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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Jul 03. 2022

퇴직 후 이모저모 - 17

늦은 깨달음

크루즈 여객선을 타고 지중해의 여러 나라를 다니고,

골프 카트를 타고 초록의 필드를 누비고,

주황색 전등이 줄지어 켜 있는 정원에서 바비큐와 와인을 먹고 마시며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 내가 희망하고 규정한 노후생활이었다.

그러다 보니 노후에 대한 로망은 스트레스의 또 다른 근원이 되어 버렸다.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한참 먼, 다음 생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과 불안감이 항상 마음의 바닥에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시기와 질투로 이어져 때때로 저급한 인성마저 들켜버리는 부끄러운 일이 종종 생기게 된다. 뱉고 나서 여지없이 후회하는 건 이미 식상한 일상이고... 그런 후회가 지겨워서 핸드폰 바탕화면에 'shut the mouth'를 적어 놓긴 했지만 이미 뱉기 전이 아니라 뱉고 나서 보게 되니 별 무소용인 데다가 외려 후회만 더 키운다. 하지만 때론 그런 게 후회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속내를 거짓으로 포장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 건데 왜 후회를 하는 것일까? 평균의 수준을 갖지 못한 그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수준을 들켜버린 탓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런 거겠지. good boy complex가 있는 거다.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다. 그런 콤플렉스만이 이유가 아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낮은 자존감이 타인의 시선을 눈치 보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니 내가 내키는 대로 하고 나서 타인들이 날 어찌 봤을까 하는 걱정에 후회도 하고 주변의 평가에 의한 유불리를 따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질투를 없애던가 절제력이라도 있어서 내뱉기 전에 입을 닫아야 하는데 그 무엇도 내 것이 아니니 입 닫고 살자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자신감도 없고 자존감도 낮아서 삶의 기준을 타인의 시선에 두는 것이 원인인데 이걸 어찌 바꿔야 할까. 어쨌든 편히 살려면 타인에 맞춰서 살던가 아니면 뻔뻔해지던가 할 일이다.


두 달 전쯤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 직전 가을에 다녀온 후 처음이니 2년 하고도 9개월 만의 여행.

혈중 비행기 농도가 거의 제로에 달할 때쯤이었다.

여행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코로나에 잔뜩 겁먹은 탓에 자유여행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타세요. 내리세요.'를 들으며 가자는 대로 이끌려 다니는 패키지를 택했다.

사실 앞에서도 누차 말했듯이 여행 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참 공교롭게 흘러갔다.

(참 모를 일인 게 삶인가 보다)  

여행 가기 몇 개월 전 어디선가 정보(?)를 듣고 코인에 투자했다.

처음엔 100만 원만 넣었는데, 그걸로 무슨 큰돈이 되겠냐 싶어 여기저기서 끌어들이다 보니 500만 원을 넣게 되었다. 정보를 준 사람에 의하면 최소한 10배의 이익을 볼 거라고, 자기 말만 따르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돈을 넣고 이익을 볼 때만 오매불망 기다리던 중, TV에서 여행상품을 광고하는 거다.

마침 결혼 30주년을 앞두고 있던 때라 냉큼 신청했다. 

여행 경비쯤이야 내가 곧 벌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면세점에서 명품 가방도 하나 사줘야겠다며 나름 꿈에 부풀었고 행복했다.

여행을 한 달 앞둔 즈음에 드디어 해당 코인을 상장한다고 공지가 떴고... 어쩌고 저쩌고...

정보를 준 사람은 그 순간 연락이 두절됐다. 어찌 매도하는지 어디서 현금화하는지도 모르는데 연락이 두절되니 올랐다가 마냥 떨어지는 걸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500만 원은 지금 7만 원 정도로 줄어든 기적(?)을 경험 중이다.

이미 결제한 여행을 취소할 순 없었다.

결혼 30주년 기념이기도 했고 기적을 경험한 상황이라 몸이라도 팔아서 가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죽을 상황이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기적의 프리스틱 머니가 있지 않은가. 까짓꺼...

투자 이익을 기대하고 예약한 여행은 커다란 손실을 안은 채 비행기를 탔다.

싸게 가느라 1회 경유와 환승 대기까지 포함해서 21시간이 걸렸다.

9일간 두 나라를 도망자 쫓아다니듯 다니느라 매일의 밤은 다른 호텔이었고 그래서 아침마다 짐을 다시 싸야 하다 보니 그 고됨은 여행의 즐거움을 때론 상쇄시키고 있었고 일정의 중반이 넘어가면서는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새 자유 여행은커녕 패키지여행조차 힘이 들 정도로 체력은 나이와 반비례하고 있었다.

그러니 크루즈 여행과 골프와 바비큐로 상상한 노후는 영화나 소설에서만 보고 대리 만족해야 하는 허상일지 모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결코 적지 않은 숫자를 안고 무엇을 계속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라오스에 10년째 학교를 지어주는 어느 약사님의 봉사활동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런 분들의 이야기는 종종 매체에 소개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럴 수 있는 마음과 여건이 부럽다며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의 선행으로 무시해 왔지만, 이상하게 그날의 이야기는 여운이 꽤 길게 남았다.

그 방송을 본 지 며칠 후, 마침 고객과의 약속이 다음 날로 미뤄져서 오전이 한가해졌다. 갑자기 생긴 여유 시간을 생산성 있는 활동으로 대체할 만큼 아직은(?) 성실하지 않기에 커피 한 잔을 내려 '사이토 다카시'의 <곁에 두고 읽는 니체>를 집어 들었다. 휴대폰의 유튜브와 연결된 블루투스 스피커로는 조덕배의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책을 읽던 중 뭔가 머리를 툭 치고 지나갔다. 그게 어느 대목인지는 모르겠다. 아니 책의 어느 대목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커피와 보사노바 풍의 노래, 니체의 강렬한 아포리즘 그리고 봉사활동이 삶에 녹아있는 그 약사님.

머릿속에 제각각 들어있던 그 조각들이 이리저리 퍼즐 맞추기를 시작하며 나를 깨웠다.

"내게 노후는 언제부터지? 65세? 70세?"

"어느 나이가 되어야 노후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나이보다는 일을 하지 않는 시점을 말하는 건가?"

"그도 아니면 젊은 시절부터 시작된 규칙적인 경제활동이 끝난 시점을 말하는 건가?"

그렇게 헤매다 보니 내게 '노후'라는 것이 언제여야 할지 궁금해졌다.

내일부터 금연, 내일부터 절약, 내일부터 운동...

지금 하지 못하는 것들을 뒤로 미뤄온 것처럼 노후 또한 습관적으로 뒤로 미뤄둔 건 아닌가?

지금을 '노후'라고 하자니 평소의 로망에는 택도 없는 처지라서 닿지 않을 먼 훗날로 미뤄둔 건 아닐까.

그러다 마지막 퍼즐 조각이 머리를 '툭' 치고 지나가며 말했다.

"지금이 바로 그 노후다."


조금 이른 듯하지만 그러고 보니 지금이 노후가 맞는 듯하다.

정규직은 은퇴한 상태고, 법적으로 정년퇴직할 나이도 지났고, 체력은 70대 노인 부럽지 않은 저질 체력이니 지금이 노후가 아니라면 언제이겠는가.

보편적인 사회 기준이나 동년배의 사람들 기준에 비춰보면 내 처지와는 별개로 지금이 노후.

지금을 즐기든, 괴롭다고 투덜대든, 지금 내가 노후에 접어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로망으로 바라는 노후생활은 결국 무지개 쫓기였다.

무언가 완성된 그때부터 노후가 시작된다고 미뤄두고 있는 이 순간 나의 마지막 삶인 노후를 또 깨닫지 못한 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비록 고되든 아니든, 돈이 되든 그렇지 않든 지금이 노후인 거다.

가끔 오늘처럼 시간이 나면 음악과 함께 책 읽으며 지적 허영심을 채우면서 음악에 의하든 책에 의하든 진한 감동도 느끼는 지금이 나의 노후생활이다.

2~3달에 한 번이라도 필드에 나가고, 바비큐 할 정원은 없지만 가끔 펜션에라도 가는 지금이 노후생활 즐기는 것이다.

"그래, 맞다. 지금이 노후생활을 보내는 중이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벌어놓은 돈 쓰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며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일도 하며, 틈틈이 놀기도 하는 지금이 노후 생활인 거다.

노후는 즐기는 건데 지금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있으니 진정한 노후가 아니라고?

아니야, 인생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시기는 결코 없어.

즐거운 일만 가득 차면 정작 즐거운 일이 없는 거고, 스트레스가 없는 건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죽어서나 가능한 거야.

그러니 환갑을 넘긴 지금 노후가 시작된 거고, 나는 이미 그 노후생활 중인 거야.

즐기냐 아니냐는 내가 정하면 되는 거야.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아?

그 달 벌어 그 달 먹고 살기 급급한 일이지만 그만두지만 않으면 계속 먹고살 수는 있잖아.

같은 사무실 뒷자리의 누구처럼 한 번에 몇 억을 벌고 싶지만 그럴 실력과 자격이 모자람은 사실이잖아.

이제 그런 부러움과 질시는 질려서라도 접어둘 때가 됐잖아.


누군가가 그랬단다. 자유여행으로 유럽 여러 나라를 3개월째 돌아다니던 어느 날 '아 지루해, 여행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그 짝이다. 이미 노후생활에 접어들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조건이 이루어져야만 노후생활 즐기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 멀리 있는 멋진 노후 생활(사실은 이미 와있는)이 가능할 때까지 인생이라는 고해를 건너는 중이라고, 그러니 힘들어도 버티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막내딸에게 말했더니, 큰 깨달음 얻은 걸 축하한단다.

역시 부처 눈엔 부처가 보인.ㅎㅎㅎ 

책만 도끼가 아니라 TV 또한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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