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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당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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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태 May 17. 2018

창업의 시작은 입지

좋은 자리에 대한 깨달음

3. 어디에 차릴 것인가?

화진 아빠(앞으로는 이소장으로 칭하겠습니다)는 저에게 발품을 많이 팔아서 매물을 뒤져보라고 했습니다. 어떤 조건도, 방식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서 부딪혀보라고 했습니다. 단, 부동산 응대 요령 몇 가지는 알려주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 지는 나중에 겪어보고 깨달았습니다. 저 사람이 거저 저 노하우가 쌓인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 절대 복장은 허술히 입고 가지 마라. 사람은 대게 복장을 보고 깐본다. 복장 때문에 싼 매물을 찾는다고 판단하고 문전박대를 한다.

2. 식당을 하고 있다고 말해라. 처음 하는 식당이라고 하면, 판단을 내리지 못할 거고, 수고만 하다 끝날 수 있다는 경험으로 건성으로 알려준다. 그러니까 현재 식당을 하고 있고, 해본 경험이 많다고 해라. 그래야 권리금, 월세 싼 것을 찾는다고 해도 관심을 갖는다.

3. 남이 보여준 매물은 또 보지 마라. 나중에 중복된 매물을 결정할 때 큰 싸움이 일어난다. 차리는 내 입장에서는 복비가 얼마 안 되지만, 중개인에게는 큰돈이다. 그래서 먼저 본 매물은 같이 동행해서 보지 말아야 한다.

이것 말고도 여러 요령을 가르쳐주었지만, 그런 것도 다른 책에서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지금 저는 식당 일기를 쓰는 중이니까요.     


직장에 나가는 것처럼 아침에 밥을 먹으면 내가 가고자 하는 동네로 떠났습니다. 내가 살았던 동네도 가보고, 회사 근처도 가보고, 손님으로 즐겼던 동네도 가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정말 점포 임대료가 비싸다는 겁니다. 권리금은 차치하고 월세가 말도 못 하게 비쌌습니다. 아파트 월세로 100만 원이면 꽤 넉넉한 크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가는 10평짜리가 200만 원, 300만 원은 우스웠습니다. 도대체 정말 그런 가게를 얻어서 돈을 벌려면 얼마나 팔아야 하는지 아찔했습니다. 그래서 구두 한 켤레가 헤어질 즈음(그전까지는 연락을 하지 말라는 이소장이어서) 이소장을 다시 만났습니다.

“소장님. 어찌하오리까?라는 말부터 꺼내고 싶습니다”

“어때? 둘러보니까 식당 차리는 게 무서워지지 않아? 그 비싼 월세를 낼 자신이 없어지지? 하루 얼마나 팔아야 하는지 걱정되지? 그러라고 둘러보라고 한 거야”

“그럼 어떡해야 할까요?”

“쉽게 생각하자구. 월세가 비싼 곳에 유동량이 많지? 그런데 그만큼 경쟁자도 많을 거야. 거기서 싸워 이기려면 대단한 음식이거나, 근사한 시설이거나, 굉장한 노하우가 있거나, 오래 싸울 실탄이 든든하던가겠지? 지금 철수 아빠는 어때? 그중에서 갖춘 것이 있어? 나는 빼. 나는 방향을 잡아 줄 뿐이지, 내 노하우가 철수 아빠 노하우가 되는 게 아니니까”     

“이런 건 어떤가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동네에 가서 자리 잡았는데, 나중에 그 동네가 유명해져서 월세가 올라서 떠나야 하는. 일명 젠트리피케이션 걱정은요?”

그 말에 이소장은 피식 웃더군요. 

“거기가 어딘데? 그런 곳을 안다구? 나도 모르는데 철수 아빠가 그런 곳을 안다구? 그냥 그런 건 머리에서 지워. 그런 걱정까지 미리 사서 할 이유 없으니까. 순리대로 생각해. 그런 날이 오면 나가면 되는 거야. 감당할 수 있으면 하는 거고, 못 하겠으면 나가면 되는 거야. 그런 일 벌어질까 잠 못 잘 걱정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마. 식당 차리는 거 스톱하라구”      


“철수 아빠. 생각해봐. 아무리 권리금 많이 줘도 그보다 더 주는 자리도 수두룩하지? 그대가 좋은 자리라고 얻어서 월세 300만 원 낸다고 쳐도, 그 동네에서 500만 원, 700만 원도 있을 거야. 그지? 그런 자리와 싸워서 못 이겨. 돈 놓고 돈 먹으려는 사람들을 무슨 수로 이기냐구. 상권 분석? 다 하는 말이야. 지금은 상권을 분석하는 시대는 끝났어. 괜한 헛수고야. 오히려 그 분석 때문에 스스로 자멸의 길로 뛰어들 수 있어. 이유는 지금은 누구나 쉽게 정보를 찾고, 길을 찾는 도구를 하나씩 가졌기 때문이야. SNS라는 관계망을 통해 전파력이 급속도로 빨라졌기 때문에 식당은 들어가는 게 아니라, 찾아가게 하는 거로 변했어. 이건 굉장히 중요한 말이야. 들어오게 하려면 접근성이 좋아야 하고, 접근성이란 것은 유동량과 더불어 점포의 임대료 가치에 근간이 되는 거야. 그런데 찾아오게 라는 말은 어디에 있어도 상관없다는 뜻이거든. 스스로 손님이 오게끔 할 건데 굳이 비싼 권리금, 많은 월세를 낼 필요가 있나? 그렇게 쓸 돈으로 식당을 찾는 손님에게 음식으로 보상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 아닐까?”     


이 말은 식당을 손님으로만 갖던 저에게 신선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저부터가 그랬습니다. 내가 정작 가고 싶은 식당은 저를 오게 했습니다. 제가 알아서 찾아가게끔 했습니다. 그 반면에 제가 별 생각 없이 들어갔던 식당은 집 근처, 회사 근처, 지하철 역 근처였습니다. 근처라서 들어간 겁니다. 그리고 거기선 많은 돈을 쓴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뛰어난 맛을 경험한 기억도 없고, 즐거운 추억을 남겨준 곳도 없습니다. 그저 가까이 곁에 있어서 갔던 곳일 뿐입니다.

저에게 좋은 기억과 추억을 주는 식당은 제가 물어물어 찾아갔던, 제가 스스로 검색해서 비교하고 물어갔던 그런 식당이었습니다. 그런 곳은 대부분 외곽에 있었고, 동네라고 해도 숨은 길에 있던 보물 같은 곳이었습니다. 내가 잘 가지 않던 동네 뒷길에 있었고, 거기에 그런 식당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곳에서 줄 서는 광경을 목격했었습니다. 월세가 비싼 회사 근처 식당에서도 줄을 서기는 하지만 그건 점심때 그때만 잠깐이었습니다. 맛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한 끼 때문에, 빨리 먹고 쉬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었기에 줄을 섰던 거였습니다.     

아! 어디에 차리면 좋은 거구나. 를 이소장의 말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금에 대한 압박도 사라졌습니다. 그런 자리는 권리금도 낮고, 월세도 싸다는 것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만큼 살아온 세월이 있는 45살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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