하는 시기이다.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은, 욕심 가득한 시기 선택이었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오로라를 볼 수 있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은 아이슬란드 기상청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상청은커녕 창문 밖을 대강 둘러보고 밖을 나서기 일쑤였는데, 아이슬란드에서는 기상청 홈페이지(http://en.vedur.is/weather/forecasts/aurora/)에 수시로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기상 정보와 오로라 지수를 볼 수 있는 알람 앱들도 몇 개씩 설치하여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기상청 홈페이지 aurora forcasts


 아쉽지만 오늘도 오로라 지수가 높지 않다. '그래, 가기 전 하루 정도는 볼 수 있겠지.' 우리에게 1주일의 시간이 더 남아있기에 아직 여유가 있다. 더욱이 아이슬란드는 지금까지 계획한 상황과 예상한 감정 이상의 것들을 우리에게 선사하지 않았던가. 짧은 기간이지만 그 사이 누적된 거대한 감동들이 내 생애 아무 연고 없던 이 곳을 깊이 신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내 역시도 나와 비슷한 막연한 기대감들이 작동하는 듯하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확실히 우리 여행의 장르가 허니문에서 어드벤처로 넘어가고 있다. 

차도 한가운데서 찍는 것도 모험 

 그래서인지 오늘은 1번 도로에서 한 번 벗어나 보려 한다. 예정대로라면 이스트 피오르드의 작은 바닷가 마을을 둘러봐야 하지만 어제 충분히 해안과 빙하의 절경을 보았으니 오늘은 내륙 방향으로 이동해보자고 계획을 즉흥적으로 수정한다. 'öxi'라는 표지판과 함께 939번 도로가 보인다. 이제 링로드 1번 도로는 잠시 뒤로한다. 핸들을 틀자마자 자갈들이 즐비한 오르막길 구간이 펼쳐진다.

höfn 호픈에서 1번도로를 타고 가다 만나는 939번 도로는 30분 정도 산길을 달려야 한다

 구글 맵에서 구간이 짧은데 소요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의심해야 한다. 경사도와 도로 컨디션은 직접 운전해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험준한 산길에서의 30분 정도 달리다 보니 저기 멀리서 폭포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워질수록 바위와 절벽에 가려져 폭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를 잠시 세워두기로 한다. 사실 기여코 폭포를 봐야겠다는 마음보단 아침부터 höfn 호픈에서 출발하여 오전 시간동안 종일 운전만했던 무료함 탓이 컸다. 차를 아무렇게나 세워놓고 폭포를 향해 산비탈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폭포를 마주한다. 수면 위로 거세게 부딪히며 발생하는 물안개들이 얼굴에 닿는다. 폭포 중심으로 수채화 같은 산풍경이 펼쳐진다. 현실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온다. 근처에 이 폭포의 이름을 알려주는 표지판도 없고 인터넷 검색에서도 찾기 어렵다. 이 곳만은 어떻게든 꽁꽁 숨겨놓고 싶은 이유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좌충우돌의 행동들이 계속해서 멋진 엔딩을 만들어내기에 일기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약간의 모험에도 풍성하게 베푸는 대자연의 너그러움에 염치를 느끼면서 말이다.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들의 단편이 거듭 훌륭한 인과를 만들어 결국 여행에서 뜻한 바를 이뤄가고 있는 우리의 꼴이 마치 "골드버그 기계장치"를 보는 것 같다. 우당탕탕

Goldberg machine: 미국의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는 주로 단순한 일도 복잡하게 해나가는 현대인을 풍자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여기서 착안하여 겉으로는 복잡해보이지만 사실 간단한 일을 하는 단순한 기계를 만들었는데, 이를 '골드버그 장치'라고 한다.
밴드 OK GO의 <this too shall pass> 뮤직 비디오


이전 18화 *17. 요쿨 (4) 드디어 요쿨살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