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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응급 수술을 받다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 공화국

by 지수


핸드폰 손전등을 켠다. 휴대용 랜턴에 끈을 연결해 동그랗게 머리를 감싸고 단단히 이마에 고정한다. 양쪽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이 한 지점을 비춘다. 하얀 테이블보다 더 허옇게 밝아진 손바닥이 꿈틀대다가 이내 꽉 잡힌다. 어디선가 국민 빨간약이라 부르는 소독약이 튀어나온다. 블라인드 모양의 손잡이 끝부분에 시뻘건 물을 연신 적신다. 만능 도구 맥가이버칼과 빠빳한 카드가 금세 갈색빛으로 물든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에도 빈틈없이 듬뿍 바른다. 딱딱 소리를 내는 족집게와 칼등이 교차하자 반사적으로 고개가 반대로 돌아간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꽉 깨문다. 딱지가 앉아 칼날이 뭉툭하게 느껴지다가 일순간 따끔한다. 핏방울이 맺혔다 흘러내린다. 미약한 핏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드로 꾹 눌러 짜낸다. 검정 끄트머리를 집으려 족집게가 올랐다 내렸다 분주하다. 일주일만 버티면 되는데 속도 모르고 말썽이다.


응급 수술의 불씨는 아프리카의 진주 잔지바르 섬에서 피어오른다.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은 현지에서 오픈 워터 자격증 따기에 도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난생처음 해보는 물질에 자그마한 자극에도 혼비백산이 되고 사고 치기 일쑤다. 저 위로 넘실대는 수면을 보면 덜컥 겁이 난다. 그럴 때면 본능적으로 바닥에 바짝 붙어 손바닥으로 땅을 짚으며 헤엄을 친다. 다이빙인지 수중에서 벌이는 포복 훈련인지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저녁 무렵에야 해변을 밟고 깊은숨을 몰아쉬는데 어라, 손가락이 따끔하다. 왼손가락에 뾰족한 성게 가시가 별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손가락을 구부리자 깊숙이 뿌리내린 녀석이 통증과 함께 존재감을 뽐낸다. 한두 개가 아니다. 세 손가락에 골고루 자리 잡았다. 바늘 끝으로 찌른 듯 점점이 타오르는 붉은 자국에 손가락이 프랑크 소시지처럼 부푼다. 다이빙 강사는 울상을 짓고 있는 표정에 별 일 아닌 듯 라임으로 문지르란다. 덤으로 검정 가시로 빼곡한 자신의 손바닥과 발바닥을 보여준다. 바다에서 생긴 상처는 바닷물에 닿으면 낫는다는 신비한 치료법도 설파한다.


성게에 찔린 날은 바늘에 긁힌 듯하다. 열흘 후에는 손가락이 퉁퉁 붓고 가시가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찌릿한 통증은 파도 아래에서 자취를 감춘다. 물결은 성게의 독을 빼내고 냉혹한 가시를 보드랍게 만든다. 매일 같이 수면을 넘나들었기 때문일까, 잔지바르를 떠나는 손인사는 아픔을 덜어내 산뜻한 바다향을 풍긴다. 문제는 다음 여행지 잠비아에서 터진다. 민물은 바다 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장한 화려한 장신구를 감당하지 못한다. 하루하루 덩치를 키우는 손가락은 살포시 갖다 대기만 해도 비명을 지른다. 같은 사람의 손일까 싶을 만큼 퉁퉁 부어오른 손마디는 가느다란 오른손을 질투한다. 잼잼 손끝 마디를 꺾는 게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자 결국 병원 문을 밟는다. 사방이 흙으로 둘러싸인 내륙국 잠비아에서 성게 가시에 찔린 사람이 몇이나 될까. 평생 폭탄을 닮은 별 모양에 이름도 낯선 바다 동물을 본 적도 없을 게다. 어색한 미소가 흐르고 굳은살처럼 단단히 피부를 덮은 딱지 안으로 주사 바늘이 무자비하게 들고난다. 신음 소리가 비릿해지고 살점이 뜯겨나가도 한 몸 감쌀 공간을 확보한 성게는 끄떡없다. 어깨를 비틀면서도 시선은 차마 바늘 끝에서 거두지 못한다. 별 소득 없이 난도질된 손마디를 돌려주며 의사는 짧게 답한다. NOTHING(아무것도 없어요). 불룩 튀어나온 가시를 보면서도 외면하는 목소리에 눈물이 고인다.


제거에는 실패했지만 엄지손톱 크기의 동그란 약은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소염제는 덧난 상처를 차분히 다독인다. 성난 손가락이 잠잠해질 무렵 두 번째 수술이 시큼한 향과 함께 찾아온다. 같은 숙소에 머무는 여행자가 오리발처럼 생긴 다이빙 핀을 꺼낸다. 다이버를 만난 반가움은 성게에 찔린 적 있냐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부엌으로 따라오란다. 따로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게스트하우스인데 투숙객이 불쑥 주방을 방문하니 열댓 살 남짓한 소녀의 눈빛이 흔들린다.

-저기, 혹시 식초 있나요?

식초? 갑자기 웬 식초란 말인가. 수줍은 눈길로 소금이나 설탕, 올리브 오일을 구하는 여행자는 종종 있지만 찌르는 냄새를 찾는 일은 드물다. 순간 멈칫하더니 찬장을 살피곤 한 컵 가득 따라준다. 특이한 손님의 등장에 생글생글 웃음꽃이 피고 한 뼘 큰 언니와 소곤소곤 말을 나눈다. 민망함의 크기만큼 땡큐를 덧붙이고 후다닥 주인장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식초에 손을 담가 성게 가시를 녹이고 있다.


멀리 가지 못하고 붙잡힌 왼손은 통째로 잔 내부로 잠수한다. 머리를 울리는 찌른내에 눈이 번쩍 뜨인다.

-식초는 성게 가시를 녹여요. 암모니아도 괜찮은데 아무래도 그건 좀 그렇죠?

아무렴, 식초가 최고죠. 푹 삭혔더니 몸에서 신내가 진동한다. 식초 인간에게 빳빳한 카드가 날아든다. 손끝에서부터 살살 밀어 빼내려나 보다. 흐물흐물해진 손가락의 붉은 점을 향해 동서남북에서 압력이 전해진다. 어릴 적 손과 팔을 꽁꽁 부여잡고 피가 통하지 않게 만든 후 찌릿한 전기를 내던 놀이가 떠오른다. 하얗게 변하는 살점 위로 얕게 박힌 검은 가시가 조금씩 고개를 든다. 천천히 솟아오르는 모양새에 아픔도 멎는다. 입술이 동그래지고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얼마나 기다리고 참아왔던가. 하나를 성공하고 나니 본격적으로 제거작업에 나선다. 두껍게 덮인 녀석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일단 만만한 부위부터 공략한다. 아쉬움과 탄성이 오고 가고 마침내 검정 타일 위로 주인 잃은 삐죽이들이 서넛 구른다.


아직 콕콕 쑤시지만 악당 절반을 물리치고 입성한 케이프타운에는 더한 열정이 기다리고 있다. 일주일 간 함께 아파트를 공유할 룸메이트 중 둘이 의사다.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가시는 그들의 의학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프긴 해도 집에 갈 날이 머지않아 어떻게든 버틸 생각이었는데 꼼짝없이 거실로 끌려 나온다. 항상 의료도구를 챙겨 다니는 걸까. 해열제나 지사제, 밴드나 연고 같은 상비약을 나 역시 나름대로 담아가는 편인데 이번엔 못 당하겠다. 가방 속에 소독약과 칼, 족집게 등 온갖 게 다 들어있다. 수술실처럼 밝은 조명이 없으니 랜턴을 머리에 두르고 핸드폰 조명을 비춘다. 수술 부위를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정밀하게 각도를 조절한다. 깨끗이 칼과 집게, 카드와 환부를 소독하고 어떤 방법으로 진행할지 줄기차게 이야기를 나눈다. 하나는 째고 다른 하나는 뽑는 걸로 역할을 정한다. 전문적인 뉘앙스에 안심이 되면서도 두려움이 앞선다. 뭐가 되었든 빨리만 끝나다오.


케이프타운 아파트 거실에서 제거 수술이 한창이다. 놀라울 만큼 모두 진지하다.


-메스 가져올 걸. 날이 무디네.

맥가이버칼은 다용도로 쓸 수 있지만 한참 전에 앉은 딱지를 자르기에 충분치 않다. 따끔할 거라는 신호와 함께 예민한 손끝이 갈라진다. 다이버가 전수한 카드 밀기 기술로 깊숙이 박힌 가시를 밀어 올린다. 방향을 체크하고 위에서 꼭지를 노리다가 독수리처럼 빠르게 낚아챈다. 하나 성공! 팔을 제외한 온몸이 꽈리를 틀며 거부한다. 동물원의 동물이 된 듯 나머지 친구들이 우리를 둘러싼다. 목을 길게 빼고 관전하기도 수술을 보조하기도 한다. 관중 셋은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나에게 상황을 생중계한다. 더 째야 한다는 무서운 말마디와 괜찮냐는 위로의 속삭임과 진지한 토의가 뒤섞여 울적한 마음을 들고난다. 플래시가 꺼지고 집중력 있게 집도한 둘이 기지개를 켠다. 손가락은 붉고 그보다 더 진한 피가 빼꼼 나오지만 수술은 성공적이다. 지긋지긋한 고통과 완전한 이별이다. 아프리카의 첫 도시에서 당한 참변을 마지막 도시에서 치유한 걸 보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함께 한 친구가 성게 가시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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