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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Feb 05. 2020

그 드라마가 불편했던 이유

머니게임 10분 시청 후기

한달살기를 마치고 귀국한 다음날, 오랜만에 한국 라면이 먹고 싶었다. 냉동실에서 떡을 꺼내고 양파도 살짝 썰어 넣고 나니, 문득 라면 먹으며 TV를 보던 총각 시절이 떠올랐다. 라면이 완성될 즈음 오랫동안 켜지 않던 셋톱을 연결하고 뜻밖의 재미를 기대하며 채널을 돌렸다. 멀리 있는 아이들이 벌써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라면과 TV를 즐길 수 있으니 나름 장점도 있다며 셀프 위로를 했다.


배우 이성민(허재 역)과 심은경(이혜준 역)은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뭔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내려놨다. 드라마 '미생'과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받은 무의식적인 호감이 드라마 선택에 영향을 준 것일까. 새로운 드라마의 첫 번째 이야기라는 우측 상단의 글자도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한몫했다. 


출처: tvn.tving.com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허재는 신임사무관들 앞에서 강의를 하며 IMF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선배들에게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교육을 듣던 이혜준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시 선배에게 분노를 느꼈다고 하셨는데, 부위원장님은 지금 어떤 선배입니까?


라면을 먹던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TV를 바라봤다. 


그러게. 나는 어떤 선배일까?


말도 안 되는 의사결정과 적응하기 힘든 리더십을 보여주는 진상 선배들에게 수도 없는 분노를 느꼈고, 그 사람들이 싫다며 회사를 떠나는 좋은 동기들과 훌륭한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신들보다 이 아이들이 더 회사에 도움이 되는데.


이런 자의적인 판단 속에서도 나 또한 무능한 상태로 조직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하기도 했다. 나는 어떤 선배일까? 휴직하고 회사를 팽개친 선배? 위기라는데 자기 살길만 구상하면서 두 집 살림하고 있는 선배? 슬슬 퇴직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서 받은 만큼만 일하는 선배?


부위원장 허재는 신임 사무관 이혜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피하듯이 강의를 마쳤다. 


나도 다시 라면에 집중했다. 퍼지면 안 되니까. 라면도.. 사람도..


** 심은경의 날카로운 질문, 얼굴 굳어진 이성민 

http://bit.ly/2O0oUzi


금융위원회 채이헌(고수) 과장은 기자회견에서 소신발언을 한다. 드라마 상으로는 뭔가 옳은 이야기를 한 것 같지만 조직은 그에게 역시 냉랭했다. 


- 네가 뭔데 그따위 소리를 해!
- 이거 말고 다른 방법 있어? 있으면 말해봐!
- 이 자식이! 나 지금 위원장님 이야기하는 거야!


이 짧은 대화는 15년 직장생활에서 겪은 수 없는 장면들을 상기시켰다. 회사 또는 고객을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하는 의사결정도 상무와 전무가 시키면 무조건 하라는 조직에 조금씩 정이 떨어져 갔다. 개인적으로는 멀쩡히 좋은 사람인데, 회의만 들어가면 회사와 상사에 대한 충성도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번 실망했다. 


- 지금이라도 그거 종료하고 청산하시죠.
- 그거 상무님이 팀장일 때 만드신 거야. 우리가 그러지 말자. 


심지어 자신을 승진시켜줄 상사는 어떤 일을 해도 박수를 치는 인간성 좋은 선배. 나는 그를 거역하기가 힘들었다. 


**국감에서 소신 발언한 고수

http://bit.ly/2NYGX9e


여기까지 보고 셋톱을 꺼서 서랍에 다시 넣었다. 단 10분이었지만 여느 드라마보다 뼈 때리게 조직 생활을 잘 표현한 드라마였다. 연출과 제작진의 노력도 돋보였고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하지만 나는 불편해서 더 볼 수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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