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거짓이 만들어낸 어두운 표정

인비저블 게스트

by 이동기

삶을 살면서 많은 이들이 각자의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제각기 다르다. 때로는 많은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기도 하고,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을 선택하게 되기도 한다. 그 선택이 다시 또 다른 책임으로 흘러가는 방향을 살펴본다면, 삶은 이처럼 돌고 도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스릴러 영화들을 보면 대단한 긴장감이 표출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긴장감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조이고 풀어내느냐에 따라 관객들은 연출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주인공의 선택에 따른 문제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사건 전개의 방향을 쉽게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서 때로는 ‘공포’를 때로는 ‘긴장감’을 표현하면서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흐름, 그게 바로 ‘스릴러’가 가지는 제대로 된 재미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진실’과 ‘거짓’이 난무하는 재미가 풍성한 영화 한 편이 있다. 스페인의 오리올 파울로 감독이 진실을 파헤치는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엮어냈다.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2016)’이다.

02.jpg

영화는 한 호텔에서 불륜으로 추정되는 연인들이 갑작스런 침입자의 습격을 받으면서 사건을 전개시켜나간다. 주인공 아드리안(마리오 카사스 분)이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자신의 내연녀 로라(바바라 레니 분)는 살해당한 후이다. 급기야 객실 밖에는 경찰이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고, 결국 그는 내연녀의 살해범으로 몰리면서 누명을 덮어쓰게 된다. 침입자가 있었다고 얘기해보지만 호텔의 객실은 누가 침입한 흔적도 누가 빠져나간 흔적도 없다. 밀폐된 공간, 사라진 살인범, 그리고 억울한 누명. 영화는 초반부터 제대로 갖춰진 삼박자를 맞춰가며 관객들에게 단순한 재미가 아닌 무거운 숙제 하나를 던져준다. 영화 쏘우(2004)의 명대사처럼, 지금부터 약 2시간의 러닝 타임 동안 함께 풀어야 할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거다.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게 된 아드리안은 자신의 변호사 펠릭스(프란체스크 오렐라 분)를 통해 승률 100%의 새로운 변호사 버지니아(안나 와게너 분)를 선임한다. 버지니아는 아드리안을 만나 그의 진술을 뒤엎을 새로운 목격자가 나타난 관계로 오늘 밤 재 진술을 위해 다시 소환될 것이라고 말한다. 소환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시간. 그녀는 그에게 3시간 안에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고 진행됐는지 진실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에게 나름의 사건을 시간 순으로 얘기해보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쉽게 믿지 않는다. 관객들은 이때부터 머릿속을 굴려가며 사건을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가 털어놓는 사건의 진실은 관객들에게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복잡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데, 이 둘의 진실 공방이 재미있게 다가오는 건 그와 그녀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긴장감과 스릴 때문이다.

03.jpg

아드리안이 첫 번째 사건 설명을 번복한 후, 변호사 버지니아에게 말한 ‘닦으면 지워지는 얼룩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은 사건의 흐름을 뒤엎는 중요한 문구였다. 아드리안과 내연녀 로라는 각자의 배우자 몰래 만나 비에르게 근처 지역을 지나는 도중, 사슴과 부딪히는 사고로 마주오던 차량과 충돌하고 말았다. 상대 차량의 운전자 다니엘(이니고 가스테시 분)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아드리안은 경찰을 부르길 원했지만, 내연녀 로라가 그를 붙잡고 말린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아드리안의 앞날에 장애가 될 사고를 집어넣기를 원치 않았을 뿐더러 그들의 불륜 관계가 밝혀지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은 사건을 은폐하기로 마음먹고 상대 차량과 시신을 근처 호수에 빠뜨리고 완전 범죄를 꿈꾼다. 그런데 어느 날 다니엘의 부모가 나타나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는가 하면, 목격자까지 나타나 그들을 협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목격자가 요구하던 금액을 전달하기 위해 그가 시키는 호텔의 객실로 향했지만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을 무렵, 갑자기 침입자가 나타나 그들을 공격했고 내연녀 로라가 살해당했다. 여기까지의 사건 전개는 전혀 특별함이 없다. 즉, 영화는 반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관객들에게 모든 사실을 빠짐없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사건의 모든 상황을 관객들에게 고한 이 영화는 과연 이후 사건을 어떻게 전개시켜나갈 수 있을까?


필자가 바라 본 영화의 사건 전개는 긴장감을 줄곧 유지시키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건의 긴장감을 풀고 조이면서 장르를 ‘공포’와 ‘스릴러’로 끌고 가지 아니하고 마치 퍼즐을 풀어내는 듯한 ‘추리물’로 가져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처음 커다란 숙제를 안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던 건 버지니아가 펠릭스와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가 ‘버지니아?’라고 되묻는 장면에서 그녀의 표정과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진 건 여러 관객들의 공통적인 생각일 것이다. 거기에 로라가 우연히 마주친 토마스(호세 코로나도 분)의 도움으로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화면에 비친 벽의 ‘탈’과 그가 언급한 ‘아내는 연극을 잘한다. 아내와 연극동아리에서 만났다.’라고 한 대사가 그냥 스쳐지나갈 정도로 가볍게 여겨지지는 않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04.jpg


이처럼 영화는 사건을 꽁꽁 감춰두고 반전을 일부러 유도하지는 않는다. 대사와 인물의 표정, 행동 그리고 화면 곳곳의 여러 요소들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쉬지 않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내기를 바라고 연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시선을 놓지 않고 아드리안과 버지니아의 충돌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영화는 너무 평범하게 사건의 내막을 속 시원히 밝혀준다. 살해당한 사람은 ‘다니엘’과 ‘로라’ 둘이고, 살인용의자 또한 다니엘의 아버지인 ‘토마스’와 ‘목격자’ 둘이 됐다. 변호사 버지니아는 아드리안의 진술을 통해 사건을 끼워 맞추고자 노력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존재한다. 오리올 파울로 감독은 과연 정공법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비틀기를 시도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후반부로 들어가자마자 사건의 전개를 마구 비틀기 시작한다. 변호사 버지니아는 계속해서 시신을 빠뜨린 장소와 그의 증언을 확보하려 하고, 아드리안은 변호사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면서 그녀를 완벽히 신뢰하지 않고 시험하려 든다. 이때부터 영화의 무게 추는 ‘살인사건’의 해석에 있다기보다 아드리안과 버지니아 사이의 숨 막힐 듯한 줄다리기로 이어진다. 당연히 어느 곳 하나 빈틈없이 팽팽함이 앞서기에 관객들의 관람 포인트에 재미가 더해지는 건 이 영화의 독특한 재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사건 전개의 방향을 이해하고 함께 풀어가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속고 또 속게 된다. 이 영화의 재미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물로서의 긴장감뿐만 아니라, 알면서도 속고 또 속게 되는 비틀기의 재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05.jpg

이 영화는 스페인 영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은 분명 아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순전히 배우들의 연기력과 감독의 연출력, 치밀한 각본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 작품이 가지는 힘과 체력이 가히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특히 사건의 풀이를 위해 다양한 화면을 선보이면서도 결국은 ‘아드리안’과 ‘버지니아’ 두 사람의 공방전에 영화의 매력을 집중시켰다는 점에서 두 배우의 연기와 대사에 빠져드는 집중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각본과 연기, 연출력의 삼박자에 기반을 둔 새롭고 독특한 추리물에 빠져들 기회를 만끽하고 싶다면, 이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2016)’의 초대에 응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keyword
이전 09화얼굴에 가려진 두꺼운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