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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l 05. 2022

20대의 연애, 30대의 연애

그는 바뀌지 않는다. 물론 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30대의 연애는 20대의 연애와는 많이 다르다. 20대는 아직 열정적인 사랑을 한다.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위해 내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도 나를 위해 그럴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실상은 스무살 정도가 되면 사람은 이미 형성된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공고해져 잘 변하지 않는다. 정말 엄청난 계기, 세상이 뒤흔들릴 정도의 계기가 아니고서는 형성된 자아가 더 굳어질 뿐이다.


여기서 그 ‘세상이 뒤흔들릴 정도의 계기’ 가 바로 나야 나! 나와의 만남, 나와의 연애야! 라고 주장한다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희박하다. 저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연애 초반 아주 잠깐은 변하겠지만, 결국은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30대 연애의 시작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왜 내가 얘기했는데 바뀌지 않지?'

'왜 나를 위해 고작 이런 것도 못 해주지?'

이런 질문은 무의미할  아니라 정신 건강에 해롭기만 하다. 우리 스스로를 생각해 보자. 엄마가 평생 잔소리를 해도 바뀌지 않는 습관이 있다. 나도 이래선  되는  알지만 고치기 어려운 생활 방식이 있다. 연애의 떨림이나 설렘으로 처음 잠깐은 원래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이 나올  있지만, 결국 회귀한다.  사람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연애의 약빨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정상인 것이다.


과거의 누군가는 나를 위해 이런 것을 해 주었는데, 상대도 과거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이런 비교나 회상은 더더욱 위험하다. 결국 그 사람과 헤어졌으니까 이 사람을 만난 것 아닌가? 헤어진 상대와 비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 노력이 지쳐서 헤어졌을 가능성이 9998% 라고 생각하자.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연애 외의 일로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 너무도 많아진다. 연애마저 나를 지치게 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 갈 수 없다. 결혼하고 10년 동안 애처가로 살던 남자가 갑자기 바람이 났다거나, 수십 년을 내조하던 아내가 갑자기 황혼 이혼을 하자고 한다거나 하는 것은 십중팔구 그 관계에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초반의 불꽃이 없다면 사랑을 시작할 수 없지만, 그 불꽃만으로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20대라고 다르냐 하면 사실 별반 다를 것은 없다. 다만 초반의 ‘진짜 내가 아니라 상대가 좋아할 것 같은 나’를 연기할 수 있는 기간이 20대는 좀 더 길고, 30대는 좀 더 짧을 뿐이다. 20대는 아직 말랑말랑하고 유연하니까.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 많고, 연애와 사랑으로 인해 그 세상이 열리기를 기대하니까.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가 바로 내 세상이 되어버릴 거라 믿고 나도 상대의 세상이 될 거라 믿으니까.


30대는 이런 환상이 부질없음을 안다. 연애란 내 일을 열심히 하다가 같이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이 사람과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상대가 내 삶을 책임져 줄 수도, 내 삶을 바꿔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연애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다. 나이가 들 수록 더더욱.


그렇지 않으면 연애는 치열한 눈치게임이 되어버린다. 이 관계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은지, 잃을 것이 많은지 계산을 하고, 이해득실을 따진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손익계산은 무의미하다. 이는 모든 인간관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친구를 우리가 조용히 손절하듯이, 항상 요구하기만 하는 상사를 조용히 무시하듯이. 연인간의 관계도 다른 모든 인간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다. 상대를 만나서 내 삶이 더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면, 그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상대를 만나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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