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2년 700일 쓰는 안경이랍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안경을 썼다. 40년 전이다. 뚝섬에서 남대문까지 엄마와 버스를 타고 갔다. 당시 엄마는 우리집 최초의 안경이라서 동네 통장에게 좋은 안경점을 물었다. 통장이 제일 똑똑하지 않을까 생각했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충분히 그랬지 싶다. 지금 기억엔 크고 멋진 가게도 아니었는데, 남대문에서 꽤 비싸게 주고 안경을 맞췄다. 집안 형편을 생각하면 너무 비쌌다. 그래도 엄마는 장남의 첫 안경이라 비싼 걸 해주고 싶었던 거 같다. 비싸면 좋은거겠지 엄마는 그랬나 보다. 덕분에 그 남대문 주인은 쏠쏠한 마진을 남겼음이 분명하다. 중 3이 되어 스스로 동네 안경집을 다닐 정도가 되면서 그때 내가 쓰고 있는 안경값을 들은 주인의 비웃음이 그렇게 말했다. 그때 어른들은 참 불친절했다. 나이가 어리면 대놓고 무시가 당연하던 시절이라 역시 그랬나 싶다.
아침 운동을 하면서 지나친 안경가게가 요란했다. 포스터며 현수막에 테와 렌즈를 홍보했는데, 테는 만원부터 시작하고 렌즈 역시 만원 이만원에 선글라스는 균일가로 3만원이라고 적었다. 실제로 나 역시도 그 전에는, 싸게 파는 대형 안경집 단골이었다. 시력이 나빠 압축을 가장 많이 한 렌즈를 7만원에 사서 꼈다. 그 이상의 렌즈는 써본 적이 창피하게도 없었다. 물론, 싸구려 렌즈를 끼는 게 부끄러울 건 없지만, 한번 렌즈를 바꾸면 최소 2년은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 아끼고 살았는가 싶어서다.
대전으로 이사를 와서 새로운 안경집이 필요했다. 남양주까지 갈 수는 없으니, 집 근처 안경집을 찾았다. 직원만 7명쯤인 그곳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작은 안경집을 갔다. 50이 넘으니 다초점 렌즈가 필요했지만 적응하는 시간이 싫어서 외면했던 그 렌즈에 대해 한번 물었다. 직원이 하나뿐인 작은 안경집의 젊은 주인은 아주 당당하게 단초점렌즈를 권했다. 다초점에 비해 기능은 좀 떨어지지만, 적응하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는 장점을 콕 짚었다.
“손님, 렌즈는 좋은 걸 쓰셔야 합니다. 한번 렌즈를 맞추면 최소 2년 이상을 쓰실 텐데 하루 값으로 나누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청소년은 시력이 금새 바뀌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40대가 넘으면 시력 변화가 거의 없으니, 렌즈는 가급적 좋은 걸 쓰셔야 합니다”
생각하니 맞는 말이다. 7만 원짜리 렌즈를 1년으로 나누면 하루에 190원꼴이다. 그보다 훨씬 비싼 70만 원짜리 렌즈를 2년을 쓴다면 하루에 960원꼴이다. 소중한 내 눈을 위해, 하루 천원의 투자를 아꼈다는 게 속상했다. 브랜드 제품 렌즈로 50만 원을 결제했다.
둘째가 물놀이에 심취하다 안경을 부쉈다. 아들 먼저 그 집에 보냈다. “4번 압축한 렌즈로 해달라고 하고, 테는 네가 마음에 드는 걸로 5만 원 미만에서 골라. 계산은 아빠가 한다고 하고”
마침 나 역시 부산 해수욕장에서 70만 원짜리 린드버그 테를 바닷물에 빠뜨려 잃어버린 터라, 보조 안경을 하나 더 할 참이라 다시 그 작은 안경집을 찾았다. 아이가 맞춘 안경값은 21만 원이었다. 아들이 고른 테가 9만 원짜리라고 했다. 렌즈는 15만 원. 그래서 내가 “7만 원짜리는 팔지 않냐?”고 물으니, 안경집에서 가격표를 까보이고 파는 그 렌즈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렌즈는 도저히 손님에게 권할 수 없다면서 아들이 구매한 렌즈 포장지의 브랜드를 보여주었다. 아들이 기어이 테를 좋은 걸로 골라서 자신이 빼줄 수 있는 선에서 3만 원이라고 했다. 주인의 당당한 태도가 맘에 들었다. 내 눈은 소중하고, 아들 눈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 아빠가 미안했다.
작은 안경집 젊은 사장의 말솜씨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쳐도 좋다. 그게 사실이 아닌데, 괜히 비싼 렌즈값에 눈탱이를 맞았대도 상관없다. 나는 이 안경점을 통해 작아도, 싸게 팔지 않아서 적은 고정비로 잘 굴러가는 사정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40년을 안경을 썼지만, 대부분 비싼 테를 권하긴 했어도 비싼 렌즈를 권한 가게는 여기가 처음이었다. 테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영구적이고, 렌즈는 수시로 교체하기에 권유의 초점이 테였던 듯 싶다. 테에서 마진을 취하는 것이 영리한 장사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렌즈는 가격표를 가게 밖에 고지하고, 테는 사실 그 테가 원래 얼마인지는 주인밖에는 모르는 그런 장사를 하는 게 흔한 안경집 스타일인지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다.
예전 단골 대형 안경집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버글거렸다. 테와 렌즈를 합쳐서 3~4만 원에도 가능하니, 학생들은 딱이다. 그렇게 여러 학생에게 바삐 팔아야 하니까 직원이 7명도 바쁘다. 싸게 팔아서 그 인건비를 주려면 엄청 팔던가, 싸게 팔면서도 많이 남겨야 할 거다. 싼데도 많이 남겨야 한다면, 그 질은 어떨까 싶다. 그에 반해 동네 작은 안경집은 직원이 한 명이다. 주인은 7시면 퇴근한다. 싸구려 테는 팔지도 않고, 렌즈도 싸다고 홍보하지도 않는다. 가게 밖에 아무런 가격 유인물이 없다. 큰 안경점도 잘 취급하지 않는 고급 테를 판다. 린드버그를 바닷물에 빠뜨리고 고른 이번 안경테는 프랑스제다. 공장에서 찍어낸 테가 아니라, 수제로 만들어 디자인이 독특했다. 당연히, 값으로 60만 원쯤 치뤘다. 최소 이 테도 분명 5년, 10년은 친구라 되어줄게다. 하루 값으로 나누면 160원쯤(5년으로 나누면 320원)이다.
규모가 큰 안경점도 문을 닫는다. 직원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싸게 팔아서 힘에 부친 결과일지도 모른다. 골목에도 여럿인 경쟁자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싸게 팔았던 결과라는 사실이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팔아서, 손님을 모으려고 했던 자충수의 결말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안경은 수시로 구매하는 저관여제품이 아니다. 특히나 성인들에게 안경은 수 년에 한 번 교체하는 고관여제품이다. 잦은 구매가 아닌 상품을 그저 싼 값으로 호객을 하니, 생명이 길 수 없다. 5천 원 만 원짜리 패션테를 파는 건, 문방구나 선물가게가 할 일이다. 전문 안경점이 취급할 품목이 아니다.
작은 안경점은 비싸지만 남다른 테를 구비해서 그걸 인터넷에 올린다. 멋진 사진을 찍어, 우리 가게에서 취급하는 테.라고 손님의 관심을 끌어낸다. 렌즈야 딱히 사진을 찍어 설명할 길이 없으니, 테 위주로 사진을 찍어 흔하지 않은 테를 취급하는 안경점이라고 포지셔닝을 한다. 안경을 기능을 위해 쓰는 사람에게는 관심 밖이지만, 패션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디자인, 브랜드는 관심이다. 매력이다.
테와 렌즈를 합쳐 3~4만원에 팔지 않으니, 손님은 적다. 손님이 많지 않으니 직원도 많이 둘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번 온 손님에게 안경 하나를 팔면 적게도 20만 원, 많게는 100만 원도 판다. 물론, 원가도 상대적으로 높아서 남는 게 얼마인지는 몰라도, 무식하게 매출로만 비교해도 작은 안경집 매출도 그만하면 먹고 살 것 같다. 그래야 한다. 박리다매는 판매업이라고 친구할만한 녀석이 아니다. 많이 만들거나, 많이 팔려면 인건비가 그만큼 소용된다. 이제는 적은 인건비로 감당해야 하는 시대다. 싸고 좋은 걸 파느니, 비싸서 좋은 걸 파는 게 낫다. 이유는 간단하다. 싸고 좋은 건 없기 때문이다. 없는걸 좋다고 파니까, 손님은 재구매를 하지 않는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걸 깨우친 손님은 비싸서 좋은 걸 경험하면 절대 다시는 싸고 좋은 걸 기웃하지 않는다.
효자동 린드버그를 주로 파는 안경점도 규모가 작았다. 저렴한 국산 안경테도 취급은 했지만, 사람들은 린드버그를 사려고 그곳까지 찾아갔다. 부부가 직원 한 명과 린드버그를 주로 팔았다. 철사줄 한 줄로 만들어진 것 같은 린드버그는 테만 70만 원이 넘는다. 그 테를 하루에 열몇 개는 팔았다. 장사는 규모가 능사 아니다. 앞으로는 더 그래야 한다. 인구절벽, 업종불문하고 구인은 점점 고생이 깊을 테니 말이다. 질로 팔아야 한다. 싸고 좋은 건 없다. 싸고 나쁜걸 좋다고 포장해서 팔거나, 비싸서 좋은 걸 당당히 제값에 팔아야 한다. 그걸 사려는 사람만 상대해야 한다. 그러면 인건비라는 고정비도 감당이 될거다. 당연히 필요 인력이 적어서일 수도 있고, 수입이 좋아서 넉넉히 써도 감당이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