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카페스토리
요즘은 싱글오리진으로 만들어진 아메리카노를 주변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아무래도 특정 원두의 쓴맛을 잡아주는 게 블렌딩이 좀 더 편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 때문에 필자는 아메리카노보다 카페 라떼를 즐겨 마시는 편이다. 우유가 들어가 원두의 쓴 맛을 부드럽게 잡아주고 풍미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카페 라떼는 에스프레소 본연의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찾는 카페마다 저마다의 커피 맛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단지 원두의 차이와 배합, 바리스타의 개성에서 나오는 맛의 차이라기보다는 그 카페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렸다. 다양한 인생 굴곡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찾아오는 ‘카페’란 장소는 그 각양각색의 인생사만큼이나 고유의 색깔을 지닌다. 사람들의 여러 사연들이 모여 카페의 분위기를 이루고 그 맛과 내음은 카페를 찾는 손님들에게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집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와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의 맛이 차이가 나는 건 이러한 이유도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커피를 마실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가 한 편 있다. 커피를 주제로 한 영화는 여럿 작품들이 있지만 특히 이 작품은 대만 영화 특유의 깔끔한 색감과 익숙한 배우가 출연해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샤오 야 췐 감독의 영화 <타이페이 카페스토리>(2010)는 제목만큼이나 어느 카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커피 내음을 강하게 풍기지는 않는 작품이다. 오히려 카페마다 고유의 커피 맛을 간직하고 있듯이 두얼(계륜미 분)과 창얼(임진희 분)이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오는 많은 이들의 다양한 사연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이 존재하고 각자의 입맛을 존중하듯이 그들의 인생과 가치관을 두고 어느 것 하나 정답에 가깝다고 선뜻 결론을 내리는 건 어렵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카페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무궁무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샤오 야 췐 감독은 이 작품과 이 공간을 통해 사람마다 저마다의 가치관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영화를 통해 강하게 함축시킨다.
영화는 카페 그 자체가 아닌 두얼이 바라본 시각을 통해 그 명제를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한다. 우연찮게 생겨버린 카라 꽃과 물물교환을 하는 방식으로 유명해진 이 카페에 어느 날 세계 각국을 여행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 남자는 서른다섯 개의 비누를 꺼내며 각각의 비누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고는 비누와 무언가를 교환하기를 원한다. 두얼은 남자와 물물교환을 위해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이 그림이 남자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그들의 물물교환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여기서 남자가 기분이 나빴던 건 자신이 건넨 비누가 가진 ‘가치’였다. 세계 각국을 거쳐 오며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 비누는 이제 눈에 보이는 ‘비누’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남자의 인생을 이루는 한 조각을 형성하고 있었던 거다. 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거창한 인생을 살고 있는 듯 보였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인생을 살아오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커피 그 자체보다 커피가 안겨주는 삶의 의미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여운을 진하게 남긴다. 커피 내음 가득한 공간에서 커피가 안겨주는 삶의 진한 맛을 느끼기를 원한다면 이 영화 <타이페이 카페스토리>가 좋은 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