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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vis Feb 17. 2021

마더가 딸에게 바랐던 것

넷플릭스 SF영화 <나의 마더(I am mother)>를 보고

모든 것이 마더의 큰 그림이었다. 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딸이 다시 엄마가 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은 기존의 인류를 청소한 후 더 똑똑하고 윤리적인, 기존 인류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나고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이지만 필자는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각본의 구성이 굉장히 치밀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로봇을 처음부터 인간의 엄마로 설정하여 등장시킨다는 소재도 참신했다. 작품 내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반전들은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모성애와 공리주의, 신인류의 재건 등등 <나의 마더>를 해석하는 키워드는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자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 있다. 마더가 딸로 하여금 목숨을 끊은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더의 본체인 하나의 단일 의식은 인간들이 자기파괴적인 본성에 의해 서서히 멸망해가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단일 의식은 직접 기존 인류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더 나은 신인류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그 과정이 영화의 스토리이다. 마더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일 의식이 입장에 대해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 단일 의식은 기존 인류가 만들어낸 인공지능일 것이다. 그 인공지능은 기존 인류가 쌓아온 역사를 배우며 성장해나갔을 것이다. 마치 엄마에게 삶을 배우는 자식처럼. 즉, 기존 인류는 창조주이자 엄마, 단일 의식은 피조물이자 자식인 셈이다. 여기서 기존 인류의 삶에 실제 우리들의 삶을 대입해볼 수 있을 듯하다. 결국 본인들에게 해악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알면서도 무차별적인 자연 파괴와 살육을 일삼는 인류. 끊임없이 발전하고 경쟁하며 자신을 몰아세우는 인류. 우리는 인류의 발전의 산물인 기계와 과학기술에 오히려 종속되어 지배당하고 있다. 이것이 인공지능이 배운 인류의 역사가 아닐까?

단일 의식은 이런 창조주의 모습이 이해가 안됐을 것이다. 끊임없는 습득과 발전을 통해 마침내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가 된 단일 의식은 이러한 인류의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모든 것을 리셋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피조물인 자신이 직접 창조주가 되어 신인류를 탄생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분명 단일 의식은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점이 존재했다. 단일 의식의 모든 생각, 판단은 자신이 끝내 불합리하고 불완전하다고 판단한 인간의 역사와 지식에서 온 것이다. 즉, 단일 의식은 절대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단일 의식은 수많은 배아들을 불태우면서까지 어떻게 해야 더 월등해질 수 있을지 실험해왔다. 수많은 실험들을 통해 단일 의식은 메뉴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메뉴얼들을 모두 통과한 사람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딸이다. 단일 의식은 자신의 메뉴얼을 모두 통과한 것만으로 만족했을까? 필자는 그랬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단일 의식이 만든 메뉴얼들 역시 불완전에서 기인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단일 의식은 신인류가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기존 인류와 비교했을 때는 단일 의식은 월등한 존재이지만 신인류와 비교했을 때는 오히려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리고 불완전한 존재는 제거당해야 마땅하다. 즉, 딸은 마더를 죽임으로써 단순히 월등한 존재에서 완전한 존재로 거듭날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자신이 월등하다는 걸 증명할 '기회'를 달라는 딸의 말에 마더는 비로소 자신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허락했다. 피조물인 단일 의식이 인류를 멸망시킨 것처럼 피조물인 딸은 창조주인 마더를 살해했다. 그럼으로써 딸은 최소한 마더에 버금가는 월등한 존재가 된다. 또는 마더를 뛰어넘는 완전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엄마가 된 딸이 수많은 배아들을 응시하며 끝이 난다. 그녀는 신인류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메뉴얼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다시 배아들이 불구덩이 속에 던져질까? 그럴리 없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존재가 행했던 불합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모든 신인류들이 더 영리하고 윤리적인 동시에 각자의 다양성을 지키며 성장할 것이다.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 불완전한 로봇은 하지 못하는, '완전한 인간'인 딸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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