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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an 13. 2022

동산은 달려야 제맛이지요


 옛집의 남향에는 동산이 있다. 야트막한 야산은 언덕에 가까워 사람 손을 많이 탔다. 자주 발길이 닿다 보니 자연스레 흙길이 나 있다. 완만한 기울기는 오르기에 수월하지만 그만큼 거리가 늘어나 꼭대기까지 한참 걸린다. 우리는 주로 이곳에서 달리기 경주를 한다. 두 명이 뛰기에 꼭 맞다. 다만 평지에서의 뛰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정상에서 밑까지 내리막에 가속도가 붙으면 결승선에 도달해서도 한참을 더 나간다. 마주 보는 양옥집 벽에 쿵 박기 일쑤다.  

   

 겨울이면 동산은 하얀 옷을 입는다. 천연 눈썰매장이다. 장비를 끌고 눈밭을 꾹꾹 밟으며 등산을 한다. 산정에 다다르면 감귤빛 바탕에 궁서체로 ‘비료’라고 쓴 포대를 바닥에 깐다. 농사에 쓰고 남은 까끌까끌한 자루는 간편하고 질긴 최고의 썰매다. 봉합된 끝단을 아래로 하고 입구 위에 엉덩이로 앉는다. 무릎을 끌어안고 두 발을 중앙에 가지런히 둔다. 앞자락을 몸 쪽으로 당기며 추진력을 준다.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한 발을 밖으로 빼 눈덩이를 밀어낸다. 그래도 안 되면 뒤에 서 있던 사촌오빠가 썰매를 앞뒤로 문지르며 길을 닦아준다.


 출발에 성공하더라도 순탄하지만은 않다. 등을 힘껏 밀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엎어질 수 있으니 재빨리 허리를 뒤로 젖혀 고꾸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강 국면에서는 좌우로 쉼 없이 흔들린다.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중간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집중력과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브레이크가 따로 없다 보니 도착 지점에서 덜컥 겁이 난다. 어느 순간 아빠가 나타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하늘로 붕 날아 올린다. 포대는 몇 걸음 미끄러지다가 전봇대 앞에서 멈춘다. 어린이의 체력은 여러 차례 반복해도 힘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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