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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vis Jan 24. 2020

무엇이 운명을 결정하는가?

SF 명작 <가타카>를 보고

I never saved anything for the swim back.

빈센트와 안톤의 마지막 수영 대결에서 빈센트가 던진 대사이다. 이 대사는 단편적으로 유전적으로 신체능력이 안톤보다 열등한 자신이 어떻게 그를 이길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자신이 어떻게 이런 몸으로 '가타카'의 우주여행까지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는지 보여준다. 이 대사는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포괄적이어서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어떤 장애물이 앞길을 가로막아도 빈센트 자신은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그의 인생관을 함축한 대사로 해석했다. 


<가타카>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른 SF영화들은 일반 관객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 더러 있다. <애드 아스트라>, <블레이드 러너 2049>,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모두 훌륭한 영화들이지만 그럴 수 있는 부분들이 모두 있었다. 똑같은 부분이지만 누구는 긴장감 있다고 느끼고 누구는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가타카>는 그럴만한 부분이 거의 없다. 처음에 빈센트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과거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롭다. 그 이후에는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스토리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정체와 영화의 메시지가 점점 드러나면서 감동과 여운을 준다.

<가타카>를 다 본 관객에게 가장 아리송함을 안겨주는 장면은 아마 '유진(제롬)의 자살'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빈센트가 떠나기 전 자신도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던 유진은 그가 떠난 후 그가 항상 털을 태우던 곳에 스스로 들어가 자살한다. 유진은 왜 이런 선택을 했고, 그의 자살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론 영화는 예술이니까 각자가 느끼고 해석한 바가 정답이다. 필자도 필자 나름대로의 정답을 적어보려고 한다.

영화 초반부 빈센트의 과거 회상 중 키높이 수술을 마치고 엎드려 있는 빈센트에게 유진이 자신의 메달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한다.

제롬 모로우는 한 단계도 내려설 수 없어. 지금은 이렇지만, 난 아직도 2위야. 그게 나야.
네가 이만큼 잘할 수 있겠어?

즉, 자신의 유전자를 빌려준 대가로 2위 수영선수만큼의 자신의 업적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빈센트와 유진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제롬 모로우의 존재 가치를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난다. 빈센트가 2등에 머물지 않고 인재들만 모여있는 가타카의 1등 항법사로서 우주여행 대상자에 선발된 것이다. 빈센트는 유진이 못다 한 제롬 모로우의 존재를 유지시키는 데에 더해서 심지어 발전시켰다. 빈센트 자신이 예전의 제롬이 아닌 새로운 제롬 모로우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유진은 불구가 되어 삶을 포기해가던 자신이 제롬 모로우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한 데에 감사를 표하며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난 너에게 몸만 빌려줬지만 넌 나에게 꿈을 빌려줬어.

발전한 제롬 모로우는 즉, 빈센트는 이제 유진과 완전히 다른 존재이므로 유진은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그래서 유진은 더 이상 자신이 필요 없는 존재라고 판단한 듯하다. 이 해석은 마지막에 은메달이 불에 타며 금메달로 변해가는 장면에서 확실해진다. 제롬 모로우는 이제 1등으로 살아갈 것이다.

빈센트와 안톤의 수영 대결 역시 많은 담론의 여지를 준다. 빈센트는 어릴 적부터 안톤에게 패배했다. 유전적으로 모든 면에서 우월한 안톤이 이기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빈센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청년이 되었을 때 한 수영 대결에서 마침내 안톤을 이긴다. 그 순간 빈센트는 한계를 정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집을 떠난다.

두 사람의 수영 대결이 '바다'인 것은 이 메시지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바다 역시 끝이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자신이 계속 나아갈 의지만 있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게다가 빈센트는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쳐서 태어난 자연 잉태자(God Child)이다. 그런 빈센트의 유전자에게 인공적으로 잔뜩 조작되어 탄생한 안톤의 유전자가 이기는 것은 결국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주제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빈센트와 아이린의 상반된 태도이다. 둘은 심장이 약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운명에 대한 상반된 태도가 한 사람은 우주 여행자로 한 사람은 사무직으로 만들었다. 비록 유전자가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전혀 관련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빈센트는 유전자에 얽매이지 않았고 아이린은 얽매였다. 자신의 열성 유전자에 얽매여 미래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주인의 역할을 유전자에게 내어 주었다. 반면 빈센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열성 유전자를 알지만 극복하기 위해 별의별 짓을 하며(심지어 불법적인 행위까지) 노력했고 결국 극복했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가 가능한지 아닌지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유전자가 아닌 자신의 몫이다.

이 영화의 직접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은 이미 현실에서 '유전자가위'라는 이름의 기술로 가능하다. 유전자에서 원하는 부위의 DNA를 정교하게 잘라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가장 최신 버전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라는 기술이라고 한다. 이전의 유전자가위 기술과 달리 유전자를 잘라내고 교정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며칠밖에 안되며 동시에 여러 군데의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다고 한다. 덕분에 이 기술은 에이즈, 혈우병 등의 유전 질환을 치료하고 유전자 변형 식품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윤리적인 쟁점 역시 피해 갈 수 없다. 실제로 2018년 중국에서 한 교수가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특정 유전자를 제거한 쌍둥이를 출산해 논란이 일었다. <가타카>에서 일어난 일과 완전히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비록 피 한 방울로 사람의 수명까지 알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특정 유전자를 교정하는 현실은 어쨌든 다가왔다. 아직 상용화의 한계나 윤리적인 문제로 보급되지는 않았지만 근미래에 실제로 <가타카>와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때 다시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하다,

영화 중 최고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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