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goorlie
하늘아래 아웃백을 한참 지나 어마어마한 크기의 광산 Super Pit 에 이르렀을 때 비행기는 착륙을 준비한다. 골든필스(Golden Fields)의 중심 칼굴리(Kalgoorlie).
많고 많은 호주 도시 중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 돈 벌기 최고라는 소문 때문이다. 돈이 목적이면 돈을 좆는 게 이치에 맞다. 기술도 없는 외국인을 광산에 취직시켜 줄 리 만무하지만, 만약 정보가 사실이라면 적어도 여기서 취업정보를 얻은 후 타 도시에서 생활하다 다시 이 도시에 와서 일을 구할 수도 있다. 물론 구글링해서 얻은 정보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사실확인이 필요하다.
둘째,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워홀 같다 왔다는 사람한테 칼굴리 간다고 해도 대체 거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말은 한국인 비중이 상당히 적다는 것이고, 영어만 쓰면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셋째, 소도시이다. 딴짓할 만한 거리가 없고, 일을 구하려 해도 상가 자체가 많지 않다. 여기서 일을 구해 반 년 정도만 성공적으로 생활한다면 남은 호주 생활은 어딜 가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지간한 대형마트 1층의 반절도 안 되는 크기를 지닌 공항 내부. 백을 찾고 카페 직원에게 묻다.
“여기 버스는 어디서 타야 하죠?”
“버스요? 없어요.”
“…….?”
공항인데 공항으로 오는 시내버스가 없단다.
“바깥으로 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택시 타는 곳 있어요. 그리로 가 보세요.”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나갔다. 황량한 벌판에 햇볕이 미친 듯 내려 쬔다. 하지만 한국처럼 습하게 덥진 않다. 건조해서 되려 따스하다 생각이 들 정도. 나의 얼굴엔 사막 어딘가에 살고 있는 파리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는데, 택시 기다리는 동안 스무 마리는 내 콧등에서 쉬었다 간 것 같다.
그러나 택시는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도 안 와서 같이 택시 기다리는 미즈들에게 물어봤다.
“여기 원래 택시 안 오나요?”
“네. 원래 안 와요. 콜 불러야 돼요. 저희가 불렀으니 따로 안 부르셔도 돼요.”
미즈는 웃으며 답했다. 잠시 후 택시는 왔고, 미즈는 택시기사에게 나를 위해 한 대 더 보내달라고 부탁한 후 공항을 떠났다.
난 내리쬐는 햇볕 바로 앞 그늘 벤치에 트리시클로 클립온 선글라스를 끼고 멍하니 앉아있다. 그러고 있으니 왠 남자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백인. 빨간 체크 셔츠에 검게 탄 피부, 야구 모자를 썼다.
“헬로우.”
“헬로우.”
“여행자세요?”
그가 물었다.
“아니요. 여기 돈 벌기 좋다 하길래 돈 벌러 왔어요.”
“그래요? 어떤 일 하세요? 아,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저는 경비행기 조종사에요.”
남자는 웃으며 긴장을 풀라는 듯 두 손을 활짝 폈다.
“글쎄요. 광산 일이 돈 벌기 좋다고는 하는데 사실 듣기만 들었고 이제 차차 알아봐야죠.”
“그렇군요. 광산 관심 있으시면 일 구하기 전에 전망대 한 번 방문해 보세요. 광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하루 한 번 광산 폭발시킬 때 가면 정말 끝내주죠.”
남자는 며칠간 경비행기로 광산 지역에 물품 공급하는 일을 한단다. 칼굴리 뿐만 아니라 호주 전역에서 일 한다고.
“당신은 당신 일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네요.”
“그렇죠.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남자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백팩커는 휑한 도로 한 켠에 덜렁 놓여져 있었다. 리셉션에 들어가니 주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서와요. 숙박할 건가요?”
“네. 3일 숙박이요.”
“이름이 어떻게 되죠?”
“조니에요.”
“1박당 $30이에요. 방을 안내해 줄게요.”
백팩커 주인 리즈는 할머니뻘의 부인이다. 백팩커는 다 똑같이 개판일 줄 알았는데 여긴 마치 <리즈 할머니네 안락한 백팩커> 라는 부제목을 붙여줘야 할 정도로 매우 깨끗하며 시설 하나하나가 끝내준다. 수영장, 주방, 세탁실, 거실…….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일본인이니?”
“아니요. 한국에서 왔어요.”
“오, 미안하구나. 칼굴리는 왜 온거야?”
“일 하기 좋다 해서요. 어디 일자리 아시는 곳 없어요?”
“많지. ALS 나 SGS 가 봐. 샘플 플랜트인데 인력은 상시 모집해. 어디 보자……”
리즈는 한참 뭔가를 찾더니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지원은 어떻게 하나요?”
“회사 찾아가서 일하고 싶다 하면 폼 줄거야. 그거 작성해서 제출하면 연락 와.”
친절한 리즈는 아무 걱정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룸메이트는 그랜트라는 사람이야. 잠시 어디 나갔으니 나중에 오면 인사하려무나. 그럼 푹 쉬렴.”
"미즈.”
“네?”
“소금이 어디 있죠?”
“저 따라오세요.”
미즈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길고 긴 매대들을 지나 소금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놀라울 정도의 고객 서비스다.
울워스 슈퍼마켓 안. 물가조사에 들어갔다. 우유는 팩에 든 건 2L에 $0.90짜리도 있을 정도고 식빵은 긴 한 줄에 $0.85, 사과는 한 봉지당 $4 선, 코카콜라는 큰 패트에 $2 정도다. 전반적으로 한국과 비슷하거나 싸다. 쇠고기 수출국인 나라답게 쇠고기는 방대한 매대를 차지하고 있다. 가격대도 다양한데, 스테이크거리의 경우 저렴한 부위는 닭값 만큼이나 저렴하며, 대신 돼지가 소보다 비싼 기현상을 보인다.
사족이지만, 호주의 쇠고기 부위 명칭은 다른 나라들과 조금씩 다르다. 미국에서 등심을 일컫는Sirloin을 달라고 하면 정육점 주인이 돼지등심을 줄 지도 모른다. 일단 스테이크로 자주 사용하는 언어를 정리해보면, 가장 유명한 등심은 Sirloin 이 아닌 Rump, 끔찍하게 비싼 안심은 Tenderloin 이 아닌 Eye fillet, 제이미 올리버가 극찬한 부채살은 Flat iron 이 아닌 Blade 라고 한다. 특히 부채살의 경우, 슈퍼마켓에서 살 경우 4인분에 $12정도 하며, 정육점에서는 1kg 당 $20 내외다. 등심이나 안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맛은 월등하니 호주 내 한인들은 참고할 것.
방에 돌아와 쉬고 있을 때였다. 흰 수염이 텁수룩한 마른 노인이 환히 웃으며 들어와 “안녕하세요” 라고 한국어로 인사했다. 룸메이트 그랜트. 시드니에서 왔다. 직업은 예술가. 나에게 맥주 한 병을 건넸다.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다. 남녀가 발가벗고 어떤 섬에서 데이트하는 아주 모범적인(…) 예능을 시청하고 있을 때였다. 한 외국인이 인사를 걸어왔다.
“안녕.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온 조니야. 너는?”
“난 이란에서 온 파하드야. 칼굴리는 어쩐 일로 왔어?”
“일자리를 좀 찾으려고. 한국 최저임금은 시간당 $7 정도거든.”
“정말 끔찍하군. 이란은 더하지만.”
이란은 왜 아랍어 안 쓰고 페르시아어 쓰냐고 물으니 이란은 무슬림 국가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겉으로만 무슬림인 척 한단다. 아랍인들이 페르시아를 침략해 강제로 개종시켰다고. 난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의 비슷한 역사들을 설명해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4년 동안 호주에 살았고, 여기 온 지는 몇 개월 되었단다.
“난 호주 안 가본 데가 없어. 멜번, 시드니, 애들래이드, 브리즈번, 다윈……. 농장일도 해보고 접시도 닦고 청소도 해보고 쉐어(한 집에 여러명이 사는 주거형태.)도 수도 없이 살았어. 하지만 다른 곳은 모두 쓰레기야.”
“칼굴리가 그렇게 돈 벌기 좋아?”
“일단 마이닝(광산 일)이 확실히 기술 없으면 일 구하기 힘든 건 사실인데, 내가 하고 있는 드릴링의 경우 시간당 최대 $35 까진 챙겨줘.”
“어마어마하군.”
적어도, 내가 칼굴리를 결정한 첫 번째 이유는 이 친구에 의해 사실에 근접했다. 그러나 확신하기는 이르다. 나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 허풍을 떠는 것일 수도 있다. 일단은 정보를 얻자.
“그럼 여기서 몇 개월을 지낸 거야?”
“그렇지.”
“왜 쉐어 안 구하고?”
“일단 마이닝의 경우 쉐어보다 어콤(Accommodation. 백팩커 등의 호스텔) 이 훨씬 유리해.”
“가격이 많이 저렴한가봐?”
“그런 점도 있어. 한 주(Week)로 계약하면 $150이야.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지. 마이닝(광업)의 경우, 2주 일하고 1주 쉬고 하는 식이야. 쉬는 주에는 이 도시에 있거나 잠시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는데, 쉐어의 경우 집의 개념이라 안 살아도 돈을 내야 해. 하지만 어콤에 살면 그럴 필요가 없지. 혹시 쉐어 구할 생각이니?”
“응. 안 그래도 검트리(Gumtree. 호주의 벼룩시장 정도의 사이트. 구인구직, 부동산, 중고매매 등이 주를 이룬다.)에 쉐어 알아보고 있어. 내일 방 알아보기로 약속도 잡아두었고.”
“쉐어도 살아보면 좋은 경험이기 때문에 말리진 않을게. 다만,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건, Includ Bill (공과금 포함) 인지 아닌지를 잘 보라는 거야. 직접 방문해서 꼭 물어봐. 광고에는 $130으로 걸었는데 공과금은 따로 내야 될 지도 몰라. 공과금 많이 나오면 한 주당 $200넘게 내야 할 수도 있거든.”
“좋은 정보 고마워. 하나만 더 물어보자. 차를 꼭 사야 되니?”
“일단 광산까진 거리가 머니까 대부분의 마이너(광부)들은 차를 타고 출퇴근해. 하지만 그래 봤자 자전거 타면 못해도 30분이면 가. 일단 일을 구하는 게 먼저겠지? 페이스북은 하니?”
“아니. 시간 낭비하는 것 같아서 안 해.”
“맞는 말이지만 종종 일자리 정보가 페이스북에 올라와. 일 구하고 싶다면 하는 걸 추천할게.”
그는 웃으며 말했다.