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바뀌지 않는다. 물론 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30대의 연애는 20대의 연애와는 많이 다르다. 20대는 아직 열정적인 사랑을 한다.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위해 내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도 나를 위해 그럴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실상은 스무살 정도가 되면 사람은 이미 형성된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공고해져 잘 변하지 않는다. 정말 엄청난 계기, 세상이 뒤흔들릴 정도의 계기가 아니고서는 형성된 자아가 더 굳어질 뿐이다.
여기서 그 ‘세상이 뒤흔들릴 정도의 계기’ 가 바로 나야 나! 나와의 만남, 나와의 연애야! 라고 주장한다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희박하다. 저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연애 초반 아주 잠깐은 변하겠지만, 결국은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30대 연애의 시작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왜 내가 얘기했는데 바뀌지 않지?'
'왜 나를 위해 고작 이런 것도 못 해주지?'
이런 질문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 해롭기만 하다. 우리 스스로를 생각해 보자. 엄마가 평생 잔소리를 해도 바뀌지 않는 습관이 있다. 나도 이래선 안 되는 걸 알지만 고치기 어려운 생활 방식이 있다. 연애의 떨림이나 설렘으로 처음 잠깐은 원래의 내가 아닌 다른 내 모습이 나올 수 있지만, 결국 회귀한다. 그 사람을 덜 좋아해서가 아니라, 연애의 약빨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정상인 것이다.
과거의 누군가는 나를 위해 이런 것을 해 주었는데, 상대도 과거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이런 비교나 회상은 더더욱 위험하다. 결국 그 사람과 헤어졌으니까 이 사람을 만난 것 아닌가? 헤어진 상대와 비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 노력이 지쳐서 헤어졌을 가능성이 9998% 라고 생각하자.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연애 외의 일로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 너무도 많아진다. 연애마저 나를 지치게 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 갈 수 없다. 결혼하고 10년 동안 애처가로 살던 남자가 갑자기 바람이 났다거나, 수십 년을 내조하던 아내가 갑자기 황혼 이혼을 하자고 한다거나 하는 것은 십중팔구 그 관계에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초반의 불꽃이 없다면 사랑을 시작할 수 없지만, 그 불꽃만으로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20대라고 다르냐 하면 사실 별반 다를 것은 없다. 다만 초반의 ‘진짜 내가 아니라 상대가 좋아할 것 같은 나’를 연기할 수 있는 기간이 20대는 좀 더 길고, 30대는 좀 더 짧을 뿐이다. 20대는 아직 말랑말랑하고 유연하니까.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 많고, 연애와 사랑으로 인해 그 세상이 열리기를 기대하니까.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가 바로 내 세상이 되어버릴 거라 믿고 나도 상대의 세상이 될 거라 믿으니까.
30대는 이런 환상이 부질없음을 안다. 연애란 내 일을 열심히 하다가 같이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이 사람과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상대가 내 삶을 책임져 줄 수도, 내 삶을 바꿔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연애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다. 나이가 들 수록 더더욱.
그렇지 않으면 연애는 치열한 눈치게임이 되어버린다. 이 관계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은지, 잃을 것이 많은지 계산을 하고, 이해득실을 따진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손익계산은 무의미하다. 이는 모든 인간관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친구를 우리가 조용히 손절하듯이, 항상 요구하기만 하는 상사를 조용히 무시하듯이. 연인간의 관계도 다른 모든 인간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다. 상대를 만나서 내 삶이 더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면, 그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상대를 만나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