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의 민낯과 속살 #2
작년에 은행들이 11조를 벌었답니다.
삼성전자는 40조 넘게 버는데 뭐 그 정도야...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은행도 알고 보면 '중개업'인데
자고로 중개업자가 과다하게 돈을 벌면 욕을 먹게 마련입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자인 삼성이 돈을 벌면
'가치가 있는 물건'을 만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은행이 돈을 많이 벌면,
왠지 내 예금의 이자는 조금 주고
대출 이자는 많이 받아간 듯한 찜찜함이 들지요.
돈 있는 사람에게 예금받아서 돈 없는 사람한테 대출하는 간단한 이익 구조,
은행이 정기예금이나 적금으로 자금을 모아
대출을 운용하여 이익을 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매우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은행들이 정기예금이나 적금 '만으로' 조달을 한다면
이렇게 큰돈을 벌어 들이기 어렵습니다.
예금이자와 대출이자 사이의 마진이 생각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모두 은행에서 통장을 하나 만든 다음,
거기로 월급을 입금받아 카드값 내고 공과금 내고 현금도 뽑고 하면서 살아갑니다.
마이너스 쓰는 분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월급통장에 '짜투리 푼돈'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그 푼돈에는 이자가 붙지 않습니다.
끽해야 연 0.1% 정도...
은행들은 우리의 월급통장에 있으나 마나 한 금리를 제공합니다.
1년 내내 통장에 100만 원 넣어두면
이자가 딱 천 원짜리 한 장 붙는 거죠.
이런 통장은 개인은 물론 자영업자, 기업 모두가 조금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푼돈이 모이고 모이면 만만치 않은 돈이 됩니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같은 시중은행의 경우
이런 '무이자 예금'의 비중이 전체 조달금액의 10~20% 정도 됩니다.
어떤 은행이 대출을 100조 했습니다.
그러면 예금도 100조 있어야겠죠.
그런데 그 예금 중의 20조는 이자 한 푼 안 줘도 되는 월급통장으로 메꾸고 있다는 겁니다.
은행들의 요즘 예대마진(Net Interest Margin)이 1.6%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만약 어떤 은행이 예금 100조 원을 모아 대출을 100조 원 했다면,
대출 100조 × 예대마진 1.6% = 이자이익 1조 6천억
이것이 은행의 이자놀이 셈법입니다.
1조 6천억 버는 게 이렇게 간단하다니... 깜놀이네요.
숫자 싫어하는 분 많겠지만,
수학 말고 산수 조금만 해볼까 합니다.
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차이가 예대마진인데
이게 1.6%라면,
대출은 평균 4.0% 정도이고
예금은 평균 2.4%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3%로 조달한 80조로 4% 짜리 대출하면 마진 1%에 이익 8천억,
0%로 조달한 20조로 4% 짜리 대출하면 마진 4%에 이익 8천억.
전체 예금의 20%밖에 안 되는 월급통장이
나머지 80%의 예금적금이 벌어주는 만큼을 해내는 겁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영향을 받아 정기예금과 적금의 평균금리가 3%에서 4.25%로 올랐다고 합시다.
그런데 정부가 압박을 가해 은행들이 예대마진 1.6%를 넘지 못하도록 대출금리 인상은 억제한다고 해보죠.
정부의 대출 시장 개입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매우 개연성 높은 시나리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0% 짜리 월급통장을 포함한 전체 예금의 평균은 3.4%가 되고 대출금리의 평균은 5.0%가 됩니다.
은행의 예대마진은 여전히 1.6%가 되어 그대로 1조 6천억을 벌게 되지요.
그런데 월급통장의 이익 기여도는 크게 변화합니다.
(대출금리 5% - 예적금 금리 4.25%)×80조 = 6천억
(대출금리 5% - 월급통장 금리 0%)×20조 = 1조
비중 20% 밖에 되지 않은 우리의 월급통장이
비중 80%의 예금적금 보다 2배 가까운 이익을 은행에게 안겨줍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뭉텅이로 채워주는 정기예금이나 정기적금보다,
은행원의 월급을 만들어 주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받거나 예금을 가입할 때
늘 우대금리의 '조건'을 강요받습니다.
뭐 해라 뭐 들어라 뭐 넣어라...
그런데 빼놓지 않고 껴들어 오는 조건이 바로
다른 모든 조건을 다 챙겨도 급여이체 하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은행들에겐 0%짜리 월급통장이 하나의 생명줄인 것입니다.
아마 대한민국 은행업의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월급통장 유치 마케팅을 했던 분은
네 맞습니다, 그분!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님.
여러모로 유명한 분이신데 오늘은 그분이 산업은행 총재를 하시면서 만드셨던 매우 특별한 월급통장에 대한 이야기만 해 볼까 합니다.
은행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월급통장에도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상품이 가끔씩 등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속을 까 보면,
50만 원이나 100만 원 까지는 금리를 더 주고 이를 넘어가면 도로 0% 하는 식으로 금액에 제한을 두거나,
선입선출법이라는 매우 교묘한(?) 은행식 계산법을 이용해서 아무리 돈을 넣어도 이자가 붙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강만수 통장은 달랐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연 2.5%!
영업점 무방문 가입 시에는 연 3.25%!
기존 은행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파격적인 시도였고
꽤 많은 금액을 모으기도 했습니다만...
전국에 점포가 100개 남짓밖에 안 되고,
개인고객은 전무하다시피 한 산업은행의 특수성도 이유였겠지요.
하지만 아마도,
이 상품이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주는
'경제적 가치'가 그닥 크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월급통장에 1년 내내 100만 원씩 쌓아 두어도 강만수 통장의 이자는 2만 5천 원~3만 원 밖에 안됩니다.
그거 벌겠다고
생전 처음 듣는 은행을 꾸역꾸역 찾아가서 통장 만들고,
경리부서에 월급 계좌 바꾼다고 쪽팔리게(?) 부탁하고,
카드결제, 공과금, 학원비, 자동이체...
남의 은행 월급통장 뺏어 먹는 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것이죠.
이자 몇 푼 얹어 주는 정도 갖고는...
명색이 인터넷 전문은행인 K뱅크의 월급 통장은 단순한 혜택면에서도 올드보이 강만수 통장에 게임이 안 됩니다.
ATM 수수료 면제에다가 '남길 금액' 우대금리 주는 게 핵심인 듯한데,
ATM 수수료 면제야 요즘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남길 금액 우대라는 것도 결국 정기예금 단타로 여러 번 돌리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기존 은행 상품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요.
메리트가 약하다 보니 이미 철옹성을 쌓아 올린 기존 은행들의 월급통장을 뺏어 오기 어렵고, 이는 바로 조달 구조의 취약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금감원에 보고한 K뱅크의 작년도 3분기 자료를 보면,
3개월 동안 대출채권 이자로 68억을 벌고,
예수금 이자로 27억을 썼네요.
이 숫자가 높으면 높을수록 은행의 수익성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다른 은행들은 어떨까요?
국민 29%, 농협 30%, 우리 32%, 신한 33%, 하나 33% 정도 됩니다.
뭐 소소한 기준 차이는 있겠지만 K뱅크와 비교하는 데에 있어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K뱅크랑 별 차이 안 난다구요?
노 노 노 ~
기존 은행들의 대출은 이래 저래 오만가지 '담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파트 같은 담보로 백업받는 대출은 당연히 신용대출보다 금리가 낮을 수밖에 없지요.
아파트 담보 대출보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거죠.
일반적으로 신용 대출 금리는 담보 대출보다 2~3% 정도 비쌉니다.
K뱅크 정기예금이 아무리 높다 해도 다른 은행보다 2~3% 비싸게 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높은 금리의 신용 대출로만 꽉 채우고 있는 K뱅크의 이익률이 기존 은행보다도 낮습니다.
이건 뭘까요?
물어보나 마나,
인터넷 전문은행의 혁신적 아이디어와 테크닉으로
새롭고 참신한 상품 개발과 마케팅을 통해
공짜 월급통장을 더 많이 받아올 수도...
카카오처럼 압도적인 플랫폼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거의 정기예금 수준의 이자를 제공했던 강만수 통장도 실패하는 판에
제 아무리 대단한 혜택을 주어도 사람들의 월급통장은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자 많이 주어서 월급통장 땡겨 온다고 한들,
그렇게 받아 온 통장은
'무이자 예금'으로서의 가치는 꽝이 되겠지요.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기존 은행들과 비슷한 상품과 서비스를 가지고
인건비가 덜 드는 인터넷 채널을 운영하여 돈을 벌어 보겠다는 생각은 오산이라는 거죠.
예금금리는 높게, 대출금리는 낮게, 대신 인건비는 싸게...
일반적으로는 상식적이지만,
K뱅크의 미래가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한국의 은행들이 견고하게 쌓아 놓은 돈놀이 산업의 메커니즘을 파괴할
어렵다구요?
당연히 어렵죠.
전통적인 은행들과 맞짱 떠서 제대로 살아남은 신진세력들의 사례가 별로 없습니다.
유통업에서 시작하여 금융업을 평정하고 4차 산업혁명의 융복합 패러다임을 장악한 알리바바를 공부하면,
K뱅크의 미래가 조금은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포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