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전쟁 영화는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여러 부분에서 체계적인 모습을 갖춘다. 이는 배역의 연기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실존인물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거나 역사적 사실과 내용을 함께하는 배역을 배치해 그 균형을 맞춰가는 방식도 그러한 방법들 중 하나이다. 필자가 몇 손가락에 꼽는 전쟁 영화 중 하나인 켄 아나킨, 앤드류 마튼, 벤하드 위키 감독이 연출한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1962)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가장 치열한 전투로 자리 잡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당시 상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역할 배분의 균형을 맞추고자 애를 썼다.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작품에서 그 유명한 배우들, 이를 테면 존 웨인, 로버트 미첨, 헨리 폰다, 리처드 버튼, 숀 코네리, 폴 앵카 등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이러한 균형을 느낄 수 있었던 건 개인적인 만족감이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연출한 영화, <미드웨이>(2019)이다.
역사적으로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전제로 한다. 오래 전 관람했던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진주만>(2001) 덕분에 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던 건 큰 도움이 됐다. 거기에 이 영화가 문을 여는 방식이 나쁘게 다가오지 않았음은 사전 설명이 불필요한 진주만 공격에 시간과 화면을 크게 할애하지 않았던 게 크게 작용했다. 덕분에 영화는 이야기를 풍요롭게 이끌어갈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가졌으며, 이와 더불어 등장인물의 감정을 천천히 고조시킬 수 있는 시간 또한 벌 수 있었다. 관객들은 이들과 그 감정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영화의 전장에 대한 상대적인 지식 또한 간접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영화의 역사에 대한 사실적 고증이 철저하고 하나하나가 체계를 갖춘 부분은 영화의 장점이 됐다. 구성이 체계적이고 사건에 조금씩 빠져들게 함은 앞에서 언급한 영화 <진주만>과 직접적인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인물 한 명 한 명에 대한 이야기를 질질 끄는 것보다 사실적인 부분만 분명히 제시하고, 각각의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를 나뉘어 붙여 하나의 구성 요소로서만 작용하게끔 만든 게, 오히려 관객들이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거기에 군인들의 사기와 우정 등에 포인트를 줘 나름의 영화적 재미도 간간히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는 것도 그러하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미국’과 ‘일본’ 양 측으로 나뉘어 구분시킨 것도 분명한 장점이 됐다. 전쟁을 양쪽 모두의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보다 폭넓은 이해와 지식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건 색다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쓸데없는 장면을 넣거나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게 한 것도 도움이 됐다. 딱 할 말과 필요한 장면만 사용해 관객들이 불필요한 장면에 신경을 할애하는 노력을 덜어줬다. 여기에 특수효과 또한 과하게 집어넣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지나치거나 또는 티가 나지 않거나 둘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던 전투 장면은 분명 자연스러운 흐름을 놓치지 않게 집어넣어 관객들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옥의 티로 작용하지 않은 건 분명하다.
영화는 역사적 고증을 충분히 거쳐 누구나 방대한 지식을 한 눈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몇몇 인물을 중심축으로 전장에서의 다양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 점도 장점으로 작용하고 말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는 영화이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니 말이다. 관객들이 이를 통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형성시켜준 점은 분명한 배려다. 전쟁에 대한 사실적 공포만으로 화면을 채우는 것보다 군인들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읽어낼 수 있도록 카메라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짐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이를 받아내는데 무리가 없도록 여러 부분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나름의 메시지를 집어넣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윌리 웨스트(제이크 맨리 분)가 파일럿으로서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 브루노 하사(닉 조나스 분)의 대답이 그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장면이 됐다. 그의 삼촌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용접공이었고 높은 상공에서 밧줄도 없이 일을 할 때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대답 말이다. 흥미로운 건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뛰어든 자동차에 깔려 죽었다고 말을 잇는데, 이게 눈여겨 볼 장면이 됐음은 결국 군인들이 오랜 전쟁에 대해 지쳐있음을 에둘러 표현한 장면이었음을 대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윽고 정찰 비행 이륙에서 두려움에 빠져있던 그를 삭제시켜버렸다는 점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는 일분일초를 다투는 사지에서의 군인들의 공포감을 온전히 관객들에게 드러내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단순히 미드웨이 해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주연 외에도 조연과 심지어 엑스트라까지도 대사와 연기, 습관적 행동 등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다양한 측면에서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조종석에 앉아 껌을 꺼내 씹는 모습이나 술을 마시는 장면과 손놀림, 담배를 꺼내 피우는 장면 등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가 당시 전장의 모든 기운을 응축시켜 폭발시키듯 강력하게 관객들의 감정을 휘어잡게 만든다.
아쉬운 점은 일본의 남은 항공모함을 잡기위해 마지막 출격을 하는 장면과 전투를 그 긴장감에 비해 너무 짧고 단순하게 마무리 지어 버린 것과 끝으로 다다를수록 미국 영화의 특성 상 아메리칸 영웅주의에 가까운 표현이 심하게 티가 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미드웨이 해전’ 자체가 그런 사실을 대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초반에 언급한 것과 같이 모든 부분에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균형을 잡고자 최선을 다했다. 이야기와 이를 읽어내는 시각,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 배우들의 역할 등 모든 면에서 일관될 정도의 균형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좀처럼 보기 힘든 좋은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냈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은 영화로 충분히 기억될 만한 작품, 영화 <미드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