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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면 죽는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by 이동기

사랑은 한 편의 꿈을 꾸는 드라마이다. 누구에게나 애틋하고 누구에게나 섬세하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 과정의 중심에는 서로에 대한 무한한 희생이 존재한다. 비단 연인 간의 사랑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종류의 사랑은 서로를 향한 희생을 전제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거다. 이 영화는 단순히 청각이 극도로 발달한 크리쳐로부터 공격받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사투를 그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온몸을 조여 오는 극한의 공포로부터 가족들이 서로를 어떻게 지켜주고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얘기해도 좋겠다. 관객들의 눈에 비치는 크리쳐의 공포는 가족이라는 집단을 둘러싼 사회적 공포로 확대해석될 수도 있다. 살아가는 순간의 여러 상황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지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중한 작품. 존 크래신스키 감독의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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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민감한 크리쳐라는 독특한 설정이 주는 참신함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와 관심을 가져다주었다. 다만 ‘소리’에 집중하기 위한 환경 구성에 좀 더 배려를 했더라면 더욱 좋았겠다. 이를 테면 배경음악도 이에 해당한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처럼 아예 배경음악을 배제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화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운드에 민감한 영화치고는 은근히 귓가를 울리는 잡음들이 많은 편이다. 그 점이 아쉽다. 영화 초반부터 관객들의 몰입감을 확 끌어당기도록 이끄는 화면과 긴장을 기대처럼 만들어주지 못하는 연출이 못내 아쉽다. 여기에 아이가 태어나 울음소리를 내는 걸 당연히 고려한다면 임신을 했다는 설정 또한 어설프다. 한 순간 한 순간이 목숨을 내건 긴장의 연속인데 그 속에서 임신을 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영화의 개연성을 낮추는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영화의 초반, 막내를 삭제시켜버린 건 괴물에 대한 공포심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를 심어주려는 목적이 강하다고 본다. 이 트라우마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첫째 딸 레건(밀리센트 시몬스 분)의 이유 없는 반항을 야기 시키고, 이로 인한 사건의 전개를 적절히 밀고 당기며 일상에 돌을 던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 가지 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자면 크리쳐들의 행동은 조금 부자연스럽다. 청각이 극도로 발달했지만 앞을 못 보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간적 개념은 너무나 뛰어나다. 주변 사물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를 너무나 빨리 파악해 움직이고 행동할 때는 신속 정확하게 움직일 줄 안다. 크리쳐의 대명사인 <에이리언>(1979)과 비교하자면 또 다른 완성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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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들으며 부부가 함께 춤을 추는 순간은 이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았다. 소리 자체가 없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으며 소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표현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짧은 씬이 드러내는 메시지는 그 만큼 강렬한 편이다. 요소요소마다 하나의 의미를 두고자 이러한 메시지를 남겼지만 러닝 타임이 짧은 건 아쉬우면서도 적절한 구성이다. 소리를 말하거나 듣지 못하는 상황을 드러내는 영화의 스토리와 구성 상 관객들이 여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또한 이 순간이 가져오는 긴장감을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는 건 제작자들 스스로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때문에 이를 시리즈로 이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과연 이 이야기를 어떻게 연결시켜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와 만족을 얻어낼 수 있을지 궁금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배경과 구성은 분명 빈틈이 존재한다. 소리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표현하는 과정에서도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고자 애를 쓴다는 건 분명 현실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장면이다. 실제 이런 상황에 빠져든다면 우선적으로 생존을 위한 사투에 신경을 쓰게 될 것 같지만, 영화가 각 장면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요소들은 이를 맞추지 못했다. 영화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건 두 번째 문제이고 말이다. 대신에 계단에 튀어나온 ‘못’과 ‘폭포’에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처음 못이 등장하는 장면은 곧 있을 사고의 예고로 받아들여지지만 출산으로 인한 사건의 발생을 사전에 암시하는 하나의 부분이다. 거기에 폭포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기도 하다. 마치 영화 <데드 돈 다이>(2019)에서의 그것처럼 안전한 지역으로 인간을 감싸 안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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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각각의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캐릭터로서 그 역할과 개성을 표현하는데 충실했다. 특히 에블린(에밀리 블런트 분)의 연기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화려한 감정 연기를 펼쳤는데, 긴장의 고조 속에서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를 통해 순간마다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폭죽이 터졌을 때 참아왔던 고통을 외침으로 표출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긴장감의 응축된 폭발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하는 장면이 됐다. 거기에 영화 속 크리쳐가 내뱉는 음산한 기계음은 화면 속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공간을 구성하는 최고의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확실히 스토리뿐만 아니라 여러 환경과 구성 측면에서도 사운드에 집중하려 한 노력이 보여진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영화가 캐릭터 자체로서의 개성에도 집중했지만 그 역할과 책임을 드러내는 데에도 충실한 점은 이 작품만이 가진 강점이다. 영화는 등장인물 각각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그려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을 지키고자 애쓰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조명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지키지도 못한다면 그게 무슨 부모냐고 얘기하는 에블린의 대사는 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각각의 인물들에게 하나씩 돌아가며 임무와 책임을 배분하기도 했는데, 레건은 막내를 잃은데 대한 자책과 그에 따른 부모에 대한 불만을 반항심으로 표출하는데 주력했다. 거기에 마커스(노아 주프 분)는 무섭고 겁이 나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맡은 역할과 책임을 용기로 한 차례 끌어올리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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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긴장감을 끌어올렸다가 내려놨다가 다시 사건과 상황을 반복적으로 교차시켜 다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관객들의 온몸을 들었다 놨다 조율할 줄 안다. 긴장감을 러닝 타임 내내 꾸준히 끌고 가는 방식이 아니다보니 관객들 스스로 그 긴장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재미를 동반한다. 마지막 장면은 리(존 크래신스키 분)가 크리쳐들에게 당하고 수년간 맥없이 당하기만 했던 가족들이 그들의 약점을 파악하면서 제대로 된 싸움을 시작하고자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인물의 감정변화는 물론 행동의 변화까지도 신경을 쓰고 이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영화가 의미하는 바는 충분히 화면 속에서 표출됐다고 본다. 영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작은 소음 하나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크리쳐로부터 공격받은 마을의 일상을 통해 흥미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의미 있는 대사보다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에 좀 더 주력함으로써 보다 풍성한 화면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매력이 가득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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