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주목받은 인생은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지만 때로는 내면이 울음을 터뜨릴 때가 많다. 그 또는 그녀가 받는 화려함은 외롭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단순한 연예인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화려함 또한 그러하다는 걸 주장하고 싶어서이다. 영화 속 킬러의 삶이 그렇다. 존윅(키아누 리브스 분)은 그가 속한 집단의 정해진 룰에 의해 비록 쫓기는 신세가 됐지만, 그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 정도로 모든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화려함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외로움을 떨치지 못했다. 그가 항상 곁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 또한 외로움을 견뎌내기 위한 삶의 행위이다. 레옹(장 르노 분)도 그랬다. 화려한 킬러의 삶 속에 분명 그가 소유하지 못한 외로움이 존재했다. 마틸다(나탈리 포트만 분)의 앙탈이 마냥 귀엽게 느껴진 것도, 그의 곁에 항상 아글라오네마가 담긴 화분이 함께 했던 것 또한 그렇다. 화려함이 모든 걸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아니다. 이 영화도 그렇다. 매일같이 새로운 암살요원의 삶 속에서 그녀는 항상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자유를 위한 어찌할 수 없는 속박의 굴레에 빠져있는 삶이다. 영화 ‘안나(2019)’는 화려한 액션보다 긴장감을 주는 스릴보다, ‘감정’에 담겨있는 ‘슬픔’을 조명했다.
이 영화는 애초 홍보 때부터 그녀가 암살요원임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았을 것 같다. 영화 초반의 모델로서의 역할이 생각 외로 강렬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건 그녀의 직업 자체가 배우이기 이전에 모델로서의 화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에 집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중반부까지 모델로서의 생활과 모델이라는 직업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통해 그녀의 삶을 재미나게 엮어나가는 것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런 와중에 후반부에 접어들어 요원으로서의 강렬한 반전을 이끌어냈다면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이 더욱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기존의 뤽 베송 감독의 작품인 ‘니키타(1990)’ 스타일과는 다른 면이 많다. 그녀의 실력을 뽐내는 게 목적이라기보다는 그녀의 감정을 전반적으로 겉으로 보이게끔 드러내는 게 목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떤 배경을 가지고 KGB에 들어갔는지는 이 순간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녀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그곳을 선택했느냐가 더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 와중에 그녀의 실력을 뽐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확실한 암살요원으로서의 최고의 살인병기로 거듭났지만 그녀의 액션은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일방적인 공격과 방어 없이 자연스럽게 총탄과 주먹, 발길질이 오간다. 그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영화다움을 표현하는 건 감독만이 가진 연출 실력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영화다운 스릴과 액션이 불을 뿜어줘야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쾌감을 느낄 테니 말이다. 올가(헬렌 미렌 분)가 현장을 통해 그녀를 조련시키는 장면들은 영화의 잔재미이다. 러시아 최고의 특수요원으로서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아온 그녀가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것은 누가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년간의 훈련과정 없이 변화된 후의 모습으로 건너뛴 화면 또한 군더더기를 없애려는 감독의 연출 재미이다. 지루한 훈련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됐는지를 늘어놓는 건 식상할 뿐이다. 오히려 화려한 변신을 통해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됐는지 결과만을 들이댔을 때 관객들에게 좀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 속에서 그녀의 특별한 감정을 잡아내는 건 관객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중반부터 불필요한 요소들을 집어넣어 관객들의 시야를 흐리게 한다. 첫째는 KGB의 알렉스(루크 에반스 분)와 CIA의 레너드(킬리언 머피 분)이다. 영화 속에서 연애관계를 다루는 건, 액션물이건 공포물이건 스릴러물이건 간에 잔잔한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소소하게 사용되지만, 이건 너무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게 문제이다. 눈에 뻔한 러브스토리를 어색하게 집어넣어 후반부에 벌어질 사건의 전개와 방향을 관객들이 미리 읽어내도록 할 필요가 굳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 씬의 반전과 연계를 시킬 목적이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투입이 뜬금없이 튀어나온다는 의견에는 모두들 공감할 것이라 생각해본다. 둘째는 그녀의 감정이 너무 뻔한 방향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그녀는 답답하고 썩은 내 나는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삶을 택했다. 그건 자유를 위한 처절한 갈망이었을 뿐, 국가와 체재에 대한 긍지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관객들이 그녀의 감정을 놓칠 때쯤이면 친절하게도 구체적으로 사건을 드러낸 채 감정을 대변해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친절하게 말이다.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그녀의 감정선이 무너짐은 아예 대놓고 표출한다. 1주일간의 휴가 후 화면에 비쳐지는 그녀의 삶은 그녀가 바랐던 정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빠른 화면으로 그것도 경쾌한 리듬의 배경음악과 함께 흘러가듯이 보여주는데, 이러한 화면 배열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를 예상하는 건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동안 끌고 왔던 긴장감을 완벽히 무너뜨리며 그녀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에 영화가 보여준 장점도 분명 있다. 적어도 이 작품은 모델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사샤 루스가 최선을 다해 열연한 흔적이 역력하다. 후반부의 바실리에프(에릭 고돈 분)를 죽이고 KGB본부를 탈출하는 장면은 사샤 루스의 열연을 유감없이 선보이는 장면이다. 사실 극중에서 안나(사샤 루스 분)는 앞서 언급했던 두 남자를 신뢰했다. 그들의 약속을 믿고 따랐으며 자유와 보호를 위한 그녀의 갈망을 쉽게 그들에게 보여줬다. 그러함에도 약속은 쉽게 지켜지지 않았고 그것이 그녀가 속한 사회이자 굴레임을 깨닫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레즈비언인 모드(레라 아보바 분)라는 인물을 배치한 건 탁월했다. 그녀를 외롭지 않게 만드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의 역할과 비중을 좀 더 채워 넣을 수 있었다면 안나가 가진 외롭고 두려운 감정을 좀 더 관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영화의 속도를 늦춤으로서 관객들에게 감정 전달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찌 보면 그녀는 처음부터 두 남자 모두를 믿지 않았다. 그게 그녀가 사람을 만나고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는 안나의 살인병기로서의 액션과 매력을 넘어 그녀의 내면을 적어도 조금이라도 관객들에게 드러내보이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했다시피 영화 ‘니키타(1990)’의 연출 방식과는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CIA와 KGB를 대면하게 만든 공원 씬(scene)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거기에 단 하루도 자유롭게 살지 못했다고 남은 6개월만이라도 충분하다고 얘기하는 그녀의 말은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이다. 그녀는 사람을 믿었고 조직을 믿고 일을 해왔다. 그런데 돌아온 건 그녀를 도구로 여기기만 했던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녀는 복수를 원치 않았다. 그저 자유를 그토록 갈망했을 뿐이다.감독은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를 원맨쇼에 빛나는 단순한 액션 스릴러로 남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짙은 감정에 호소하는 드라마틱한 부분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반전은 정말 지금까지 복잡하게만 흘러왔던 사건을 기가 막히게 한 방에 해소시켜준다. 자유를 향한 처절한 감정에 호소하고자 했던 그녀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던 영화, ‘안나(2019)’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