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924
스비나펠스 요쿨에 이어 다음 목적지는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포인트 중 하나인 요쿨살롱이다. 워낙 많은 후기와 사진들이 많은 곳이라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부터 기대했던 곳이다. 링로드를 따라 1시간쯤 이동하면 된다. 머리 위로 이따금씩 쾌청한 하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점점 날이 개고 있지만 그동안의 경험 때문인지 이제는 마음이 놓이기보다 더 불안해진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서둘러 가야 한다.
그렇게 삼십 분을 달렸을까. 엄청난 광경이 우리 옆에 나타났다. 요쿨살롱은 아니다. 내비게이션으로 쓰고 있는 구글 맵에는 요쿨살롱까지는 아직 몇 킬로를 더 이동해야 한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스비나펠스보다 더 거대하고 파란 하늘 아래 햇빛을 머금어서인지 더 찬란하게 빛을 내뿜는 요쿨을 마주한다.
느닷없이 펼쳐지는 차창 밖으로 풍경에 우리는 차를 세웠다. 먼발치에 얼음 덩어리로 넋을 잃은 여행자들이 우리뿐만은 아닌 듯하다. 뒤따라오던 차들도 우리와 함께 옆길에다 차를 세운다. 따로 여기 어딘지 알려주는 표지판도 없어서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곳은 Fjallsárlón 프얄살롱이었다.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산(Fjall, moutaion)에서 떨어져 나와(sár, wound) 만들어진 저수지(lón, reservoir)다.
그렇게 세찬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든 생각, '저기 앞까지 한 번 가볼까?' 이 같은 즉흥적인 계획에는 해결해야 하는 고민들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보아하니 가는 길은 거의 오프로드라 길이 없을 수도 있을 텐데, 여기서 보는 정도와 가까이에서 보는 감동이 차이가 없을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면 다음 일정에 차질을 줄 수 있을 텐데,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항상 모르는 것에 대해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행은 그 감정을 고스란히 설렘과 기대로 바꾼다. 그것도 비싼 시간과 돈을 들여서 말이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불안함 속에 스스로를 내던지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아이러니다. 비포장도로와의 갈림길에서 여행의 본질적 의미를 떠올리며 아내에게 망설이며 묻는다. 아내는 이미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가볼까..?
가보자!
그래, 생각으로 고민이 해결된다면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주저하고 있을 여행객 무리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차에 올라타 바로 흙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이럴 땐 뭘 알고 있는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멋지게 떠나 줘야 한다. 울퉁불퉁, 흙 길 위의 돌멩이들이 만든 양각과 비가 파놓은 웅덩이의 깊은 음각을 견디며 액셀을 밟는다.
가기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길은 있었다. 그리고 도착했다. 대책 없이 마주한 웅장한 자연에 그야말로 압도당했다. 탄복하며 반사적으로 터지는 호흡은 "우-와"라는 소리를 만든다. 감격한 만큼 아주 긴 소리가 나오는데, 길게 뱉은 만큼 다시 숨을 들이마실 때는 빙하를 스치고 온 차가운 공기가 폐 끝까지 닿는 것만 같다. 얼굴 쪽으로 날카롭게 부는 바람은 빙하를 향해 서있는 우리 둘을 더 꼼짝하지 못 하게 한다. 만약 고민 끝에 이 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소중한 감정까지 카메라에 서둘러 담는다.
즉흥적인 선택이라 감정이 무방비 상태였는지 차에서 내리고 다시 차에 올라탈 때까지 감탄사가 쉴 새 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 생애 가장 밀도 높은 초당 감탄 연발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빙하가 깎이고 녹아내려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대로 계속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발견한 오늘의 이 멋진 광경을 언젠가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요쿨살롱으로 다시 향한다. 역시 나가는 길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