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복잡한 문화 코드 속에서, 한 가지 큰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문화 트렌드가 ‘도파민 디톡스와 뇌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YOLO가 성행하며 쾌락주의 형태로 ‘삶을 소비하고 불태우는 쪽’으로 방향지었었다면, 이젠 금욕주의 형태로 삶을 소비하기 보단, 오히려 절제하고 인내하는 것이 삶의 덕이 될 수 있다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쾌락주의와 금욕주의’의 이러한 대결은 새로운 주제이기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사에서 ‘자기 영혼 수행’이란 주제는 뜨거운 감자였고 이는 그리스도교 영성에 큰 영향을 준다.
특별히 ‘자기 절제의 삶’을 권하는 사회로 문화적 코드가 변화하게 된 그 ‘근거’가 굉장히 흥미롭다. 여러 뇌과학 혹은 신경과학자들이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서, 오늘날의 도파민 과잉’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며, 다시 금욕주의적 삶을 권한다는 것. 그 방법으로 ‘도파민 디톡스’를 제시한다. 오늘날 도파민 과잉의 주 원인이 되는 SNS와 영양 과잉섭취, 음주 등을 절제하는 삶을 권하는 또 다른 라이프 스타일이다. 이 일환으로 ‘몇 시간 이상 금식과 기상 후 찬물 샤워, 명상, 독서, 혹은 자선’ 등이 요구된다.
‘도파민 디톡스’, 이름만 새롭고 다를 뿐이지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고, 어디선가 많이 본 듯 한 삶의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미 역사 안에서 숱하게 반복된 ‘자기 영혼 수양’이 이제 ‘과학적-실증적 근거’하에 다르게 변주 되었을 뿐이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첨예 해지기 전까진, 과거에는 그저 하나의 직관 혹은 느낌 아니면 사회적 통념에 의해, ‘절제의 삶’이 모범적 삶으로 제시되었던 것에 반해, 오늘날엔 과학이 이 자기 절제의 수행을 이론적으로 보증한다. 이것이 과학적 실증성에 힘입어 문화 트렌드가 된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번 사는 인생, 모두 삶을 맘껏 소비해야 한다’는 문화적 트렌드에서 굉장한 드라마틱한 전회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이 새로운 문화적 코드가 굉장히 종교적 수행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굵직하게 ‘절제와 명상 그리고 독서와 자선’만 두고 보자면, 이 삶의 형태는 그리스도교 영성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이것이 뇌과학적으로 오늘날 더 실증적이고 합리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이유로 마치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고 제시되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한 것이다.
과학적 관측 혹은 검증 이전에, 먼저 ‘이성의 직관적 성찰’이 우선되는지, 아니면 이성적 직관은 과학에 의해 검증 되어야만, 진리값을 갖게 되는 것인지. 이미 인류의 긴 역사 안에서, 이성의 직관에 의해 제시되고 성찰 되며, 그 안에서 다양한 삶의 형태들 간에 끊임없는 성찰을 거쳐, 결국 고전 반열에 오른 ‘자기 수행의 삶’의 그 긴 역사가, 오늘날 뇌과학적 성취로 소급되어 대표 되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제시되는 것이 엄청난 아이러니다.
역사 안에서 ‘자기 절제 수행’은 종교적 삶의 형태에서 이해되며, 개인의 행복은 물론 공동체적 행복과 연관되어 수행되어 왔다. 그러나 뇌과학을 통한 검증으로, 이제 ‘자기 절제 수행’은 종교적 삶과는 엄연히 구분되고, 오직 ‘자기 자신의 안위와 건강과 행복, 무엇보다 자기 성취를 위한 효율성과 생산성’을 위한 것으로 축소되어 이해되고 있는 듯 하다. 이제 자기 수행은 오직 개인의 사회적 성취와 정신 건강을 위한 하나의 ‘퍼포먼스’일 뿐일까.
과연 종교적 심성 없이 ‘자기 수행’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굉장히 궁금하다. 인간 이외의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와 그 회복을 위한 희생이라는 의미 없이, 그리고 주변 이웃을 위한 마음으로써 자선적 행위라는 차원에서의 절제라는 의미 없이, 무엇보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포함되지 않고 오직 자기 정신 건강을 위한 명상만이 포함된, 현대적 ‘자기 수행’ 개념이 어떻게 이해되고 나아갈지 우려 되기도 한다. 더불어 이 흐름이, 오늘날 소비주의에 지쳐, 어떤 차별화 된 '소비 코드'를 원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소비적 문화로만 이해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