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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문화는 화해할 수 있을까?

@케이프타운과 로벤 아일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by 지수


파도의 하얀 거품 위로 음이 통통 튄다. 실로폰처럼 쨍한 소리도 글로켄슈필처럼 맑은 고음도 아니다. 그보다는 낮고 둔탁하다. 뭉툭한 음색은 화려하지 않지만 잠 못 드는 밤 꿈을 불러올 만큼 다정하다. 따뜻한 나무의 속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건반은 보드라운 고무 구슬과 부딪히며 음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빚는다. 고운 울림은 파스텔톤 항구와 어우러져 동화 속을 걷는 듯하다. 기다란 말렛으로 마림바를 두드리는 솜씨는 다소 투박하지만 젬베의 진동이 빈 곳을 부족함 없이 메운다. 새된 소리를 들킬까 바짝 몸을 수그린 스플래쉬 심벌은 정박마다 찰랑이며 존재감을 뽐낸다. 낯설지만 정겨운 아프리카 음악이 유럽풍 거리에 흘러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까닭은 연주자와 선율을 노래하는 악기의 고향이 이곳 아프리카이기 때문이다.


파란 대서양의 물빛을 닮은 건물들이 항구를 따라 늘어서 있다. 하와이안 블루, 히아신스, 민트처럼 비슷한 듯 제각기 다른 푸름은 바다와 어우러져 일체감을 준다. 가지런히 정박한 요트 사이를 거닐며 장미색 시계탑을 찾는다. 타워는 케이프타운 워터프런트의 상징이자 오늘 방문할 로벤 섬의 기착지다. 몸체에 비해 자그마한 시계 뒤로 육중한 크기의 선착장이 나타난다. 하루에 몇 차례 운행하지 않아 탑승장은 이미 만원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적 현장을 방문하는 길은 순탄치 않다. 아프리카 대륙의 끝자락을 향해 매서운 바람이 몰아친다. 기세를 탄 파도는 덩치 큰 쾌속선을 입맛대로 요리한다. 느긋하게 갑판에서 풍경을 감상하려는 시도는 물거품이 된다. 앞이 뿌예지고 속이 메슥거린다. 서둘러 자리를 잡고 눈을 감는다. 이럴 때는 잠이 답이다. 유배지는 길목부터 진땀을 빼게 한다.


케이프타운의 중심가 워터프런트와 테이블마운틴 정상에서 내려다 본 로벤 아일랜드


도심에서 로벤 아일랜드까지 거리는 9.67km에 불과하다. 그리 멀지 않지만 이곳은 천연 감옥으로 제격이다. 지독한 뱃멀미는 케이프타운 앞바다를 흐르는 해류가 얼마나 거센 지를 증명한다. 맨몸으로 이겨내기에 역부족이다. 더욱이 남극에서 밀려오는 차가운 수온과 허덕이는 먹이를 노리는 상어의 공격에도 맞서야 한다. 혹독한 여건의 자그마한 섬이 유명세를 치르는 까닭은 넬슨 만델라가 27년 간의 수감 생활 중 18년을 이곳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당시 로벤 아일랜드는 만델라를 비롯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을 주로 수용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떠올리면 이 섬이 오늘날까지도 살아 숨 쉬는 역사적 공간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수용소 안 빈 공터에는 인디고 색상의 반팔 셔츠를 입은 해설사가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는 과거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여 로벤 섬에 투옥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시 재소자이거나 교도관이라고 하니 그들 스스로가 생생한 역사의 증인인 셈이다.

- 교도소는 A~F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형량이 높을수록 F 구역에 가까워집니다. 거물급 인사들은 독방에 가두지요. 수용 동에 따라 처우가 달랐어요. 식사량, 침대 유무, 방의 크기, 심지어 편지를 쓰는 횟수까지 제한했답니다.

시설 내부에 강당이라 불릴 만한 널찍한 방으로 들어선다. 철창 사이로 정오의 햇볕이 따갑게 내리쬔다. 녹슨 이층 침대와 기다란 의자가 네모난 벽면을 따라 놓여 있다.

- 크기로 짐작하셨겠죠? 이곳에서는 여러 명의 수감자들이 함께 생활했답니다. 감옥치곤 쾌적해 보이겠지만 콩나물 버스나 다름없었어요. 바닥의 깔개가 이부자리입니다. 밤이면 1인용 모포가 방을 꽉 채웠답니다.

한눈에 봐도 길이며 너비며, 몸을 펴고 자기에 버거워 보인다. 더욱이 재소자 대부분이 비교적 덩치가 큰 흑인 남성이었으니 그들의 잠자리가 얼마나 불편했을지 짐작될 테다.


수용소 안팎 가릴 것 없이 삭막하다. 바닥의 깔개는 당시 재소자가 사용한 모포다.


-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아시나요? 아프리칸스어로 분리를 뜻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악명 높은 인종 차별 정책이지요.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백인들은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절대 다수인 원주민을 탄압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흑인, 아시아계 등 유색인종은 투표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직업과 거주지에도 제약을 받았다. 철저하게 흑백을 구분하여 공공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없었다. 같은 버스조차 탈 수 없는데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이 인정될 리가 만무했다. 도무지 깨지지 않을 듯한 콘크리트 천장은 어떻게 부서진 걸까?

- 불합리한 인종 차별에 대항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저항운동을 벌였습니다. 만델라가 대표적이지요.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이다. 정의로운 젊은이는 인종차별이 극도로 치닫자 뜻을 모아 1944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청년 연맹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서 경험했듯이 평화시위만으로는 억압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군대를 창설하여 무장투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체포되어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혁명 동지들과 끌려온 이곳 로벤 섬에서 그는 무려 18년 동안 옥살이를 하였다.


차가운 쇠창살 너머 만델라의 방은 그의 담대함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하다. 삼엄한 경비로 다른 동료들과의 교류는 막혀 있었고 편지 속 짧은 구절마저 철저한 검열의 대상이었다. 서른 해 가까이 지옥 같은 감옥생활을 견뎌내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시민들의 투쟁과 구금, 그리고 숭고한 죽음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국제사회는 백인 정부를 향해 화살을 겨누었고 저항의 불씨는 나날이 커져만 갔다. 비판 여론을 감당할 수 없었던 기득권 세력은 마침내 굴복했고 검은 물결은 거침없이 낡은 통념을 삼켰다. 1993년 유색인종의 참정권을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이듬해 19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로 흑인 정부가 탄생하면서 극악무도한 아파르트헤이트가 막을 내렸다. 평등한 사회를 소망하며 삶으로 실천한 넬슨 만델라는 시대의 부름을 받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교도관의 각진 모자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넬슨 만델라는 이곳 독방에서 18년을 보냈다.


- 마디바(Madiba)는 큰 사람입니다. 복수를 하기보다는 갈기갈기 찢긴 나라를 하나로 이으려 했지요.

만델라의 애칭 마디바는 코사족 말로 ‘존경받는 어른’을 뜻한다. 그가 사랑받는 까닭은 인권 운동가로서의 헌신뿐만 아니라 모두의 상처와 불안을 끌어안은데 있다. 깨진 그릇은 쉽사리 붙여지지 않는다. 아파르헤이트의 철폐에도 서로 다른 집단은 적대감으로 날이 서 있었다. 백인계는 흑인 정부의 등장으로 앙갚음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유색인종들은 오랜 차별로 사회·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마디바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과오를 밝히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되 정치적 보복은 하지 않았다. 그러한 행보는 분열을 끝내고 손을 맞잡아야 국가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제가 감옥에 있지 않았다면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과제, 즉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가장 처절한 순간에 역설적으로 용서와 화합을 노래했다.


- 세상이 뒤집혔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가이드는 특유의 강한 악센트로 낱말 하나하나에 방점을 찍는다. 아파르트헤이트는 폐지되었지만 사회 곳곳에 그 잔재가 남아있다. 수십 년 간 벌어진 간극은 간단히 좁혀지지 않는다. 한정된 일자리와 교육의 공백은 소득 수준에 영향을 주었다. 현재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빈부 격차는 열 배를 상회한다. 주거공간의 분리막 또한 유효하다. 변두리로 내몰린 원주민은 지금도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생활용수는 빼곡한 판자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턱 없이 부족하다. 흙먼지가 날리고 비가 줄줄 새는 지붕 아래에서 주방과 화장실을 위생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범죄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가게에 상품을 진열하기조차 불안하다. 거대한 빈민촌은 케이프타운 외곽에만 서른 개가 넘는다고 한다. 슬럼화 된 동네는 어느 유럽 도시 못지않게 화려한 시가지와 대비되어 불편한 진실을 비춘다.

입구 위에는 구역을 나누는 표식이 그려져 있다. 로벤 섬 곳곳에서 공동묘지를 볼 수 있다.


케이프타운의 대표 관광지인 보캅 또한 흑백 차별 정책의 유산을 보여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다인종·다민족·다종교 사회이다. 네덜란드계 보어인, 흑인 원주민뿐만 아니라 아시아 출신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시아계 주민은 식민지 시절 인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강제 이주된 노예의 후손이다. 유럽의 침략자들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바다 건너에서 수만 명의 일꾼을 잡아왔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약탈자의 집을 짓고 수탈자를 배 불리기 위해 밭을 일군 심정이 어떠했을까. 이민자들은 언덕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집집마다 색깔을 다르게 하여 노예의 상징인 흰 벽에 진한 원색 물감을 덧발랐다. 알록달록하게 장식한 고갯마루는 높은 지역을 뜻하는 아프리칸스어 보캅(Bo-kaap)으로 불린다. 거리에서 동남아 음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곳에 터를 닦은 아시아계 주민들의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보캅의 쨍한 색감에는 아시아계 주민들의 감성이 반영되어 있다.


테이블마운틴을 배경으로 관람차가 빙그르르 돌아간다. 오후 나절은 인파가 가장 몰리는 시기다. 항구에는 외투를 벗고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행렬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마림바의 청아한 울림은 발길을 붙잡고 뺨을 분홍빛으로 싱그럽게 물들인다. 관중이 겹겹이 쌓이자 젬베 소리에 흥 한 스푼 더해진다. 눈을 맞추며 리듬을 나누는 연주자들 위로 갈매기가 춤을 춘다. 바다 건너 로벤의 영웅들은 알고 있었을까? 백인의 전유물이었던 번화가 워터프런트에서 후손들이 피부색의 구분 없이 한데 뒤섞여 선조의 음악을 자유로이 노래하는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고대하던 별천지가 왔다. 안타깝게도 신세계는 현실의 장벽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역사가 증명했듯이 바퀴는 구르고 천장은 부서질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가지지 못한 자와 가진 자가 함께 힘을 모으고 충돌하는 문화가 모자람 없이 화해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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